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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동네 주치의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추혜인 원장

글 : 시정민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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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살림의원은 지역 주민들과 의료인이 공동으로 자본을 출자해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살림의원은 병원 운영과 의료 서비스 등을 조합원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 2012년 개원한 살림의원은 지난 8월 살림치과도 개원했다. 살림의원과 치과는 은평구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1880가구의 조합원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사진제공 : 살림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
건축가 지망생에서 의대생으로

살림의원 추혜인 원장은 토목건축학과에서 도면을 그리고 건축가를 꿈꾸던 공학도였다. 1997년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한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상담 업무를 돕게 됐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이 미미했어요. 상담소 선생님으로부터 법정에서 증언해줄 수 있는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 의대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의대 진학 후에도 여성단체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사는 의료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그는 단체에서 만난 살림의원 유여원 이사와 함께 뜻을 모아 2009년 1월부터 의료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활발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은평구에 자리를 잡았어요. 지역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은평구의 많은 주민이 운동하기 위해 모이는 불광천에도 가고, 지역 내 축제에 참여했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혈압, 혈당 검사, 건강 상담을 진행하고, 당뇨, 탈모, 우울증 등 알고 싶어 하는 건강 상식 등의 강좌를 하면서 의료 협동조합의 취지를 함께 알렸습니다.”

3년간 이들의 꾸준한 활동을 통해 의료 협동조합의 취지에 찬성하는 조합원이 하나둘 모였다. 병원에 대한 바람을 모아 조합원들과 함께 병원 장소를 물색하고, 실내 장식을 하며 합리적인 진료 수가도 구체화했다.


살림의원의 진료 과목은 가정의학과다. 일반 진료를 비롯해 건강검진, 생활습관의 개선, 약 대신 운동을 처방하는 등 질병 예방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개원 전부터 진행되었던 ‘건강 실천단’에서는 비만, 당뇨, 고지혈증 등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여 명을 대상으로 8주간 지속적인 주치의 상담, 현미 채식, 실천단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효과를 본 사람들의 신청이 늘어 지난해부터는 당뇨, 고지혈증에 한하지 않고 생활 개선 습관을 위한 ‘살림 협동 다이어트 실천단’으로 전환했다. 참여 인원을 100명으로 늘리고 100일 동안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살림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모두 함께 건강하게 사는 공동체를 꿈꾼다. 지역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다’의 ‘다’와 ‘짐(gym)’을 붙인 ‘다짐’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운동 처방 및 다양한 건강 프로그램 강좌도 진행한다.

“살림 협동조합에서는 내 몸에 대한 권한을 키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건강 교육과 관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죠. 운동을 같이 할 친구가 있다면 더 즐겁게 건강을 지킬 수 있어요. 그래서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내 건강뿐 아니라 모두 함께 건강해지는 것이니까요.”

정기적으로 건강 반상회도 실시한다. 칫솔질 하기, 간단한 비상약 관리, 심폐소생술 등 지역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건강 상식을 각 주제에 맞는 강사를 초청해 정보를 나눈다.


문턱을 낮춘 진료, 환자마다 적절한 맞춤 치료

‘다짐’에서 운동처방사의 지도에 맞춰 주민들이 근력운동을 하는 모습.
살림의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평등하게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의 문턱을 낮췄다. 일반 병원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성소수자 클리닉,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위한 배려도 놓치지 않았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문진표를 불편 없이 작성할 수 있도록 베트남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의 문진표를 준비했다. 살림의원에는 3분 진료가 없다. 1차 의료기관에서 의사와 환자가 꾸준히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진은 상담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환자의 가족력, 아이들의 경우라면 자라면서 앓았던 병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가족의 경우 진료 기록을 함께 묶어 관리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수족구병에 걸렸다면 다른 형제의 전염 대처 방법, 사후 관리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생제 처방도 적게 한다.

“대개 항생제는 방어 진료를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의 경과를 지속적으로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죠. 처음엔 환자가 낫지 않았다고 다시 찾아오면 저를 탓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다시 찾아와 편히 얘기해 주는 게 고마웠죠. 환자의 증상을 그때그때 파악하고, 새로운 치료 방법을 모색하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믿음이 생겼어요. 환자에게 적절한 맞춤 치료를 할 수 있어 항생제 처방을 적게 합니다.”

은평봄봄축제에 참여한 살림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들을 위한 건강 체크 및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병원 밖에서도 조합원, 지역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고 있다. 살림 협동조합에서는 산행, 댄스, 걷기, 반찬 만들기, 스페인어 배우기, 공동 육아 등의 소모임 활동을 한다. 그는 산행과 스페인어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각각 5~20명으로 이뤄진 소모임은 ‘재미있어야 건강하다’가 모토인 만큼 소모임 활동에 즐겁게 참여하는 게 건강 비결의 처방인 셈이다.

“진료실 밖에서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 뭔가 각별해지는 느낌이에요. 아플 때와 아프지 않은 때를 함께 보니 더 세심한 진료를 할 수 있고요. 제 잔소리가 많아지지만(웃음). 이게 동네 주치의가 아닐까요.”

살림의원의 독감 예방 접종비는 일반 병원보다 30%가량 싸다. 지역사회의 건강 증진을 위해 조합에서 수가를 낮게 책정했다. 손해도 감수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었다. 예방주사를 맞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역 내 독감 위험이 줄고, 접종을 하지 못하는 빈곤층에게도 간접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의사는 급여가 정해져 있다. 많은 환자를 진료한다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을 세심하게 돌볼 수 있는 동네 주치의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그는 독특한 방법으로 인센티브를 받고 있다.

“한동안 김치를 담그거나 사 먹어본 적이 없어요. 많은 조합원이 김치를 가져다 주셔서 동네의 모든 김치를 맛봤죠. 미용실에 가면 머릿결이 너무 상했다며 클리닉을 해주시고, 돈가스 집에 가면 왠지 제가 먹는 돈가스 크기가 훨씬 큰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조합원의 정성 어린 마음의 인센티브를 받고 있어요.”


그는 병원을 개원할 때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플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병원을 꿈꿨다.

“감기, 장염 등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은 이곳에서 케어하고, 위중한 질병인 경우 적절한 병원을 찾아 안내하는 것이 1차적 진료를 하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것을 가장 잘하는 곳이 살림의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 모습을 닮아 가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의대생 실습 요청이 들어올 땐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의료 협동조합에 뜻을 가진 의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네 주치의로 사는 보람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노후 준비를 살림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에서 하고 있다.

“일찍이 의료 협동조합이 발달한 일본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이었어요. 치매 환자 시설에 주민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자원 활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살림 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에서도 어르신을 끝까지 잘 모시고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 또한 마지막을 가족 같은 주민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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