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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국 국적과 이름으로 사업하는 기업인

재일 한국인 3세 김미화 몽슈슈 대표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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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오사카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도지마의 한 호텔 복도에 몽슈슈라는 간판을 단 작은 케이크 가게가 문을 열었다. 직원은 사장을 포함해 단 3명. 이 작은 케이크 가게는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직원 수 600여 명, 연매출 550억원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한국, 홍콩에 진출한 이 회사를 이끄는 대표는 일본인이 아닌 재일 한국인 3세 김미화(44)씨다.

사진제공 : (주)몬쉘코리아
케이크는 내 운명

김 대표가 나고 자란 후쿠오카 현 이즈카(飯塚) 시. 한때 탄광촌으로 번성했던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온 많은 한국인이 탄광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힘든 노동 후에 먹는 달달한 빵과 과자는 탄광 노동자의 솔 푸드(soul food)였다. 탄광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도쿄의 거래처나 은행에 인사 갈 때면 선물로 화과자를 들고 갔다. 그래서인지 이즈카에는 제과점이 많았다. 만주의 명가 지도리야(千鳥屋)와 히요코(ひよこ)의 발상지도 이즈카다.

동네에는 재일 한국인 1세부터 3세까지 많은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설날에는 한국식으로 떡메도 치고 떡국도 끓여 먹었다. 집 근처에 살고 있던 할머니와 만들어 먹었던 화전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이즈카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의 전통 과자부터 케이크와 같은 양과자, 그리고 한국의 떡까지 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세 살 위인 언니에게 제빵 도구를 물려받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케이크, 애플파이, 슈크림 등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케이크 만드는 걸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 대표의 꿈은 승무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어머니가 조선학교 출신은 승무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재일 한국인은 취업에 제약이 많았으니까요.”

기존의 롤케이크와는 달리 생크림을 듬뿍 넣고 한 겹의 시트로 감싼 도지마롤.
조선학교 출신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일단 학력 인정이 안 돼 일반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일본 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의 일을 돕거나 재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김 대표는 조선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

“학생들에게 늘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가르쳤어요. 재일 한국인이어도 못 할 일이 없다고 이야기했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야겠다, 나 자신이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그만뒀어요.”

8년간 근무했던 조선학교를 나와 머리를 식힐 겸 떠난 50일의 유럽 여행이 김 대표의 인생 좌표를 바꾸어 놓았다.

“유럽은 어딜 가든 길거리 곳곳에 예쁜 케이크를 파는 가게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카페에서 손바닥만 한 케이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일상의 풍요로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느꼈어요.”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 케이크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베이킹을 취미로 해왔지만 자기 가게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가게 자리가 문제였다.

“친구 따라 사업가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게 됐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케이크 가게를 열려고 준비 중이라 했더니 자기네 호텔에 와서 해보지 않겠냐는 거예요. 망설임 없이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죠.”

우연과 행운이 따른 일이었다. 오사카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도지마의 유명 호텔 복도 한쪽에 직원 둘을 두고 케이크 가게 ‘몽슈슈’를 열었다. 오전 5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했다. 잠은 주방에서 잤다.

“처음부터 장사가 잘된 건 아니었어요.”

케이크는 팔리지 않았다. 삼 일째 되던 날 불안이 엄습해 왔다. 회사원이 많은 비즈니스 거리라서, 주말에는 회사가 쉬니까, 가게가 안 되는 건 다 ‘도지마’ 탓이라 생각했다.

“당시 효고 현에서 성공한 케이크 가게에 배우러 갔다가 기본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혼만 나고 돌아왔어요. 생각해 보니 전 남 탓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김 대표는 가게 문을 닫는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자전거에 케이크를 싣고 도지마 지역의 고급 식당과 클럽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홍보를 시작했다. 사업가, 연예인, 스포츠 스타 사이에 입소문이 나며 가게에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케이크가 금세 다 팔려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이 많아졌어요. 오븐을 풀가동해도 손님 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죠. 손님에게 다 팔렸으니 그냥 가시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싫었어요.”

한 대의 오븐으로는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 대표는 궁리 끝에 답을 찾았다. “롤케이크에 들어가는 시트의 양을 줄이고 생크림 양을 늘리는 것이었죠.”

덕분에 배 이상의 롤케이크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빵과 크림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들어가는 기존의 롤케이크와는 전혀 다른 몽슈슈의 롤케이크를 두고 유명 파티시에들은 “저건 롤케이크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비난받아도 괜찮았어요. 그분들은 20년, 30년 엄청난 수련 끝에 장인이 된 사람들이잖아요. 제가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비난보다도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는 게 더 마음이 안 좋았으니까요.”

지금은 오사카의 도지마를 상징하는 롤케이크가 됐다. 바로 몇 시간씩 줄 서서 사 먹는다는 ‘도지마롤’이다. 몽슈슈가 우메다 한큐 백화점에 입점했을 때 도지마롤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지하 1층 매장부터 7층까지 줄을 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긴자 미쓰코시 백화점이나 우메다 한큐 백화점,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공로상을 여러 번 받았어요. 도지마롤을 사려고 온 손님들 덕분에 백화점 매출이 30%나 올랐다고 해요.”


성차별, 학력차별 없는 회사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내에 김 대표의 방이 따로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근무했다. 현장에서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도지마 본점 매장에 수시로 나간다. 회의 시간에는 직책과 상관없이 먼저 오는 순서대로 앉는다. 직원 채용 시에는 성별, 학벌 등은 보지 않는다. 승진 역시 경험과 능력 위주로 이뤄진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임원 자리에 오른 직원이 있을 정도다.

“몽슈슈는 케이크를 통해 손님에게 행복을 드리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을 위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모자라는 지식과 기술은 회사에 들어와 배워도 늦지 않아요.”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육아를 병행하는 여직원에게는 탄력근무제를 실시하고 남자 직원에게는 휴가를 줘 자녀의 학교 행사에 적극 참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지난 8월, 몽슈슈는 한국 진출 3주년을 맞이했다. 9월 7일에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에 매장을 냈다. 제과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매장에 오픈 키친을 두어 손님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바로 만든 제품을 제공한다. 부산의 명소인 동백섬을 주제로 한 ‘동백롤’을 선보였다. 도지마롤에 들어가는 생크림인 샹티이를 얇은 떡으로 감싼 ‘샹띠모찌’도 국내에서 첫 판매를 시작했다.

“귀화하고 통명(일본식 이름)을 쓰면 사업하는 데 있어서는 유리하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서 고생하며 살아온 재일 한국인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과 조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국인으로 살아온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되겠죠.”

일본 재계에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과 이름으로 사업하는 기업인은 김미화 대표 외에는 거의 없다. 김 대표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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