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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과 함께 텃밭 가꿔요

소셜 벤처 ‘동구밭’ 노순호·김정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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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발달장애인이 한 명의 비장애인을 ‘선생님’이 아닌 ‘친구’로 받아들이는 데는 8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 동안 꾸준히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발달장애인도 근면한 농부가 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터 동구밭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의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
김정윤 이사(왼쪽)와 노순호 대표.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동요에 등장하는 동구는, 마을마다 있는 동네의 입구를 뜻한다. 그 입구를 따라 들어오면 마을 안에는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그리고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있다. 사실 농경사회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위독한 병에 걸린 독질인, 잔병이 남아 있는 잔질인,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폐질인으로 분류했다. 세종임금은 이들을 부양하는 가족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주거나 표창을 주었다. 이때는 마을공동체나 가족공동체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일거리는 많고 일손은 늘 부족했던 당시에는 장애를 가졌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가 한 가지씩은 있었다. 노순호 대표는 동구밭을 통해 농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농경문화에서는 장애 차별이 덜했어요. 손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서 여성이든 아이든 장애인이든 할 일이 있었던 거죠. 자신의 역할이 있으니 존중받고 필요한 존재로 대접을 받았고요. 그런데 도시화,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필요 없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겁니다.”(노순호)

동구밭은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도시 농업을 진행하는 2년 차 소셜 벤처다. 현재 100명의 장애인과 100명의 비장애인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노순호 대표와 김정윤 이사는 거제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다. 어릴 적 본 풍경 속에서는 어른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 도시에 와보니 도시에서 농부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이걸 왜 도시에서 하려고 하지?’ 궁금해졌다.

“농사에 호기심이 있었어요. ‘도시에서 농사짓기’에 대해서요. 저는 시골 출신이라 외가와 친가에서 항상 농사를 짓고 계셨거든요. 도시는 다르잖아요. 채산성에 문제도 있고요.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농작물을 기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노순호)


함께해서 행복했던 마을 공동체

동구밭에서 만든 가꿈비누.
농사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는 가까이에 있었다.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일할 공간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2013년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동아리의 첫 프로젝트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농사를 짓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 가거나 모종을 밟고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실패구나 싶을 때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근데 이 친구들이 매주 와요. 부모님들이 말씀해주시길 텃밭 활동이 있는 날은 그 전날부터 준비물을 다 머리맡에 두고 잔다는 거예요. 한 주 동안 일기예보를 계속 보는 친구도 있고요. 우리가 소풍 가기 전에 느꼈던 걸 여기에서 느끼는 거죠.”(김정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동무였다. 2015년 정부 공식 집계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약 22만 명이다. 이들 중 외부 활동을 하거나 직업을 가진 이들은 드물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일자리는 우리의 생각과 달라요. 사실 정책을 만들 때도 그들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죠. 이들을 위한 일을 만드는 것도 비장애인의 입장이 반영되는 거죠. 이들은 ‘돈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만나는 게 즐거워서 오는 거예요.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예요. 갈 곳을 만들어 주는 거죠.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3명 중에 2명이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평균 친구 수가 1.4명인데, 그중에 1명이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예요. 비장애인 친구가 있다는 게 엄청난 자랑거리예요. 동구밭 활동이 이들에게 의미 있는 건 옆의 일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주변과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예요.”(노순호)

의학의 발달과 함께 점점 줄어들고 있는 다른 신체장애에 비해, 발달장애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 등이 그렇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교육을 이수한 뒤에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커피 내리는 법만 배워서는 안 돼요. 사람을 대하는 법, 동료와 관계 맺는 법 등도 알아야 해요. 직업교육의 문제는 그 일의 주된 업무가 커피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서 적응하지 못해서 빵 굽는 법을 가르친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노순호)


수익보다 변화를 꿈꾼다

성수에 위치한 옥상텃밭.
이들도 동구밭을 통해 알게 됐다.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교류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이들을 갑자기 일자리로 내보내는 건, 영어 교육 몇 시간을 수료하고 영미권에 일자리를 구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 친구들이 저를 보고 한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이들이 성장기에 본 유일한 비장애인이 선생님인 거죠. 8개월 정도 지나니까 이름을 불러요. 이렇게 관점이 달라져야 일자리를 구해도 장기적으로 근속을 할 수 있어요.”(노순호)

이렇게 친구가 되면 이들은 평생 동구밭지기들을 기억한다. 일 년이 흐르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흘러도 그렇다.

“제가 동구밭지기 1기 활동을 했어요. 당시 친구들을 일 년 뒤에 만났는데도 제 이름이랑 전화번호 그리고 제가 사는 곳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김정윤)

발달장애도 연령과 성별,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들을 위해 좀 더 세분화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한다.

“좋은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해요. 궁극적으로는 그게 공익이라고 생각하고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거예요. 가장 쉽고, 재밌고, 값싸게요. 발달장애인을 도와줘야 할 사람이 아닌 고객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기업의 속성도 있지만 ‘소셜 벤처’가 저희의 방향입니다. 수익을 내기보다는 사회에 변화를 가지고 오고 싶은 게 저희의 목표니까요.”(노순호)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들도 고민 중이다. 동구밭 농부들이 재배한 작물을 인근의 레스토랑이나 식당과 제휴를 맺고 공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숲 동구밭의 채소는 언더스탠드 에비뉴에 위치한 카페에 납품된다. 채소를 이용한 가공 제품도 개발 중이다. 텃밭에서 딴 케일, 바질, 상추 등을 40일간 저온에서 숙성해 만든 천연 비누다. ‘텃밭을 가꾸다. 관계를 가꾸다. 얼굴을 가꾸다’라는 의미를 담아 ‘가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재 동구밭 텃밭은 서울에 15군데 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일대일로 매칭해서 연간 단위로 밭을 가꿉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관계 맺기가 선행됐기 때문이에요. 그 후에는 장애인들도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요. 특히 고집스럽게 하나에 집중하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은 농사에도 이롭게 반영이 되지요. 머잖아 동구밭에서도 발달장애인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예정입니다.”(김정윤)

동구밭지기는 6개월 단위로 매년 2회 모집한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잘 살고픈 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자원활동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노순호 대표는 여기에 한 가지 당부를 더했다.

“선의의 유효 기간은 생각보다 짧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오히려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좋은 일 한다는 이야기보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학생들이 훌륭하네, 착하네’라는 말보다, 프로로서 인정받고 싶고요.”(노순호)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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