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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휙 지나가는 찰나의 배역이라도 소명의식을 갖고 하면 그게 연기고, 연기 인생”

악역에서 코믹 연기까지 배우 김병옥

김병옥은 악역 전문 배우다. 깡패, 건달, 속물, 악당, 조폭, 거지가 그에게 각인된 이미지다. 그런 그가 요즘에는 코믹 연기까지 소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다.

사진 : 김병옥 제공
부리부리한 눈, 까무잡잡한 피부의 김병옥(58)은 악역 전문 배우다. 깡패, 건달, 속물, 악당, 조폭, 거지가 그에게 각인된 이미지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얻어먹던 단발머리 목사,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냉혈한 보디가드, 〈신세계〉에서 연변 거지, 〈짝패〉의 속물 청년회장, 〈해바라기〉에서 비열한 건달, 〈내부자들〉에서 검찰을 사병화(私兵化)한 부패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분(扮)했던 그다.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과 결탁한 무반 당상관 ‘엄자치’ 역을 맡았다. 농익은 악한 이미지에, 요즘은 코믹 연기까지 소화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그를 만났다.

김병옥은 자신의 악역 이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병옥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내 머릿속엔 온갖 나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행동에 옮길 시간이 없다’고요. 사람은 누구나 동전의 양면처럼 악함과 선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죠.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나요? 사람들의 감정 속에는 인간의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 거니까요. 과거엔 악역을 한답시고 (카메라 앞에서)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위협적인 말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강자인데, 생각 없이 날뛰는 똘마니라면 모를까, 굳이 약자에게 험하게 굴 필요가 없잖아요.”

그는 “오히려 인간적인 얘기를 던지는 게 관객에게 더 섬뜩할 수 있다. 예컨대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식이다. 검사가 잡범 다룰 때 그런 표현을 쓴다더라”고 했다.

김병옥 “야비하고 비열한 언사를 쏟기보다 긴장의 순간에 지나가는 말투로 툭 던지는 게 되레 공포감을 줄 수 있어요. 영화 〈잔혹한 출근〉에선 (악한 표현의) 욕심이 과했다고 생각해 〈해바라기〉에선 그걸 조금 눌렀어요. 악역이라도 항상 영화에 맞는 매력을 찾아야 합니다.”

직설적인 화법보다는 간접화법이 더 위협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병옥 “‘저기 오다 보니, 사람이 죽어 있어’라고 툭 던지는 식이랄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려 해도,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미묘한 경계의 말로 듣죠. 비록 악당이지만 악당 틀에서 벗어나는 게 좀 더 표현에서 자유로워지고 풍성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왜 그렇게 사악한 포스로 가는지 저도 의아한데, 결국 저도 찾지 못한 제 안의 사악함을 남이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관객도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


김병옥은 일본의 명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케시 하면 〈소나티네〉에서 잔인한 야쿠자 보스, 〈하나비〉에서 냉철하고 무감한 형사로 주목을 받았었다.

김병옥 “저도 기타노 다케시를 보며 느끼는 건데 (그의 영화엔) 죽음의 미학이랄까, 악이 지닌 폭력의 미학이 있어요.”

그 역시 영화 〈예의 없는 것들〉에서 조폭 우두머리이자 패륜을 일삼는 악의 화신을 연기했다. 피투성이 폭력을 통해 섬뜩한 인간 내면을 들춰냈다고 할까.

김병옥 “주로 조폭 두목이나 사채업자 등 사악한 인물을 많이 맡았는데, 관객들이 제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쓰러뜨릴 것 같은 느낌을 받나 봐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악역에 집중할 때는 유독 세 보이는 것 같아요.”

번뜩이는 눈빛만으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김병옥 “좋은 배우는 타고난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거기다 노력과 끈기를 겸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수양이 필요합니다. 자기만의 보물을 찾는 일은 자신에겐 즐거움이지만 남들한텐 ‘똥덩어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빨리 자기를 버려야 해요.”

배우의 길이 ‘자신을 버리는’ 수양과 닿아 있다는 말이었다.

김병옥 “무대에서 몇 마디 하지 않아도, 혹은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짓는다 해도 배우는 그걸 소화해서 관객에게 던지는 순간 잊어버려야 해요. 연기는 던지는 순간 소멸하는 것이니까…. (연기 후) 허탈감이 몰려와도 어쩔 수 없죠. 그게 배우의 운명이니까요.”

김병옥은 “요즘도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을 꾼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라고 털어놓았다.

김병옥 “늘 나쁜 역만 맡다 보니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배우의 운명이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배역과 별개로 어떤 숙명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론 쌓아가는 것인데,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죠.

요즘엔 나이가 들면서 현장의 순발력만으론 안 되는 게 있더군요. 한 컷 한 컷 상황을 연상하면서 머릿속에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현장에서 덜 당황하게 돼요.”


서울예대 80학번, 연극 〈리어왕〉의 오스왈드 역으로 데뷔


김병옥의 고향은 경기도 부천이다. 부천 시내에서 8km는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었다고 한다. ‘장화 없인 다닐 수 없는 질척한 길을 걸어’ 인천 대건고와 서울예대 연극과(80학번)를 다녔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할 생각을 하다가 1년 재수를 하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원서를 냈다. ‘소설가 최인훈에 미쳤을 때’였다. 그런데 대입 면접을 보면서 연극과로 방향을 틀었다.

김병옥 “학창 시절, 신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니체, 쇼펜하우어, 사르트르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죠. 공부해서 대학 가면 뭐 하나, 세상이라는 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구나 생각했어요. 공부 대신 최인훈의 〈광장〉 〈회색인〉을 읽고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곤 했죠. 중앙대 문창과, 서울예대 문창과 두 곳을 저울질하다 최인훈 선생이 계시던 서울예대를 택했죠. 당시 대입 면접을 문창과와 연극과가 같이 봤는데, 연극과 양정현 교수님이 저더러 연극과로 오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의 방향이 틀어지게 됐죠.”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극단 목화에서 박영규, 정진각, 김학철, 한명구 같은 개성 만점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데뷔작은 1982년 〈리어왕〉. 시종 오스왈드 역이었다. 어쩌면 오스왈드도 주인의 명령에 그저 맹종하는 일종의 악역이다.

김병옥 “(극단) 목화에서 연기 인생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연출가 오태석 선생님이 당시 단장이셨는데 ‘배우는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지 않으려면 하루도 안 쉬고 연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시멘트가 굳지 않게 레미콘 트럭믹서를 계속 돌리듯 해야 연기도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니까,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현장의 느낌이랄까, (지나친 연습은) 배역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한쪽은 놓치게 되니까요. 항상 양쪽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극단 목화 시절은 그에게 시련의 시간이었다. 극단의 중심축에 들진 못했지만 벽돌을 쌓듯 연기의 기본을 다졌다.

김병옥 “20대 때 들어가 마흔 가까이 목화에 있었는데 무척 힘이 들었어요. 큰 역할은 못 맡았지만 무언가 단단하게 다지던 시절이라 해야 할까요? 전무송, 이호재, 김학철, 오현경 선생님이랑 함께 무대에 섰어요. 이호재 선생님은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움과 기가 막힌 화법, 정말이지 작은 목소리까지 관객에게 전달하는 목소리를 갖고 계시죠. 그런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는 배우고 싶고 존경할 부분입니다.

오현경 선생님과는 두 작품을 같이 했는데, 제게 항상 너그러우셨어요.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돼. 이 대사는 이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하면 틀린 거야’라고 지적하시고 후배를 다독이셨죠.”


그는 서른다섯(1994년) 무렵 아내 이윤자(李允子·55)씨와 결혼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죽기 전에 쟤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셨다. 선을 봐서 두 달 만에 식을 올렸는데 2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내를 만난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연극배우 김병옥이 스크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작 〈클래식〉이다. 주인공 조승우의 담임이었다. 그의 나이 마흔넷. 이후 〈올드보이〉 〈음란서생〉 등으로 차츰 보폭을 넓혔다. 드라마는 2008년작 MBC 〈밤이면 밤마다〉가 첫 작품이다. 물론 악역이었다. 무대를 연극에서 영화, 드라마로 옮기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김병옥 “생활이 좀 나아진 정도죠. (조연은) 주인공 출연료의 10분의 1이 안 돼요. 그래도 연극하는 것보다는 나았죠.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하고…. 하지만 처음에는 연극에만 매달려 저쪽(영화, 드라마)을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괜히 기웃거리면 찬밥 취급을 당하니까요. 하고 싶은 연극만 하고 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더니 툭, 이런 고백을 했다.

김병옥 “사실 영화 오디션을 여러 차례 봤지만 다 떨어졌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념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제 연극을 누가 보고 영화 출연을 제안했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참 우연적이게도 말이죠.”

그를 충무로로 당긴 이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김병옥은 안 어울리는 단발에다 도끼날 같은 쌍꺼풀, 그러나 불타는 눈빛을 지닌 목사로 분했다. 〈올드보이〉에선 유지태의 경호실장으로 최민식과 살벌한 주먹다짐을 벌이다 처참하게 죽는 역이었다. 이 두 작품으로 그는 충무로의 ‘정글’에서 한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조연이라도 주인공처럼 연기해야”


그는 자신만의 ‘조연배우론’을 이렇게 말했다.

김병옥 “어떤 배역이든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없어요. 그러나 조연으로 출연한 그 짧은 순간을, 마치 관객이 눈치 못 채게, 주인공처럼 연기해야 합니다. 휙 지나가는 찰나의 배역이라도 소명의식을 갖고 하면 그게 연기고, 연기 인생이지 않습니까. 주연배우보다 출연료가 적은 것이야 어쩔 수가 없죠. 연기는 무대라는 편협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위예술이잖아요. 배우는 무대 밖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삶이죠. 그게 배우의 운명입니다.

고전인 셰익스피어, 아서 밀러, 유진 오닐의 작품을 우리 시대에 맞게 표현하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른 관객들과 어떻게 교감할 것이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죠.”

그는 어느덧 연기 인생 40년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연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병옥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마피아 역도 하고 싶고, 로베르토 베니니가 배우·감독으로 열연한 〈인생은 아름다워〉,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같은 작품도 하고 싶어요.”

대학 시절, 안민수 선생님은 ‘연기는 가르칠 수 없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고 하셨어요. 모순된 얘기 같죠? 당시 학생들은 ‘그럼, 어떻게 연기하면 되느냐’고 여쭸는데 스승은 선문답처럼 ‘나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께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적선은 몇 년을 먹여 살릴 수 있지만, 중요한 말 한마디는 평생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어요. 말 한마디가 위대하고 어려운 겁니다.

지금도 아스팔트 위에서 허덕이는데, 여전히 나무인지 숲인지 모르는 판국에, 뭘 얘기할 수 있을까요? 요즘 후배를 만나면, 말을 많이 안 하고 들으려고 해요. 아이가 태어나 말을 하는 데(배우는 데) 3~4년 걸리지만, 듣는 데는 50년 넘게 걸린다고 하잖아요. 말은 쉬워도 남의 말을 경청하는 건 어렵습니다. 아직 연기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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