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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어 행복한 인생

《피아니스트의 비밀노트》 펴낸 피아니스트 이경미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 : 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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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함께한 50년. 손이 아닌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고뇌와 외로움이 가득했던 시절,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집필해 제2의 음악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이경미다. 그가 최근 책 《피아니스트의 비밀노트》를 펴냈다. 피아노 선율이 음으로 된 ‘혼’이라면 책은 혼을 활자로 운지(運指)하는 음악이다. 건반에서 활자로 넘나드는 그녀의 ‘인생 연주’는 누구나 가슴을 열고 귀 기울일 법하다.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에요. 무대 위 높은 곳만 봤죠.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데 다 놓치고 산 듯해요”

섬세하고 단아한 터치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피아니스트 이경미. 그는 2009년 갑작스럽게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스스로 ‘강한 여자’이면서 낭만적이고 담대하다고 자부했던 믿음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무너졌다. 앙상한 몸으로 링거를 꽂은 환자들을 보는 일, 배에 맞아야 했던 주사, 밤이면 찾아오는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피아니스트로 노력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투병생활을 견뎠고 암을 이겨냈다.


암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

책 《피아니스트의 비밀노트》.
2011년 도쿄 산토리홀에서 열린 이경미의 재기 연주에 많은 사람이 숨을 죽였다. 무대 뒤에는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쇠약해진 체력을 염려해서다.

“이 피아노 선율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을까? 2년 만에 뚜껑을 열고 마주한 피아노가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신들린 듯 2개월을 피아노 앞에서만 살았어요. 무섭지도 긴장되지도 않았죠. 잠을 잘 때도 마치 천사가 연습하라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벌떡 잠에서 깰 때가 많았어요. 유령처럼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곤 했어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이끄는 것 같았죠.”

그는 암을 극복하고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왔다.

피아니스트 이경미는 3대에 걸친 ‘음악가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의 외할머니는 소프라노로 일본에서 유학했고, 어머니는 북한에서 음악 영재로 뽑혀 모스크바 국립예술원 입학 허가를 받았었다. 이경미는 세 살 때 말을 배우면서부터 피아노 건반에서 도레미를 익혔다. 피아노는 장난감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였다. 초등학교 때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까지 마친 그는 16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음악원,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 링컨센터가 주최한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공연’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공연’ ‘러시아 백야 음악제’ 등 해외 초청연주의 성공으로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문인 아카데미로부터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최고예술상을 수상했고, 극동국립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50여 년 한길을 걸으며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기까지 어머니의 조력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어머니는 저에게 연습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무대가 떨리고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죠. 재기를 위해 산토리홀에 올랐을 때 긴장한 저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힘이 나서 제 손으로 문을 열고 무대로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이경미의 손은 남들에 비해 작은 편이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때 도움을 준 이가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맥신 교수다. 맥신 교수 역시 피아니스트 중에 손이 제일 작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건반을 가볍게 손끝으로 ‘터치’하는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예쁘고 영롱한 소리’를 찾아갔다.

러시아와 일본,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해 온 피아니스트 이경미는 한국에 돌아와 〈열린음악회〉와 〈토요객석〉 등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경남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화려한 명성의 예술가 인생에는 끝없는 좌절과 가혹한 삶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가에게는 찬사뿐 아니라 따뜻한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피아노와 함께한 50년을 따뜻한 글로 담아낸 책 《피아니스트의 비밀노트》에는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많은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이 녹아 있다. 자신이 교육자가 되어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담도 상세하게 담겨 있다. 기초적인 피아노 교습법과 슬럼프가 올 때마다 용기가 되어 준 쇼팽, 바흐와 라흐마니노프 등 음악 거장 30인의 명언이 생생하다.


뜨겁게 음악을 사랑하는 연주자


“‘우리 아이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수 있는 재주가 있나요?’. 간혹 부모님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아요. 너무나도 무서운 질문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은 학생일지라도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도 좋지만, 음악이 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더 좋겠어요’라고. 내가 음악을 만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말들을 알려주고 싶어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틈틈이 메모도 해두었고요.”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내게 음악적으로 감동을 준 선생님은 누구보다 뜨겁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음악이 있어 행복한 삶’을 연주해 왔지만 한시도 연습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특히 초기에는 한 곡을 배우고 암기하기 위해 같은 멜로디의 음을 몇천, 몇만 번 이상 반복 연습할 것을 강조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책에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크리트 팁’을 제시한다. 중요한 조언은 물론 감정 표현을 위해 이해해야 할 11명의 작곡가의 생애와 특징도 실었다.

“작곡가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알고 연주하는 것과 모르고 연주하는 것은 다르죠. 선을 봐서 결혼하는데 겉만 보고 결혼하는 것과 똑같아요.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음악을 알기 위해 작곡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죠. 꿈이 없이는 결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요. 하지만 단순히 꿈과 열정, 노력만으로는 결코 피아니스트의 길은 열리지 않지요. 평생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이의 성향에 맞는 ‘음악가의 길’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나이 마흔을 넘겨야 음악을 제대로 안다’고 그는 나이 오십을 넘기며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다. 폴란드 작곡가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는 ‘하루 연습을 안 하면 스스로가 알고 이틀 연습을 안 하면 비평가가 안다. 그리고 사흘 동안 연습을 안 하면 청중이 안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연주자에게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인생에도 적용해볼 만하다.

“무대 위에서는 기적이 없죠. 연습만이 살길이에요. 삶 또한 똑같은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아온 만큼 내가 알고 주변 사람이 알죠. 꾸준해야 한다는 것. 주변에서 늘 저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끈질긴 것 하난 알아준다고.”

고난의 시기를 견뎌낸 결과는 고난 이상의 기쁨과 아름다운 결실을 본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이경미의 음악과 삶이 이를 증명한다.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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