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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땅은 ‘신뢰와 끈기’가 만든다”

멕시코시티에서 보안장비 업체 ‘오투’ 경영하는 오병문 대표

‘오투’ 오병문 대표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낯선 멕시코 땅에서 사업을 성공시켰다.
물론 성공하기까지는 시련도 있었다. 늘 그렇듯 그는 그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중남미 진출을 꿈꾸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다.

사진 : 오병문 대표 제공
이런 사람이 있다. 산간벽지나 다름없는 시골에서 태어나 1985년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1993년에는 당시 국내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 중 하나였던 (주)대우에 입사했다. 열심히 일했고 1990년대 하반기에는 중미 멕시코의 주재원으로 수출 최전선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그가 몸담았던 (주)대우는 1998년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귀국 후 그는 그의 청춘과 인생을 걸고 싶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어느새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였다. 무엇을 해야 하나 찾아보았지만 국내에서 마땅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한때 대우에 몸담으면서 했던 무역업을 떠올렸다. 그래 가자, 멕시코로. 그는 다시 멕시코로 향했다. 자신도 있었다. 경험이 있었고 멕시코 국민이 뭘 원하는가를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멕시코로 간 그는 무역업체를 차렸다. 품목은 이미 정해놓고 있었다. 멕시코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했다. 담요였다. 그는 한국에서 호랑이 무늬가 새겨진 밍크 담요를 수입해서 팔았다. 요즘 말로 ‘대박’이었다. ‘날개 돋친 듯 팔렸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의 담요 제조기술이 멕시코 제조업체에 비해 뛰어난 덕을 본 것이다.

호사다마(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 새옹지마(인생의 길흉화복이 무상하여 예측할 수 없음)? 요즘에 와서 생각해보면 새옹지마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호사다마였다. 현지 담요 제조업체가 기술제휴를 요청해왔다. 한마디로 나눠 먹자는 거였다. 거절했다. 잘되고 있는데 굳이 현지 제조업체와 이익을 반분할 이유는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컨테이너 50대 분량의 담요가 멕시코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휴를 거부당한 현지 제조업체가 반덤핑 제소를 한 것이다. 반덤핑이란 자국 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덤핑 업체나 덤핑 국가의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규제하는 조치다. 결국 그는 국내 담요 제조업체에 물류비는 물론이고 제조비까지 모든 손실을 물어줘야 했다.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2년여 좌절의 시간을 보냈다. 좌절의 시간이라고 해서 스스로를 ‘절망의 시간’ 속에 가둔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했다. 멕시코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미처 몰랐던 부분, 즉 그들의 문화를 공부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당시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앞서가던 IT산업을 멕시코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가를 궁리했다. 멕시코는 당시 IT산업이 불모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2000년 출범시킨 것이 보안솔루션 업체인 ‘오투’다. 그 오투의 대표가 오병문씨다. 멕시코시티에 본사를 둔 오투는 현재 연매출 5000만 달러 규모다. 정직원 40명과 아웃소싱 직원 100여 명 정도의 규모를 생각하면 대단한 매출액이다. 잠시 귀국한 그를 만났다.


사업 실패 후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신뢰’

멕시코시티에서 보안장비 업체 ‘오투’를 경영하는 오병문 대표.
멕시코의 경제 규모를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GDP(국내총생산)가 얼마다, 수출 규모가 얼마다, 인구가 얼마다 하는 것들은 인터넷 뒤져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생략하고요. 그 규모를 쉽게 설명하자면 2013년 기준으로 자동차 생산이 세계 8위이고 철강 생산은 세계 13위입니다. 디스플레이 수출은 세계 1위고요. 가전제품 수출은 세계 1위입니다. 산업적으로도 상당히 발전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물론 근래에 와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결과입니다. 한때 세계적인 신용평가 기관들이 멕시코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가망이 없는 나라’(모건스탠리), ‘불량 학생’(무디스)에서 지금은 ‘모두가 선호하는 나라’(모건스탠리), ‘모범생, 신용등급 A3’(무디스)로 바뀌었습니다.”

중남미에서 멕시코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요.

“중남미 전체 GDP의 21%를 차지하는 2대 시장입니다. 1위는 44%를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이고요. 인구 1억 이상 국가 중 구매력(PPP) 기준 GDP 비중은 세계 7위입니다. 문제는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점이죠. 상위 8%의 백인이 부를 장악하고 있고 도시민의 78%가 빈곤층입니다. 다행히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상위 8%의 경제 수준은 한국보다 높습니다.”

보안솔루션 사업을 멕시코에서 정착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멕시코에서 일반적인 보안장비 시장은 너무 작았습니다. 그래서 큰 파이를 찾기 위해 시장조사를 해보니까 은행 등의 분야가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어디나 그렇지만 은행은 보수적입니다. 기존의 설비나 환경을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먼저 신뢰 구축에 힘썼습니다. 그게 한 5년 걸리더군요.”

우리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이 높습니다. 아메리카 대륙도 그중 하나일 텐데 우리 젊은이들과 기업이 멕시코 등 중남미에 진출할 때 유념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중남미는 인맥과 혈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너서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남미에 진출할 때는 노하우보다는 노후(know who)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문화적 차이, 즉 사회, 문화, 관습을 먼저 이해해야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이유로 실패의 경험을 한 번 갖고 있지요.”

그런 점을 잘 극복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중남미는 기회이자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이 꼭 중남미가 아니라 아프리카든 중동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희망의 땅’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보통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갖는 오류가 ‘나는 열정적이다, 인간관계에 강하다, 숫자에 강하다’ 등인데 이 조건은 성공을 이어주는 등식이 아닙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 봐서는 말이죠. 저는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야망, 열정, 자기관리, 네트워크, 인간성, 유머, 지식, 능력 그리고 운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멕시코 한인 후손을 돕는 오병문 대표.
더 간단히 쉽게 멕시코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말해준다면.

“신뢰와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거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보이는 배짱도 중요하죠.”

서울대에서 매년 특강을 하는데 무슨 내용입니까.

“서울대 스페인어과 및 라틴아메리카 전공자들에게 강의를 합니다. 중남미 특히 멕시코 비즈니스 접근법 및 성공과 실패의 사례 위주로 특강을 해왔죠.”

멕시코에 진출하는 한국인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대부분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활용해 미국 및 캐나다에 수출을 하고자 하는 대기업이 많고 일반 동포들은 원단이나 옷 등 일반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 대표는 세계한인무역협회 멕시코 회장을 역임했고 재멕시코 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벤처부문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됐고 평화통일 지지기반 구축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이유에서 알 수 있듯이 오 대표는 민주평통 중미카리브협의회 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오 대표가 이끄는 중미카리브협의회는 2014년 8월 미수교국인 쿠바에 문화클럽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다. 이 클럽은 쿠바 한인 후손들의 구심점 역할은 물론 정체성 확립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쿠바에는 한인 후손 3.5~4세대가 1200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애니깽’과 같은 뿌리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한인 후손 80여 명을 초청한 가운데 광복절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오 대표는 중미카리브협의회 회장을 맡게 된 이유에 대해 “성공한 사업가로 남기보다는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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