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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는 곳이 영화관

‘팝업시네마’ 만드는 모두를 위한 극장 김선미·박설아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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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고 싶은 영화를 볼까, 볼 수 있는 영화를 볼까. 가까운 곳에서 시간 맞는 영화를 본다면, 관객의 선택권은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스크린 독과점을 지적하는 소리는 높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4개의 대형 배급사가 전체 관객의 90%를 점유한 시대, ‘모두를 위한 극장’은 그 외의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를 위해 영사기를 돌린다.
왼쪽부터 프로그래머 김선미, 홍보팀 박설아.
〈드롭박스〉라는 영화가 있다. 작은 상자 안에 담긴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7월 7일 현재 상영관은 서울에 한 곳, 상영 시간은 오전에 한 번이다. 애써 만든 영화인데, 관객을 만나기는 더 애달프다. 이 영화를 보려면, 파일이 업로드 되기를 기다려 불법 다운을 받거나 IPTV를 이용해야 한다. 파일을 구하기 어렵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아쉽게 놓친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면 ‘공동체 상영’이라는 방법이 있다. ‘공동체 상영’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모두를 위한 극장’에서는 보편적이다. 이 극장은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민과, 영화를 틀고 싶어도 틀지 못하는 소규모 제작자들을 연결해준다. 전국 224개 지자체 중 극장이나 스크린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100군데가 넘는다. 대형 배급사가 선점하는 멀티플렉스는 전국 주요 도시에 밀집해 있다. 1인당 한 해 영화 관람 횟수 4.6회, 천만 관객 영화가 한 해에 2편씩 탄생하는 영화 강국이지만 영화 건강국은 아닌 셈이다. 영화 생태계의 건강함을 되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한 이들이 바로 ‘모두를 위한 극장’이다.

‘모두를 위한 극장(이하 모극장)’은 공정영화를 위한 협동조합의 성격을 띤다. 모극장이 최근에 주력하는 사업은 ‘팝업 시네마’다. 영화를 원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극장이 열린다. 팝업 시네마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함께 관람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한 뒤 팝업시네마 사이트에서 영화를 신청한다. 결제가 되면 배달된 DVD를 받아 상영회를 연다. 상영회는 누구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틀 수도,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 수도 있다. 행사를 마치면 다시 모극장으로 반납하면 된다.

모극장은 2013년에 생겼다. 처음에는 동아리 같은 모임이었다. 당시 열었던 ‘랩톱영화제’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화제가 됐다. 김선미 프로그래머는 모극장의 영화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박설아 홍보팀원은 이를 세상에 알린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학생 시절 모극장 ‘청년기획단’에 몸담은 바 있다.


영화 배달 왔습니다

팝업시네마 사이트에서는 원하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랩톱영화제는 일종의 테스트였어요. 사람들이 극장이 아닌 곳에서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할지, 공정영화라는 가치에 공감할지에 대한 실험이었죠.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선유도 영화제였어요. 한강 둔치에서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였는지 70명가량이 모였어요.” (김선미)

첫 모임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학생들이 영화배급산업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졸업작품을 공들여 찍어도 영화가 극장에 걸리지 않으면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제작자와 관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협동조합이었다. 배급사를 거치지 않고 일종의 직거래를 하는 방식이었다. 감독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만들었다. 청년기획단을 만들어 청년들의 참여도 이끌었다.

“저는 청년기획단 출신입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였어요. 제가 모극장의 영화 도서관인 ‘늘씨네’를 참 좋아했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대학생이다보니까 기획단에도 관심이 갔어요. 무엇보다 이들이 노력하는 모습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그 ‘인격’이 예뻐 보였어요.” (박설아)

모극장에는 상근으로 일하는 직원이 다섯 명이다. 이들 중에는 청년기획단으로 시작해 조합원이 되고 직원이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모극장의 방향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이들이다.

모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모습.
“학창 시절에 영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혼자 영화제도 자주 갔고요. 그런데 그걸 나눌 친구들이 많지 않았어요. 여기에서는 많은 사람과 좋은 영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김선미)

모극장의 창립 멤버 김남훈 이사는 ‘입봉’을 앞두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조합을 운영하면서 이것이 창작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당연히 누려야 할 문화 향유권을 누리지 못하는 관객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 둘 사이를 막고 있는 저작권 문제나 상영 장소 문제는 모극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저작권 문제는 배급사와 직접 조율을 진행하고, 각 지역의 생협과 연계해 장소를 제공받는다. 지역마다 있으나 잘 사용하지 않는 문화회관이나 대강당 등의 유휴 공간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천 개의 작품 중에 어떤 작품을 올릴 것인가가 프로그래머의 역할이에요. 올해가 지나면 팝업시네마에 누적된 영화가 500편 가까이 될 것 같아요. 오히려 관객이 플랫폼에 들어와 선택의 어려움을 느끼실 수도 있죠. 그럴 때는 기획전을 엽니다. 예를 들어 3월에 세계여성의 날이라는 이슈가 있으면, 여성 관련 영화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죠.” (김선미)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상영회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 어떤 식으로 상영할지에 대한 기획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인생을 바꾸는 영화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하는 공동체도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여가시간에 볼 영화를 원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위한 맞춤 영화를 제안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모극장은 문화는 아래에서부터 변하는 게 맞다고 본다. 시민의 자발성이 결국 기획의 지속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공동체 상영’을 친숙하게 느끼길 바라면서 전국에 있는 미디어센터와도 연계활동을 하고 있어요. 영상을 배우고 싶은 분이나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을 모아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거죠. 올해로 3년 차 되었습니다. 이들이 직접 영화제를 기획하는 시민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박설아)

모극장의 성장 만큼 이들도 성장한다. 두 사람은 특히 ‘늘씨네’의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언제든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던 ‘늘씨네’는 공덕에 있는 주민 문화공간 ‘늘장’에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안에 영화 관련 DVD를 모으고 도서를 쌓는 것도 조합원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인디밴드, 독립영화 감독 등과 함께하는 ‘늘씨네와 벗들’도 즐거웠다. 영화가 끝나면 밤새워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상영회가 끝나기도 했다.

어떤 영화는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모극장을 찾는 이들은 그 경험을 한 번씩은 해본 이들이다.

그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영화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예를 들어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가 있다. 김선미 프로듀서는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보고 이후 소록도로 떠났다. 여행은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 경험이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덕분에 주변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내적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물어봐요. 영화를 좋아하면 대형 배급사나 제작사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지금 제 삶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인 것 같아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니까요.” (김선미)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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