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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알록달록 가치를 입히는 사람 컬러리스트

직업의 세계 / 컬러리스트

글 : 시정민 기자  / 사진 :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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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한국케엠케연구소
패션기업 ‘베네통’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알록달록 선명한 색채다. 베네통의 색채마케팅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애플은 1998년 컴퓨터 아이맥에 누드 외관과 화려한 색상을 입혀 이목을 끌었다. 포카리스웨트는 시원한 느낌, 갈증을 해소해주는 음료라는 콘셉트를 파란색과 흰색의 글씨로 표현했다. 색깔은 광고,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컬러리서치연구소(ICR)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가 상품을 결정하는 시간은 90초 안에 잠재적으로 이뤄지고, 상품이 좋고 싫은 판단도 80~90%가 컬러에 의해 좌우된다.

색은 제품, 디자인, 인테리어 등 생활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산업의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색을 연구하고 색채에 대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컬러리스트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색채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최신 색채 트렌드, 유행 색상 등을 제시한다. 제품 및 용도에 맞는 색채를 기획해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매출 향상을 도모한다. 색상이 지닌 속성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색채 선진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명 디자이너, 예술가가 다수 배출되는 유럽에서 컬러리스트는 이미 활성화된 직업이다. 100여 년 전부터 컬러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교, 사설학원 등에서 컬러리스트의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해왔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화장품, 가전제품 분야에서 색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는 2002년 색채 전문가(컬러리스트 산업기사)를 선발하는 컬러리스트 국가공인 시험을 신설해 지난해까지 12만 2805명의 인력을 배출했다. 컬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컬러리스트 산업기사’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유리하다. 용인송담대와 대전보건대에는 컬러리스트과가 개설돼 있으며, 패션·미술 관련 학과에서 색채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컬러리스트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컬러리스트 전문 사설학원에서 실시하는 색채학지도법 강좌, 색채전문인 양성과정 등의 교육을 통해서도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컬러리스트의 활동 영역은 폭넓다. 이전에는 주로 패션, 섬유 분야에 한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제품디자인, 그래픽, 영상, 미용, 출판, 실내디자인, 심리치료, 제품개발, 기업컨설팅, 인테리어까지 다양하다. 영상의 경우 색채연출을 통해 영상물 전체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결정하고, 화장품 분야에서는 계절, 피부 톤, 나이, 유행 색 등을 고려해 화장품 색상을 만든다. 수입은 활동 분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컬러리스트는 미적 감각과 풍부한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수십만 개의 색을 분석하고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세한 색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분석능력과 함께 컬러 정보를 수집해 브랜드 및 제품에 맞는 색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유행 컬러와 트렌드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관찰력과 통찰력, 소비자의 감성 및 유형을 파악해 이를 실용화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마지막 요소는 컬러다.

잘 지은 건축물이나 예쁘게 디자인된 상품이라도 컬러 선택이 적절하지 못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품질과 디자인, 컬러가 상품의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에 색이 중요해지는 만큼 컬러리스트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컬러리스트 김민경

색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

1990년대 후반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을 국내에 알린 김민경씨는 화장품에 컬러마케팅을 도입해 국내 최초 펄 립스틱을 만들었다. 가전제품에 레드 마케팅을 도입하는가 하면 서울시 디자인 자문위원으로 지하철 3,9호선 디자인 컨설팅, 육군사관학교 색채디자인, 자동차, 도시디자인 등 산업 절반에 걸쳐 컬러 컨설팅을 하고 있다. 컬러리스트 양성교육, 강연, 《튀는 색깔이 뜨는 인생을 만든다》 《PCS 퍼스널컬러 시스템 워크북》 《색깔의 수수께끼》 외 다수의 책을 펴냈고 가구, 인테리어 등 여러 분야의 컬러를 접목한 컬래버레이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컬러에 매료되다

어린 시절 화가 이모부와 도예가 이모에게서 그림을 배우며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20대 중반 프랑스에 놀러 갔다 우연히 한 원단 공장에서 파란색이 하양, 검정 등 베이스 색에 따라 수천 가지 색으로 나뉘는 것을 보았다. 섬세하고 정확한 색을 뽑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컬러의 매력에 빠졌다. 컬러리스트란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공부를 해보고 싶었지만 국내에서는 교육하는 곳이 없었다. 무작정 컬러로 유명한 독일 메카투라 색채연구소 및 교육기관을 2~3달 동안 둘러보며 컬러리스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봤다. 그 후 컬러리스트를 하겠다고 다짐했던 프랑스를 다시 찾아 에콜드 미셸뒤마 툴루즈 뷰티예술학교, 에콜드 마르즈 베르레르 예술학교에서 컬러리스트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


화장품과 가전제품에 색을 더하다

색채에 대한 공부를 마무리하고 국내에서 색채연구와 컬러컨설팅을 하기 위해 1993년 한국케엠케연구소를 세웠다. 컬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 없던 당시 각 개인, 기업에 맞는 퍼스널 컬러를 제안하자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1990년대 후반 해외에서는 화장품 개발을 아시아, 미국, 유럽 등 각 나라에 맞는 피부톤에 맞춰 출시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출시한 컬러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화장품의 색상을 더 세분화해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화장품 관련 컬러 사례들을 비교 분석해 데이터를 구축했다. 그리고 화장품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는 노르스름한 베이지색의 파우더밖에 없었다. 한국인 피부에 잘 어울리는 핑크빛이 도는 밝은 베이지를 제안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전제품의 색상이 블랙이 주를 이뤘던 2006년 홈시어터에 펄을 넣은 레드와인 색상을 제안했다. 가전제품에 레드 열풍이 이는 시초가 됐다.


모두가 공감하는 컬러

김민경씨가 색채디자인한 육군사관학교 종합교육관의 내부.
색을 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트렌드, 사용자의 공감 여부, 회사에 손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컬러리스트의 주관적인 견해보다 이전에 유행했던 컬러, 판매 기준 가치, 타제품과 비교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색채를 결정한다. 제품 디자인의 소재가 결정되면 섬유, 페인트, 화장품, 플라스틱, 금속 등 소재별로 활용성이 높은 색채의 비율을 고려해 컬러를 적용한다. 모두가 공감할 컬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늘 “이건 어때”라고 물어보는 게 습관이 됐다. 컬러리스트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컬러는 통계

제품을 만들 때 색채와 관련된 자료 수집 후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제품에 맞는 색채를 기획한다. 2006년 얼굴 유형에 따른 계절 컬러 톤 분석 시스템을 연구개발 했다. 일반인들의 얼굴 유형을 192가지로 세분화해 다시 나이, 피부톤, 계절로 나눴다. 이에 맞는 파운데이션과 색조 화장품 등의 색을 코드화했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2520가지에 이르는 컬러 팔레트를 선보였다. 한국케엠케연구소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만들어 ‘한국 여성의 인구통계학적 변인에 따른 색채 선호도 및 활용에 대한 연구’ ‘실용 한국 섬유 표준색 모음집 (KOSCOTE)을 활용한 퍼스널 컬러 진단 방법 제안’ 등 해마다 주제를 선정해 연구한다. 색채는 경험과 통계를 통해 입증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와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실생활과 자연환경에서 얻는 아이디어

강남구 삼성1동 ‘음식문화 특화거리’의 색채디자인을 맡아 색칠하고 있다.
컬러리스트는 컬러 트렌드 및 소비자의 감성 트렌드를 연구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프랑스, 독일 등 해외 곳곳으로 출장을 간다. 20여 년 동안 매년 들르는 곳은 프랑스의 툴루즈와 아이비다. 건축물과 상가 건물에 쓰인 컬러, 지붕 컬러, 간판의 정렬된 컬러의 배색 등을 통해 다양한 영감을 얻는다. 아침, 점심, 저녁 각 시간대 빛의 각도와 세기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것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사진을 보며 색의 이미지와 제품의 연관성을 생각한다. 일상생활의 컬러와 생활소품에 주시하며 매일 2~3시간씩 걷는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변화를 알 수 있어 좋다. 이렇게 얻는 아이디어로 우유팩 디자인을 화장품 디자인에 넣기도 하고, 자동차 컬러를 가전제품에 적용한다. 자연환경, 실생활에서 얻는 아이디어를 다양한 방면으로 풀어낸다.


컬러 효과

환경에서 느끼는 컬러의 효과도 크다. 2014년 육군사관학교 종합교육관 색채디자인을 맡았다.

군 사병의 정서적 교양 향상과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컬러를 제안했다. ‘노랑-희망, 그린-평화, 블루-신뢰, 베이지·그레이-명예, 레드-열정’ 등 모두 5가지 컬러를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층별로 사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공간이 달라 보이도록 색채를 배색했다. 병영문화, 군 이미지 개선 및 문화 환경을 과감하게 바꾼 사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컬러리스트가 뭐예요?


1990년대 초반 일반 소비자는 물론 기업 담당자들에게도 컬러리스트는 매우 생소한 직업이었다. 1995년엔 컬러리스트란 직업 명칭을 방송에서 쓰면 심의에 걸렸다. 국내에서 정식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스널 컬러에 대한 얘기를 하면 피부미용 전문가라고 불렀고, 디자인·제품 등에 쓸 컬러를 제안하면 디자이너가 할 일이라며 컬러리스트가 왜 필요하냐는 식이었다. 그때마다 똑같은 빨간색이라도 국제 규격에는 3000여 개가 넘는 빨간색군이 있기 때문에 제안하는 색을 사용했을 경우의 효과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인테리어의 경우 벽, 바닥 등 공간에 대한 컬러, 그 공간에 어울릴 만한 액자, 가구 등의 컬러를 제안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컬러와 디자인을 결합한 시도가 본격화되면서 컬러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 건축물, 인테리어,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컬러 컨설팅 의뢰를 받게 됐다. 컨설팅한 제품이 큰 인기를 얻거나 그 제품을 계기로 기업,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공간에 예술을 더하다

지난 6월 공간디자이너, 다섯 명의 컨템포러리 아트 현대 작가의 작품에 리빙 컬러를 접목한 〈공간에 예술을 더하다〉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셀프 인테리어’가 대세인 요즘, 색을 활용해 공간을 어떻게 달리 보이게 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7-2018 리빙 트렌드 컬러 20’의 블루, 베이지, 그레이, 퍼플, 레드, 그린, 바이올렛, 핑크, 브라운, 인디고블루 등의 색을 활용해 전시품을 더 돋보이게 했다. 앞으로도 슈즈, 패션 등 다양한 아이템과 색을 접목한 전시를 기획할 계획이다. 전시를 통해 최신 컬러 트렌드를 접하고, 전시 공간에 쓰인 색채 배색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팁도 제공하고 싶다. 다양한 분야에 색이 어우러지는 전시가 문화예술의 새로운 플랫폼이 됐으면 좋겠다.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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