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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마이너스는 반드시 플러스가 된다

《우린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야》 박경남 작가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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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작가가 아니었어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죠.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했어요. 아버지는 내가 작가가 되길 바라셨어요. 내가 작가가 돼서 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어머니의 삶을 글로 남겨주길 원하셨어요. 일본 식민지 시절 경주 산골마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죽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때는 아버지에게 반항했는데… 조국에서 한국어로 번역돼 나온 내 책을 보셨으면 그 누구보다 좋아하셨을 거예요. 아버지의 꿈이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일본에서 논픽션 에세이 작가와 강연자로 활약 중인 박경남(66)씨가 서울을 찾았다. 저서 《우린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야》(빅뱅) 한국 출간을 맞아서다. 1990년에 나온 《꿈이여》로 작가 인생을 시작한 후 10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한국어로 된 자신의 책을 손에 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모두는 ‘기적’ 같은 존재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돗토리 현. 재일 한국인 2세 작가인 박경남씨의 고향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경주.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버지는 먼저 일본으로 건너간 할아버지를 찾아 할머니와 함께 현해탄을 건넜다. 조국을 떠난 이유는 대부분의 재일 한국인이 그랬듯 먹고살 게 없어서였다.

일본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간토대지진 당시 도쿄에 있다 자경단에 쫓겨 목숨을 잃을 뻔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입대를 앞둔 청년들과 싸움에 휘말려 사형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만약 그때 할아버지가 자경단에 살해당했다면, 아버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겠죠.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전쟁과 기아, 질병의 위험을 이겨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인 거죠.”

일본의 패전 이후 돗토리에 정착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고철 장사를 시작했다.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에 나오는 아버지 ‘김준평’처럼 모든 재일 한국인 1세의 ‘아버지’는 엄하고 엄했다. 집에서는 늘 존댓말을 썼다. 말대꾸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박경남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일본 이름인 통명(通名)을 썼다. ‘박경남’이 아닌 ‘아라이 게이코’였다. 그가 이름을 바꾼 것은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다.

“통명을 쓸 때는 늘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짜 박경남을 연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어요. 대학 입시 때 한국 이름으로 바꾸고 시험을 봤는데 왠지 모르겠는데 너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진짜 내가 된 기분이었어요.”

리쓰메이칸대와 교토대에서 사학을 공부했다. 교토대에서 1년을 보냈을 때다. 아버지는 맞선을 보라며 고향으로 돌아오라 종용했다. 박경남씨가 뜻을 따르지 않자 아버지는 직접 차를 몰고 교토에 왔다.

“여자는 일을 해선 안 된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여자의 행복이다.”

아버지 손에 끌려 고향으로 돌아간 박씨는 맞선을 보지 않고 2년을 버텼다. 그러던 중 사촌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 남편 윤지선 박사다. 조국(한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결혼을 결심했다.


네! 할 수 있어요!


결혼하고 얼마 있다 남편은 미국으로 떠나고 박씨는 여권 문제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남았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바꾼 지 꽤 됐지만 한국 정부는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전화위복이란 말을 써야겠다. 여권 문제로 일본에 남은 30대 후반의, 직장 경험이 전무한 아이 셋의 엄마, 박씨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아사히신문에서 나오는 보도사진집의 설명문을 쓰는 일이었어요. 해보겠냐고 하길래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유명 광고회사 덴쓰로부터 인터뷰 연재를 부탁받았다.

“내 신조가 뭔지 아세요? 어떤 실패든 괜찮다. 목숨만 잃지 않으면 된다. 이거예요. 인터뷰할 때 실패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언제나 마이너스는 플러스로 바뀌어요.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실패해도 괜찮아요.”

인터뷰 때 녹음기 버튼을 잘못 눌러 녹음이 안 되기도 했고 유명 가수를 만났을 때는 너무 흥분해서 혼자서만 떠들고 말았다. 녹음테이프를 재생해보니 자신의 목소리만 녹음돼 있었다.

“다시 전화를 해서 내가 재일 한국인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랬더니 자기 친구 중에도 재일 한국인이 있다며 소개해주겠다는 거예요. 콘서트에도 초대해 주었고요. 그렇게 내 삶의 인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재일 한국인’이라는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됐다. 재일 한국인임을 숨기지 않고 살아온 덕분에 재일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애초에 접근하지 않았다. 주변엔 늘 좋은 사람들만 모였다.


포기하지 않는 꿈은 현실이 된다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지만 한국 여권을 발급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원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아나운서 같은 거요. 하지만 내가 젊은 시절엔 재일 한국인은 아나운서를 꿈꿀 수 없었죠.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였지만 그대로 꿈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나운서 양성 학원에 등록해 젊은 사람들과 함께 석 달 동안 공부했어요.”

아나운서 양성 학원에 들른 방송국 프로듀서가 박씨의 이력서를 보고 새로운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데 방송작가로 합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네!,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담당 프로그램 DJ의 주선으로 좋아하는 노래와 그 사연을 이야기하는 코너에 출연했다가 청취자의 열렬한 반응으로 아예 ‘경남씨와 이야기하다’라는 코너가 만들어졌다.

“1986년에 드디어 받은 대한민국 여권을 손에 쥐고 친구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 경주를 찾아갔어요. 특급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한국의 풍경을 보며 두 번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할배와 할매가 생각났어요. 경주에 내렸을 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최진희씨의 〈꿈이여〉였죠. 라디오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눈물의 방송’ 이후 1년 반 동안 청취자가 보내오는 편지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경남씨와 이야기하다’를 진행하고 이를 엮은 첫 번째 책 《꿈이여》를 출간했다.

“작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반항했는데 결국 작가가 됐어요. 책이 나오면 늘 고향집에 가서 아버지 신위를 모신 불단에 책을 올립니다.”

일본에서 지금껏 열 권이 넘는 책을 냈지만 한국어로 된 책이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의 꿈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 같아요. 한국의 서점에 한국어로 번역된 내 책이 놓여 있는 걸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우린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야》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스무 편을 담은 인터뷰 형식의 에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지만 그들이 꺼내놓는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린 박경남씨의 가족 이야기부터 실명이라는 결정적 핸디캡을 딛고 그림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는 에무 나마에, 마쓰모토 사린 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갖은 고초를 당했지만 오히려 범죄자를 용서하고 포용한 고노 요시유키까지 어떻게 보면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나는 수많은 멋진 만남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한국의 청년들에게 내가 받은 ‘파워’를 나눠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실은 내가 글 쓰는 것보다 말하는 걸 더 재미있게 잘합니다.”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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