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문막읍 후용리 예술인 공동체 ‘아트팩토리 후’

시골에서 함께 작업하며 미술관 만든 화가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 마을회관 옆에 자리 잡은 창고 건물 문을 여니 뜻밖의 공간이 나타난다. 작은 미술관과 화가들의 작업실이다. 강지만, 김용석, 윤기원, 이재열 작가는 2015년 4월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아트팩토리 후’라고 이름 짓고 함께 생활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석, 윤기원, 이재열 작가.
화가들의 시골 생활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기원씨는 “시골에서 생활하지 않았다면 제가 작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라고 말한다. 홍익대 회화과 졸업 후 친구들의 스냅사진을 바탕으로 원색의 팝아트 같은 초상화를 그려 꽤 ‘팔리는 작가’였던 그는 미술시장이 가라앉자 작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때 우연히 원주시 부론면 노림리 폐교에 있는 강지만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고, 폐교 전체를 빌려 작가들의 작업실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노림스튜디오’라고 이름 붙였다.

“만약 서울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골 폐교로 들어가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어 작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젊은 작가들은 서로 작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얻는 게 많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게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데도 힘이 되죠.”


주민들과의 화합이 우선 과제

시골 마을 창고 건물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시골 생활은 생활비가 별로 들지 않는 데다 조용해서 작업에 집중하기 좋다고 이들은 말한다. 한국화를 전공한 이재열 작가는 이리저리 작업실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다 2013년 노림스튜디오에 합류했다. 그는 “바쁘고 붐비는 도시에서 살다 시골에 들어오니 매사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죠”라고 말한다. 김용석 작가는 중앙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레핀미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고향인 평택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근처에 미군부대가 들어서면서 헬기, 전투기 소음 때문에 작업에 몰두할 수 없어 2012년 노림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시골에 자리 잡은 화가들에게는 그곳 주민들과의 화합이 우선 과제였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주민들이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늦잠을 자는 작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골 마을 후용리에서 함께 작업하는 아트팩토리 후의 작가들.
“밤에 작업이 더 잘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시죠. 틈만 나면 ‘왜 밤에 일을 해?’라고 물으세요. 그보다는 볼 때마다 열심히 인사하고, 포도 봉지를 씌우거나 수박을 나르면서 일손을 도와드리니 서서히 저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시시때때로 쌀에 김치에 과일을 가져다주셔서 과일은 1년 내내 떨어지지 않고 먹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마을 분들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가 폐교된 후에도 방치되지 않고 불이 켜져 있는 데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마을 주민의 집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축제 때 초상화를 그려드리면서 그들과 더 가까워졌다. 이렇게 한발 한발 주민과 가까워지고 있을 때 폐교를 떠나야 했다. 학교 운동장 중 일부가 도로로 수용되면서 재계약이 어려워졌다. 뿔뿔이 흩어져야 했을 때 9명의 작가 중 4명이 이웃 마을인 후용리로 옮겨 ‘아트팩토리 후’를 만들었다. 이들은 마을회관에서 먹고 자면서 그 옆의 마을 창고를 빌려 작업실로 삼았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 지원을 받아 창고 한쪽을 자그마한 미술관으로 꾸미고, 전시와 교육을 겸할 수 있는 2층도 만들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미술관이 생긴 것이다. 자재비는 펀딩으로 지원받았지만, 목공작업은 작가들이 직접 해냈다고 한다. 창고 미술관에 들어서면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긴 패가 벽에 붙어 있다.


밭을 매다 극장을 찾는 시골 농부들

극단 노뜰은 폐교가 된 후용초등학교를 극장으로 꾸며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윤기원 작가는 “후용리에 ‘극단 노뜰’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곳으로 오면서 마음이 든든했습니다”라고 말한다. 1993년 창단한 극단 노뜰은 폐교된 후용초등학교에 2001년 새로 둥지를 틀면서 후용공연예술센터를 열었다. 학교 교실을 100석 규모의 대극장과 소극장, 식당, 사무실, 게스트하우스로, 교실 앞의 뜰을 야외극장으로 활용한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음식을 먹으며 뒤풀이를 하고, 자고 갈 관객을 위해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했다. 또 연극뿐 아니라 시각예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찾아와 머물면서 창작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할머니 합창단, 할아버지 풍물패 등을 조직해 마을 주민들과 신명나게 놀았다. 주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경청한 후 마을의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새롭고 실험적인 공연으로 유명한 노뜰은 프랑스 연극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이다. 이 때문에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극장인데도 공연 때마다 좌석을 꽉 메울 정도로 호응을 얻는다고 한다. 후용리 마을 주민은 이 공연을 언제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농부들이 밭을 매다 극장을 찾는 게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윤기원씨는 “제 그림을 처음 본 주민들이 ‘무슨 물감으로 그렸어?’라면서 재료와 기법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셔서 놀랐습니다”라고 말한다. 다양한 예술 분야, 외국 예술가들과 자주 접해온 이곳 주민들은 외부 사람이나 다른 문화를 스스럼없이 열린 태도로 대한다고 한다. 작가들은 “처음 노뜰 공연을 봤을 때 우리는 낯설어하는데, 이곳 주민들은 너무나 태연하게 즐기면서 관람하고 계시더라”고 말한다. 윤기원 작가는 이곳 주민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극단 노뜰은 2014년부터 이 마을에서 ‘후용페스티벌’을 열어왔는데, 오는 8월 4~6일 열리는 제 3회 ‘후용페스티벌’은 극단 노뜰과 아트팩토리 후가 함께 준비한다. 아트팩토리 후는 ‘폐허’라는 이름으로 아트페어를 열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트팩토리 후 작가들의 작업실.
“마을에 있는 빈집과 창고를 빌려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가격이 크게 높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을 풍경과 전시를 함께 즐기고 작품을 구입할 수도 있지요.”

여름휴가 성수기라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오는 길에 찾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이들은 기대한다. 문막 IC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여서 막힌 도로에서 잠시 벗어나 쉬었다 가기에도 좋은 위치다. 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전시와 공연, 시골밥상을 즐기고, 빌린 자전거로 마을 곳곳과 마을 앞에 흐르는 섬강을 둘러볼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윤기원씨는 “연극과 미술뿐 아니라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들과 예술인협동조합을 결성해 자연과 예술, 농부와 아티스트가 공존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자연문화 타운이 그가 꿈꾸는 이곳의 미래다.
  • 201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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