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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전통시장에서 얻은 창업 아이디어

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글 : 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 :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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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전통시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2년간 전국 400여 곳의 전통시장을 누볐고, 그중 45개를 골라 《시장이 두근두근》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펴낸 이희준씨가 그 주인공. 전통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그는 지난해 7월 국내 최초의 참기름 편집매장을 만들었는가 하면, 전통시장 해설사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또한 ‘참기름 소믈리에’와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새로운 직종도 만들었다. 그에게 전통시장은 사라져가는 과거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현재이자 미래다.
국내 1호 참기름 소믈리에

그를 만난 곳은 서울 구로시장 안에 있는 작은 참기름 가게 ‘청년주유소’다. 오픈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지만, ‘제대로 된 참기름’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늘면서 매달 20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진열된 참기름 병에는 경북 안강시장, 서울 중곡시장, 부산 부평깡통시장 등 와인처럼 착유 날짜와 착유지 정보가 담긴 라벨이 붙어 있었다. 연한 오렌지주스 색부터 갈색까지 빛깔도 다양했다. 그는 “착유자의 기술과 온도, 깨의 품종에 따라 조금씩 색감이 달라진다”고 했다.

“전국 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며 기름을 짜는 분들 중 제 기준으로 ‘장인’이라고 할 만한 분들을 10명 정도 추렸어요. 착유 시 위생 상태나 기기 관리, 국산 깨 사용 등을 모두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암행감찰(?)까지 부탁하며 여러 번에 걸쳐 철저히 확인했지요. 말하자면 제 까다로운 기준을 모두 통과하신 분들이에요(웃음). 소주병 크기 한 병의 가격이 3만원 정도이니 슈퍼에서 구입하는 대기업 제품과 비교하면 대여섯 배는 비쌀 겁니다. 그런데도 ‘건강한 참기름’에 대한 수요가 생각보다 많아서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어요. 제게도 좋은 일이지만 그분들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참기름을 찾는다는 데 놀라고 있어요.”


그는 “우리 전통시장의 뿌리는 방앗간”이라며 참기름에 관심을 가진 계기를 설명했다. 채소·과일·생선 가게 등은 산지에서 물건을 가져다 파는 유통단계 중 하나지만 기름·떡·엿기름·고춧가루 등을 만들어내는 방앗간은 2차 가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것. 즉, 장인의 손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 안에서 가장 빠르게 사양길을 걷고 있고, 특히 참기름 시장은 대기업의 진출과 함께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장 최상의 참기름은 연한 오렌지색이 도는 것이지만, 검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방앗간에서 기름을 최대한 많이 얻을 수 있도록 기기를 설정하다 보니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착유하는 방식이죠. 깨 한 포대에서 저희는 33병의 기름만 짜는데, 많이 짜는 곳은 50병까지도 만들 수 있어요. 시장 논리에 따르면 그게 맞지만, 저는 건강한 참기름을 만드는 게 목표라 장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을 찾고 싶어요. 오랜 시간 경험으로 축적된 그분들의 감과 기술을 그대로 사장시키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이걸 잘 다듬으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기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비자들에게 참깨 수확 단계에서부터 믿음을 주기 위해 경북 군위·예천·안동, 강원 영월, 제주 등지에 1652㎡(500평)에서 3305㎡(1000평) 정도씩 노는 땅을 빌려 직접 참깨 농사도 지었다. 요즘은 자신이 수확한 깨를 장인들의 방앗간으로 가져가 그들과 함께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며 맛과 향의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국내 첫 참기름 소믈리에로서, 장인들이 그들의 기술력을 이용해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연구 개발의 장을 마련한 셈이다.


전통시장 명품 모아 ‘이희준 마켓’ 만드는 게 꿈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광고만을 따로 모아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며 청년 창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셰프들의 조리법에 전통시장에서 구한 식재료를 패키지로 묶어 배송해 주는 ‘쿠킷’을 창업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전통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부터다.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반응은 좋았지만 당초 목적이었던 고객들을 전통시장으로 유인하는 데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사업을 접은 그는 원점으로 돌아가 ‘왜 사람들이 시장에 가지 않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제가 내린 결론은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어요. 전통시장에 대해 잘 모르니까 외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서울에서 제주까지, 2년간 매일 전국의 시장을 찾아다녔어요. 시장의 역사, 철학이 있는 상인, 특화 상품들이 저마다 달라 시장에 가는 일은 마치 놀이공원을 찾아가는 것만큼 설레고 즐거웠어요. 상인들의 마음을 얻고, 그분들과 소통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요.”

그 작업을 두 권의 책으로 펴낸 그는 스스로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직종을 만들어 시장을 해설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서울시 미래유산답사 프로그램 해설사로 활동 중이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매주 한 곳씩 시장을 소개하는 일도 한다. 한국을 찾은 유럽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행하며 통인시장·광장시장·망원시장 등을 설명해 주었는가 하면, 캐나다 퀘벡 주의 한 TV 채널에서는 그의 추천으로 부산 자갈치시장을 세계 8개 전통시장의 하나로 소개했다.


“처음 기획안에 우리나라는 아예 후보에 없었어요. 방송국으로부터 일본 도쿄의 쓰키지 수산시장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제가 거기보다는 우리나라 시장이 훨씬 볼거리가 많다고 했지요. 취재팀이 직접 몇몇 시장을 둘러본 후 자갈치시장을 골랐어요. 올 1월에 방송이 나갔는데, 그 이후에 한동안 자갈치시장에 프랑스 사람들이 엄청 다녀갔대요. 캐나다 퀘벡은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라 그 방송을 캐나다와 프랑스 양쪽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장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고, 눈빛은 빛났다. 시장에 대한 그의 애정과 열정이 표정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시장에 가는 이유를 책에서 이렇게 썼다.

“시장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를 압축한 것 같았다. 다양한 인물 군상이 섞여 있고, 돈과 정을 서로 주고받으며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끝에는 감동이 밀려온다. 이토록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 전에 나는 이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때가 있었나 반성도 해 본다.”

그는 “시장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친구들처럼 회계사가 되어 있거나 기업 재무팀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평범한 회사원 대신 전통시장 전문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참기름 소믈리에, 전통시장 도슨트라는 새로운 직종을 만들었다. 지금은 공주 알밤, 광주 홍어, 경산 대추 등 지역적인 특색을 갖춘 상품을 한자리에 모아 ‘이희준 마켓’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더 장기적으로는 전통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여 자신의 노력이 더 이상 필요없어지는 순간을 꿈꾼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을, 그가 지금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꿈을 절로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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