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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심순애는 왜 김중배를 선택했을까

“놔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이수일과 심순애〉를 전혀 접하지 않은 세대도 이 대사만은 알고 있다. 이 신파극은 물질적 가치보다 소중한 것이 사랑임을 그려냄으로써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는 여전히 여성들의 허영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물로 회자된다.

지난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미혼 남녀의 배우자 선택 조건에 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남녀 모두 1순위로 꼽은 것은 예상대로 ‘성격’이었다. 그러나 성격 다음으로 중시하는 배우자의 조건은 남녀 간에 큰 차이를 드러냈다. 미혼 남성이 두 번째로 꼽은 것은 ‘신뢰와 사랑’인 데 비해 미혼 여성은 21.1%가 ‘경제력’을 선택한 것. 이수일을 울릴 수 있는 여성들이 아직 5분의 1이나 존재하는 셈이다.

남성과 여성이 이성을 선택할 때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따지는 기준이 있다. 남성의 경우 ‘외모’이며, 여성은 ‘능력’이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 외모를 종합해보면 보통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되는 형으로 요약된다. 즉, 생식력이 좋은 여성을 원하는 것이다. 반면 여자들은 가족 부양을 위해 경제적 능력을 갖춘 배우자를 찾기 마련이다.

미국의 지역신문에는 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광고들이 많이 게재된다. 어떤 학자가 그 광고들을 분석한 결과, 남녀 간의 배우자 선택 조건에서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남성들은 신체적으로 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운 광고가 여성보다 3.7배 높았으며, 여성들은 경제적 조건을 내세운 광고가 남성보다 11배나 많았던 것.

미국 텍사스대학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1980년대 초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남녀의 배우자 선호가 어떻게 다른지 조사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남성들은 젊음과 외모, 여성들은 상대방의 경제적 능력을 더 중시했다. 그러나 버스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거리가 먼 전통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버스 교수는 아프리카와 인도 지역 등이 포함된 전 세계 37개 문화권을 대상으로 배우자 선택 기준에 대한 방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37개 문화권 모두에서 여성들은 경제력을 남성들보다 2배 정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동물들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공작새나 홍학의 수컷들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꽃미남 전략을 내세운다. 공작새의 경우 화려하고 기다란 꼬리로, 홍학은 특유의 분홍빛 깃털로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암컷 새들이 그 같은 꽃미남 수컷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력 때문이다. 멋진 수컷의 모습에서 자신을 치장할 만큼 먹이경쟁과 생활수준에 여유가 있다는 메시지를 읽는 것. 또한 돋보이는 색깔을 지녔음에도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사실로 인해 수컷들은 다른 경쟁자보다 더 빠르고 강하다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다.

휘파람새는 아름다운 세레나데로 암컷을 유혹한다. 그런데 암컷은 우렁차게 노래하는 수컷보다 다양한 노래 레퍼토리를 가진 수컷 휘파람새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확률이 높다. 그 이유 역시 경제력 효과다.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는 것은 어렸을 때 영양 공급을 잘 받고 아버지로부터 노래 교육을 잘 받았다는 증거. 즉,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수컷 거미는 포획한 벌레를 선물로 바쳐 암컷 거미를 유혹하며, 로스아일랜드의 수컷 펭귄은 자갈을 선물해 암컷을 사로잡는다. 자갈은 남극의 빙판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둥지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귀중품이다.

영장류에서는 야생 침팬지 수컷이 파파야 열매를 암컷에게 선물로 바쳐 구애하는 행위가 관찰됐다.


인류는 탄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약 99%의 시간을 원시적인 수렵 채취인으로 살았다. 그 시대의 여성에게는 배우자의 경제력이 곧 생존의 필수 요소였다. 때문에 뛰어난 사냥 능력을 가졌거나 높은 지위에 있어 식량을 항상 구해 올 수 있는 남자를 택해야 했던 것. 그런 환경에 오랫동안 적응하면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흔들리는 심리와 행동양식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정치가 헨리 키신저는 1970년대 초 사교계 모임에서 만난 신인 여배우와 스캔들에 휘말린 일이 있다. 그때 해명 요구를 받은 키신저는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라는 명언을 남겼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매력적인 여성들의 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권력을 쥔 남성일수록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다. 따라서 섹스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하며, 접근하는 여성들도 많아지게 된다. 또한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일수록 상대 여성들의 성 만족도도 높아진다. 영국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 파트너의 수입이 증가할수록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었거나 유명해졌을 때 질투를 유발하는 여성들이 있다. 남편이 보고 있는데 괜히 다른 남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의 수법을 쓰는 것. 알고 보면 여성들의 그 같은 행동엔 이유가 있다. 지위가 높아져도 남편이 여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보기 위한 시험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난해 중국 사범대와 홍콩대 공동 연구진은 캠퍼스 커플을 대상으로 이성교제 행동 유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스스로 부유하다고 여기는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보다 현재 여자 친구의 외모에 만족감을 덜 느꼈으며, 교제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돈 많은 남성일수록 여성의 외모에 더 까다로워진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이처럼 돈 많은 남성, 예쁜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이성관도 변하는 추세다. 남성들의 경우 능력 있고 똑똑한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여성들도 돈 많은 남편감을 원하기보다는 남성의 외모를 보는 경향이 높아진 것.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양성평등이 잘 실현되고 있는 선진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아이를 키우면 됐다. 하지만 현대의 남녀 평등 사회에서는 결혼 후 양육을 할 때 아이를 잘 돌봐줄 수 있는 부드럽고 온화한 남성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남성의 외모를 보는 것도 결국은 후손을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수일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따라간 심순애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자 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이수일은 복수 전략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한 외모와 다정다감한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말이다. 거기에다 요리 실력까지 겸비한다면 금상첨화다.
  •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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