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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꿈도 꾸면 희망이 된다

연극 〈주먹 쥐고 치삼〉 무대 오르는 이동근 책임프로듀서

글 : 김미량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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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꿈꾸는 시골 소년이 있었다. 가난과 싸우며 독학으로 연극을 배웠고, 이십대 후반, 꿈꾸던 공연기획자가 되었다. 그리고 닥친 사고. 전신 50% 3도 화상과 28번의 수술, 8개월 투병 끝에 달라진 얼굴과 잘린 손가락, 튜브에 의지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얻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그는 간절히 꿈을 복기했고, 기적처럼 다시 시작된 자신의 삶을 담은 작품을 기획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관객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연극 〈주먹 쥐고 치삼〉의 프로듀서 이동근씨의 이야기다.

사진제공 : 이동근
꿈의 문턱에서 만난 사고

2015년 1월, 이동근씨는 병원에서 눈을 떴다. 사고 2주 만에 정신을 차린 그에게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멍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사고가….’

지인을 따라 잠시 들른 한 사무실에서 뜻밖의 폭발 사고가 있었고, 문 밖에 서 있던 그는 순식간에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의 절반 이상이 3도 화상이었어요. 눈꺼풀이 타버려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고, 성대가 달라붙어 목소리도 안 나왔어요. 양손의 피부가 모두 타서 주먹을 쥘 수도 없었죠. ‘왜 하필 지금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토록 원했던 기회가 드디어 내게 와주었는데….”

이제 갓 스물아홉 살, 방황의 시간을 거쳐 2014년 ‘제1회 이십할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그는 마침내 오랜 꿈이었던 공연기획자가 되었다. 젊은 연극인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주자며 20대의 촉망받는 연극인들과 의기투합한 이십할 페스티벌은 연극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처음 기획에 참여했을 때 저는 팀원 중 유일한 비연극인이었어요. 연극계에 계신 분들이 저를 연극인보다 연극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기회를 주셨죠. 초대 페스티벌의 성과가 좋아서 2회 페스티벌의 기획도 맡게 되었어요. 새해가 되자마자 팀을 꾸려 첫 회의도 진행했는데…, 바로 다음 날 사고가 났어요.”

그는 경남 남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가난한 살림을 꾸리며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밑에서 그는 반항심으로 가득한 사춘기를 맞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줄곧 ‘문제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참여한 교내 연극제에서 삶을 바꿀 만한 경험을 했다.

“아픈 가정사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해 힘들어하는 모범생 역할을 했는데, 친구들이 많이 공감했어요. 그런데 연극이 끝난 후 선생님들도 ‘참 잘했다. 재능이 있구나’라고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충격을 받았죠. 태어나서 처음 듣는 칭찬이었거든요.”


그날 ‘연극’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가슴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연극반을 처음 만들었고, 진로도 연극으로 결정했다. 방과 후 평균 2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방학이 되면 서울에서 하숙을 하며 연극을 배웠다. 목표가 확고해질수록 성적도 올랐다. 수험생이 되자 선생님은 지역 국립대학의 사범대를 권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성적도 실력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첫 입시는 실패였다.

“원했던 대학은 탈락하고 2차 목표였던 대학은 합격했어요. 그런데 등록금이 부족하더라고요. 어차피 가고 싶던 대학도 아니니 1년 재수하며 등록금을 모으자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고, 그는 고향 남해로 향했다.

“스물한 살에 꿈을 포기해버렸어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하루 일당이 아쉬워서 휴일에도 쉬지 않고 365일 돈만 벌었어요.”

식당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매니저가 되었고, 영업사원으로 능력을 발휘하며 제법 큰돈도 벌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어느덧 이십대 후반에 이른 나이에 그의 마음은 다시 연극을 향하고 있었다.

“열정대학에 등록하고 ‘공연문화소개학과’를 개설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공부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정원의 몇 배가 넘는 인원이 신청해 깜짝 놀랐어요.”

1년에 200편의 연극을 보고, 평론가협회에서 주최하는 비평워크숍도 듣고, 서점에 나온 거의 모든 평론집을 사서 밤새 읽었지만 갈증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그는 직접 연극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연극계 거장들은 거의 대부분 만났어요.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니 소문이 나서 유명한 배우와 감독, 평론가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죠. 그분들과 만나면서 좋은 연극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꿈이 생겼어요. 이십할 페스티벌은 제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였고, 정말 신나게 해냈어요.”


극한 고통을 이겨낸 간절함으로 다시 도전


가장 행복했던 순간 들이닥친 사고는 그를 극한의 고통 속으로 떠밀었다. 매일 살이 탄 자리를 긁어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졸도를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지금 당장, 혹은 바로 내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생각했죠. 만약 내가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 연극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한 거죠.”

간절함을 넘어 의지가 솟구쳤다.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친구에게 스마트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곤 피부가 타버려 뼈가 드러난 손가락 끝에 터치펜을 감고 글자를 찾아 누르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너무 끔찍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마침내 한 문장이 완성됐다.

‘내가 다시 살게 된다면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동안 그는 17번의 피부 이식은 물론, 각종 합병증 때문에 모두 28번의 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왼쪽 손가락 4개를 절단했고, 목소리를 살리기 위해 목에 튜브도 꽂았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두려움은 의사조차 퇴원을 장담하지 못하는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함께 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작가 김세한씨가 병원으로 그를 찾아왔다. 연극을 해보자는 뜻밖의 말에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거렸다.


“막상 제안을 받으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티켓을 팔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오래 대화를 나눈 끝에 결국 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만들기로 했고, 정범출 감독과 김 작가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꿈을 다시 품자 신기하게도 새로운 기회가 그를 찾아왔다. 그토록 소망하던 퇴원이 결정되었고, 사회에 복귀하자마자 사회적기업 아이디서포터즈의 책임프로듀서를 맡아 지난 1년 동안 연극 〈몽타주〉 〈코끼리 날다〉를 비롯해 아이디페스티벌 토크콘서트 〈또 다른 목소리〉 〈돈키호테〉 〈불후의 명작-대한민국 희곡작가전〉 등 10여 편의 다양한 공연을 기획했다.

“그날의 사고를 생각하면 복잡해요. 아직도 억울하고 힘든 순간이 불쑥 찾아와 괴롭히죠. 하지만 사고 덕분에 제게 관심을 가져주는 많은 분을 만났고, 새로운 도전도 할 수 있었어요. 힘든 순간 포기를 선택하지 않으면 반드시 또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었죠.”

그는 앞으로도 몇 차례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감염의 위험 탓에 목에 설치한 보조 장치를 떼어내야 하고, 목소리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낙관적이다.

“2월에 시작하는 〈주먹 쥐고 치삼〉이 관객과 오랫동안 만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또 젊은 연극인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고요. 목소리를 잃기 전 배우로서 꼭 한 번 무대에도 서고 싶어요. 불가능하더라도 꿈은 꾸어야 행복하고, 희망도 살아남아요. 보세요, 제가 그 증거잖아요.”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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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올리버칸   ( 2017-02-10 ) 찬성 : 10 반대 : 8
주먹지고 치삼 대박나시고 전국지방공연도 했으면 바랍니다..구미시에서 한번 꼭보고 싶습니다
 힘내세요..영원히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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