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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담긴 안경 만드는 안경 디자이너

직업의 세계 / 안경 디자이너

안경은 1260년에서 1280년 사이에 발명되었다고 추정된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이다. 누구에 의해 발명되었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이 써 왔는지는 명확하다. 초기에는 안경이 고가(高價)의 명품이라 귀족들이 주로 착용했다. 이후에는 글을 쓰고 읽어야 하는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경을 쓸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와 신분적인 자유를 갖게 된 것은 최근 100년 내의 일이다. 안경이 대중화되자 이제 안경은 시력 교정의 기능뿐 아니라, 각 사람의 기호를 반영하게 됐다. 안경 디자이너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참고자료 : 《안경의 문화사》, 청년포털
안경을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힌다. 기술력이 뛰어난 나라는 일본, 덴마크, 오스트리아, 독일 등이 있고, 디자인이 뛰어난 나라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있다. 한때 한국은 세계 2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안경 강국이었다. 1995년에는 안경만으로 수출 2억5000만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저가 안경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2004년에는 세계 점유율이 8위로 떨어졌다. 중국이 규모의 성장으로 신 안경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면, 한국과 일본은 품질 면에서 경쟁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의 안경 강국이다. 품질과 디테일 면에서 우수하다. 실제로 일본 브랜드인 ‘로고스텍’은 울템 안경테(사용자의 얼굴 형태에 따라 모양 조절이 가능한 안경테)를 개발해 시장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는 대구에 큰 안경 공단이 있다. 하지만 실제 안경의 시작인 디자인부터 마지막 제조 단계까지를 총괄하는 ‘안경 디자이너’는 손에 꼽힌다. 현재 국내 안경 디자인 인력의 대부분은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CAD, 일러스트레이터 등 컴퓨터 그래픽을 다루는 이들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의 업체가 고유의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기보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살짝 변형해 빠르게 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서다. 업체의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부는 2010년 세계시장 3위권 진입을 목표로 안경산업지원센터를 열었다. 한국안경산업지원센터는 대구가톨릭대 디자인 관련 학과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대구보건대와 안경 디자인 전문 인력 양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해마다 신인 안경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한 ‘대한민국 안경디자인 공모전’도 열고 있다. 실제로 안경 수출액은 2008년 1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서서히 증가세를 보였고 지난해에는 2억4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3D, 4D 시대가 열리고 한국의 배우나 스타가 쓴 안경이 한류를 타고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안경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나리라는 전망이다.

안경 디자이너는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등 디자인 관련 학과를 전공한 뒤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CAD,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루거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에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업체에서 디자인 실기시험을 치르거나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안경 디자인이 생소하던 시기에 100% 수공예 안경을 만든 수작전 대표 김종필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기본기를 알고 있는 것이 안경 디자인에도 필수”라고 말했다.

실제 안경을 디자인할 때는 세계시장 조사, 디자인 콘셉트 작성, 대중 선호도 등의 자료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에 맞는 모양과 제품의 원료, 생산기술과 방법 등에 대한 논의도 필수다. 제품의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영업팀, 안경사와 함께 형태를 구상해 컴퓨터로 디자인을 완성한다. 여기에 실물 크기의 최종 샘플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략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1세대 안경 디자이너 김종필

안경을 ‘개성의 아이콘’으로 만든 선구자

안경은 마술이다. 오래된 순정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안경을 벗는 순간 예뻐졌다. 지금은 다르다. 안경은 ‘패션의 완성’이다. 시력 교정술이 발달하면서 안경을 사용하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은 기우였다. 이미 20년 전 한 발 앞서 안경도 ‘디자인이 곧 브랜드’라며 한국 안경 디자인의 선구자로 활약한 김종필 디자이너를 만났다.


뼛속까지 핸드메이드

어릴 적부터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온 가족이 그랬다. 집 안의 가재도구는 대부분 아버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중학교 때까지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자랐다.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랐다. 두드리고, 자르고, 조립하는 일은 유일한 취미이자 재미였다. 지금도 ‘수(手)작전’ 브랜드에서 만드는 안경은 90% 이상이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진다. 보통 핸드메이드 안경이라고 해도 그 비율이 10%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핸드메이드’의 이름을 쓰려면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만드는 사람의 재미고, 자존심이다.


두 차례의 공모전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천성의 발현이었다.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결과물을 기다리는 과정은 지난했다. 휴학 후 군대에 갔다. 제대 후 당시 가장 큰 안경 전문점이던 ‘서전안경’에서 안경 디자인 공모전을 여는 것을 알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온 터라 마음에 장벽이 없었다. 물방울 모양을 콘셉트로 안경을 디자인했다. 실용성을 갖추되 ‘유니크함’을 살리자는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두 번째 열린 공모전에서도 입상했다. 때는 외환위기의 삭풍이 한국을 휩쓸던 1998년, 그는 서전안경에 입사하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다

수작전에서 제작한 수공예 안경.
그 후 여러 곳의 안경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디자이너로 시작해 디자인 팀장, 홈페이지 운영자 등을 거쳤다. 안경을 만들다 보니 안경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경에 담긴 역사, 안경의 문화사 등이 궁금했다. 특히 해외의 안경 박람회에 나가본 경험은 그의 눈을 뜨이게 해 주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가 도수에 맞는 안경을 쓴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웹디자인을 배운 경험을 살려 2002년 ‘아이스토리’라는 홈페이지를 열었다. 세계의 트렌드, 눈에 띄는 안경 이야기 등을 담았다. 공부한 만큼 공유하면 안경에 대한 이해가 더 풍성해지리라는 기대였다. 소비자뿐 아니라 업체에서도 관심이 많아 ‘아이스토리’는 안경인들의 명소가 되었다.


안경전시회, 그리고 한류

2014년에는 안경 디자이너로서 호림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2015년에도 가나아트센터에서 수작전 제품 전시회가 있었다. 하루 종일 작업하면 2개 정도의 수공예 안경을 만들 수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안경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유럽,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작전 제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그의 제품을 모방한 카피캣도 등장했다. 김종필 디자이너가 만드는 안경에는 하나로 관통하는 이미지가 있다. 다름 아닌 ‘물’이다. 첫 공모전의 테마가 물방울이었던 것처럼 그의 안경에는 물의 이미지가 흐른다. 홍대의 안경원 이름은 ‘샘’, 인사동의 안경원 이름은 ‘소나기’, 작업실의 이름은 ‘디자인 샤우어(shower)’, 그가 만든 안경 브랜드의 이름은 ‘코드 비’다.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수작전이 90% 이상 수공예로 만들어진 견고한 수공예 안경이라면, ‘코드 비’는 이를 대중화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디자인은 브랜드다


디자인을 내놓으면 브랜드가 된다. 이제 디자인을 보고 브랜드를 묻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필 디자이너의 디자인도 하나의 브랜드다. 특히 그의 손으로 만든 제품은 아세테이트 소재를 사용한다. 뿔테처럼 보이는 이 안경은 나무가 가진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뿔이 가진 유연한 느낌을 함께 담고 있다. 김종필 디자이너는 디자인 시안에 따라 이 안경 하나 하나를 깎고 다듬고 문지른다. 그의 시그니처가 된 이 안경은 고유의 질감과 톱날이 지나간 자리의 손맛이 살아 있다. 다양한 컬러를 시도해볼 수 있고, 그 견고함이 오래간다는 것도 아세테이트의 장점이다.


눈을 보고 말해요

안경 디자인이라는 한 우물만 판 지 20년이다. 안경 디자인에 대해 전반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 안경을 통해서 생기는 만남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안경이 있다는 게 기쁘다. 판매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 이 작업 자체를 주목해주는 것이 기쁨이다. 안경을 만들 때 반영되는 김종필 디자이너의 취향은 유니크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유니크함에 위트가 있으면 좋겠다. 안경은 그 사람 고유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어떤 안경은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는 안경으로 만든다. 어떤 안경은 그 사람의 매력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안경의 묘미다.


미래의 후배들에게


끈기가 필요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안경 디자인도 밖에서 보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고 신나지만은 않다. 화려한 모습에 끌려 시작하면 어려운 것을 버틸 힘이 없다. 싫증을 내지 않으려면 지속성이 필요하다. ‘참고 하겠다’는 목표의식이 있다면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김 디자이너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 일이 20년 동안 이어온 하나의 습관이 됐다. 누군가는 그를 ‘철들지 않는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디자이너에게 일은 취미이자 즐거움이다. 그는 안경 하나를 제작하면 쭉 쓴다. 가지고 있는 10여 개의 안경 중에 주로 쓰는 건 두세 개 정도다. 만드는 것부터 디자인을 풀어가는 방식에는 모두 그의 취향이 담긴다.


안경의 미래

지구의 어떤 나라는 이제 막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지구에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아직도 많다. 안경도 한류 콘텐츠처럼 하나의 콘텐츠다. 이것을 잘 풀 수 있다면 세계적으로 전망이 있다. 안경에 담긴 스토리, 콘텐츠가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면, 한국 안경에 제2의 부흥기가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시력 교정술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필요보다 패션으로 안경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3D 안경의 개발이나 구글 안경의 등장도 안경시장을 확대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역시 지금 그 접촉점을 열심히 찾는 중이다.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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