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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의대생들

‘의심 많은 작가들’ 김우형·임경호·황지민

방학을 맞아 친척들이 집을 방문했다. 사촌 동생은 의대생 이모, 쉼이의 방에 있는 많은 책들을 보고 신기해한다. “우와, 이거 다 이모가 공부한 거예요?” 그때 아이 엄마가 들어와서 이야기 한다. “이모는 낙성대 의대 다녀. 공부 아주 잘한 사람들이 다니는 데야. 부럽지? 이모처럼 공부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돼!” 그리고 다음 컷, 쉼이의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중고 책을 파는 사이트, 그리고 ‘한 번도 안 읽은 의학 서적 팔아요^^’라고 적은 게시 글.

자료제공 : 김우형, 임경호, 황지민
왼쪽부터 김우형, 임경호, 황지민
미소를 짓게 된다. 의대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잘하고, 책도 많이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공부가 힘든 학생이다. 의대생의 일상과 유머를 만화로 녹여내는 이들이 있다. 김우형(서울대 의대 본과 4학년), 임경호(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 필명 빨간후드), 황지민(연세대 의대 본과 2학년, 필명 디지티)이다. 이들은 ‘의사의 마음’을 가진 작가들이라는 뜻의 페이스북 페이지 ‘의심(醫心) 많은 작가들’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개설된 이 페이지의 구독자 수는 벌써 1500명을 넘었다. 같은 의대생들은 공감하고,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과 만화 자체의 재미를 충족시킬 수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


의대생들의 학업과 일상을 웹툰으로 연재

처음부터 함께 한 것은 아니다. ‘굴림체 소설’이라는 의대 생활툰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던 김우형 작가가 동업계(?) 페이지인 ‘디지티 낙서장’을 발견하고 흥미가 생겨 연락을 했다. ‘디지티 낙서장’에 연재 중이던 빨간후드 작가까지 셋이 함께 페이지에 만화를 올리고 운영하면 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각자 1000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었고 특히 ‘굴림체 소설’은 이미 상당 기간 연재해 왔기에 아까울 법도 한데, 아쉬움보다는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한다.

“물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좋죠. 그런데 그보다도 누군가 내 생각을 읽어주고 공감해준다는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인 경험이더라고요.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익숙해지면서부터는 재미도 있어요.” (김우형)

본업인 공부가 바쁠 때도 돌아가며 게시물을 올리니 페이지가 방치될 일도 없고 서로 보완해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의 판타지도 재미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의심 많은 작가들’은 본인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함으로써 많은 의대생, 그들의 친구들, 그리고 그 시간을 거쳤던 선배들의 공감을 산다.

“감성툰을 올린 적이 있어요. 의학을 공부하면서 답답하고 내가 너무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힘든 경험을 담아 솔직하게 그렸어요. 동기한테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번에 올린 내용 정말 좋다, 잘 봤다고. 그렇게 공감하는 피드백을 받으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황지민)

〈디지티의 작은 마을〉 3화.
실제 게시물의 댓글을 살펴보면 본인의 이야기 같다는 말이 많다. 김우형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피드백이라는 ‘ㅋ’만 수십 개를 쓴 댓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친구를 태그하며 ‘이거 너’라고 지목하기도 한다. ‘의학계, 의대생끼리는 서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페이지의 존재가 좀 더 빨리 알려졌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결국 재미있고 공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는 것이 아닐까.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만화 페이지를 시작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의대생 웹툰을 가장 먼저 연재한 김우형 작가는 의대라는 곳에서만 있는 일들이 재미있어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제 만화 대부분은 의대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하고 재미있는 상황들이 소재예요. 누가 아프다고 그러면 보통 걱정하며 병원에 가보라고 할 텐데 의대생들은 언제부터 그랬는지, 계속 그러는지 물어보면서 진료를 해버리거든요. 이런 일들이 재미있다고 느껴졌고,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만화로 그리게 되었어요.” (김우형)

초등학교 5학년 때 벌써 300원짜리 노트 8권 분량의 소설을 썼고, 지금은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는 김우형 작가는 글 쓰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다. 현재 자신의 본업이 글과 그림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정도. ‘온이, 쉼이, 느낌이, 물음이’라는 네 명의 캐릭터가 나오는 ‘굴림체 소설’은 ‘인성’이라는 캐릭터가 추가되어 올해 11월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방학에 대한 빨간후드 작가의 그림.
빨간후드 작가는 ‘그림’ 자체에 관심이 많다.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직업으로 할 때 불가피하게 따라올 그림 외적인 요소들에 쫓기고 싶지 않아 취미로 한다. 실제 빨간후드 작가가 ‘의심 많은 작가들’에 올리는 만화는 그가 평소에 그리는 그림과 매우 다르다. 보통 밑그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그림을 그리는데, 페이지에 올리는 작품들은 스케치 없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린다. 검정 펜 하나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다가, 근래에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마커를 사용해 색감을 추가한 정도다.

“밑그림부터 그려서 할 수도 있지만, 선만 가지고 그리는 그림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원근감이나 비율이 좀 맞지 않고 디테일을 생략하더라도 오히려 더 사실적일 수 있는 거죠. 보통 선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여백을 잘 활용하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게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임경호)

산·염기 지시약 색깔이 예뻐서 과학을 좋아했다는 디지티 작가의 만화는 색감이 화려하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귀엽다. 의대 내에는 수업, 필기, 문제 풀이를 동기들끼리 공유하는 시스템이 있다. 심장과 순환 파트를 맡아 해설을 하다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삽화를 넣었던 것이 페이스북 페이지 ‘디지티 낙서장’의 시작이다.

“무생물을 살아 있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보통 인체의 장기들, 바이러스를 귀엽게 보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징그럽다거나 거부감이 들 수 있는 것을 귀엽고 매력 있게 그리면서 현상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황지민)

디지티 작가의 만화는 크게 두 갈래다. 《이웃집 과학자》라는 과학 잡지에서는 〈이웃집 의대생〉 칼럼으로 의학·생물학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평소 친구들과 던지는 농담, 힘든 경험 등의 내용이 담긴 생활툰을 연재한다.


의대생들의 자유로운 커뮤니티 역할 기대

‘굴림체 소설’ 〈의대 아재개그〉 중.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페이지는 아니지만 ‘의심 많은 작가들’이 주목을 받으며 생긴 변화들이 있다. 디지티 작가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며 수줍게 웃었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 요청을 받아 홍보 자료를 그려준 일을 계기로 세미나에 방문했는데, ‘디지티’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소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는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항상 콘티 노트를 들고 다니며 만화로 그리기 적합한 수업 내용이나 농담이 있으면 적어둔다.

앞으로 ‘의심 많은 작가들’을 통해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거창하게 이 페이지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의심 많은 작가들’이 셋이 함께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자기 생활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김우형)

“‘나도 그려볼래’ 하고 자기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빨간후드랑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을 그린 것처럼, ‘세 개의 시선’도 해보고 싶고요.” (황지민)

“‘의심 많은 작가들’ 페이지에 대해서는 지금 이대로도 만족해요. 바라는 게 있다면 평소에 본인이 겪었던 일을 많이 제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방식으로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임경호)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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