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진짜 삶’을 배우는 마을교육공동체

글 : 김미량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모두가 대학입시만 좇는 교육 안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루저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은 이유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일하는 서용선 장학사는 학교와 마을이 협력해 다양한 배움의 경험을 제공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좋은 대안일 수 있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삶의 일상을 만나고, 아이들이 원하는 교과서 밖 배움을 마을(지역사회)에서 체험하는 교육 공동체의 목표는 ‘기회의 확대’다.

사진제공 : 서용선
“교육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 아이들은 더 많은 경험과 선택을 할 수 있죠. 스스로 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도와주고, 기다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일

그는 아이들이 좋아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일이라고 믿었고, 교사가 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자부심을 품었다. 1999년 고등학교 사회 교사가 되었고, 학교는 갓 부임한 젊은 교사에게 담임을 맡겼다. 그렇게 현실과 만났다.

“저희 반 출석부의 70% 정도는 까만색이었어요. 결석을 하고, 수업을 들락날락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지 않은 비인문계 학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예 학교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품어야 할지 20대 청년 교사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꿈이름학교’ 학생들의 마을선언.
“좋지 않은 일로 자퇴를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사인을 해줘야 하는데 정말 두렵더군요. 훗날 이 아이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 주변에 그 아이의 마음을 읽고 길을 찾아주는 어른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나마저 숟가락을 얹었구나….”

부끄러웠다. 주위에서는 ‘3년만 지나면 덤덤해진다’ 는 말도 해줬지만 그는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아프다.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고민했고, 더 열심히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틀에 박힌 학급 운영이 싫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학급 리더로 선출된 아이들이 직접 계획한 연수 프로그램을 지지해주고 싶어서 학교의 허락도 없이 1박 2일 캠핑도 갔다. 방과 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사춘기 남학생들을 위해 프로그램도 짰다. 하지만 그의 튀는(?) 행동은 자주 학교와 부딪혔고, 많은 계획은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교장선생님이 밉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건 개인이 아닌 오랫동안 누적된 문화와 시스템의 문제였죠. 교사들은 긴 호흡을 가져야 해요. 새로운 시도는 당연히 벽에 부딪히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도 창의적으로 수업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단 한 시간의 수업에서도 아이들은 세계를 만나고 내면과 마주하거든요.”


아이들이 만드는 행복한 수업

비몽사몽토론회.
2009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의정부여중에 부임한 그에게 학교는 ‘혁신부장’ 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당시 전국적으로 수업과 생활지도를 학생 중심으로 바꾸는 ‘혁신교육’을 도입하는 학교가 조금씩 등장하고 있었는데, 의정부여중도 그중 하나였다.

학교의 상황은 무척 좋지 않았다. 재개발 등 영향으로 주변은 슬럼화되었고, 학부모의 관심은 무척 낮았다. 전교생 700명 중 100명은 수업 중 도망가기 바빴고, 교사들이 부임을 꺼리는 학교로 유명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살려보자’ 며 교장과 교사들은 의기투합했고, 교육청도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다. 등굣길 복장 단속 폐지 문제 하나를 두고도 교사들은 며칠 동안 ‘끝장 토론’을 벌일 정도였다. 그래도 혁신은 계속됐다. 교실의 자리 배치를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바꿨고, 판서와 설명 중심의 수업을 지양했다. 교사들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업 내용을 논의했다. 강의를 언제 하고, 수업 내용을 어떻게 체험할 것인지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결정했다.

‘교과 간 융합’도 시도됐다. 당시 의정부 역사에 백화점이 입점하는 문제로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주변의 재래시장과 큰 마찰을 빚고 있었다. 이때 사회를 담당했던 서 장학사는 아이들에게 상인들을 만나 찬성과 반대 의견을 조사해 발표하는 과제를 줬다. 그리고 동시에 도덕 교사는 시장의 할아버지 할머니 상인들을 만나 5분 동안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눈 후 느낌을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서로 다른 교과가 같은 주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경험하는 수업에서 아이들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수업활동이 아이들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백화점과 재래시장의 상권 분쟁은 살아 있는 경제의 현장이고, 아이들의 부모와 친척, 이웃의 일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죠. 교실에서도 진짜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꿈의 학교, 마을교육공동체의 실험

혁신학교 의정부여중의 학생들.
혁신의 결과는 놀라웠다. 결석률이 크게 줄었고, 아이들은 달라진 눈빛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기초학력이 증가했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달라진 학교 분위기에 새로 부임하는 교사들은 놀라워했고, 자녀의 입학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는 혁신의 성과들을 더 확장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긴 시간 연구해 온 ‘마을교육공동체’를 조직하고, 현장의 교사들을 지원하는 행정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는 지난해 학교를 떠나 경기도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기획단에 합류했다.

마을교육공동체란 마을이 학교가 되어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배움터가 되고, 또 주인이 되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한마디로 “의정부여중에서 했던 혁신활동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마을과 연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의 핵심이다. 학교는 삶의 일상과 맞닿은 교육과정을 만들고, 아이들은 스스로 기획한 프로젝트를 마을 안에서 경험하고, 마을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안착이 그의 목표다.

그가 마을교육공동체를 목표로 기획한 첫 프로젝트가 바로 ‘꿈의 학교’다. 꿈의 학교는 일종의 방과 후 학교다.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대신 아이들은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을 마을에서 배우고 운영한다. 꿈의 학교는 아이들이 학교를 세우고 ‘어른(멘토)’을 초빙하는 ‘만들어가는 꿈의 학교’와 마을의 어른들(개인 혹은 단체)이 기획하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찾아가는 꿈의 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배움을 청하는 교사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자전거를 잘 타는 옆집 아저씨가 될 수도 있고, 마을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공예가일 수도 있다. 부모도 교사가 될 수 있고, 마을에 없는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초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것은 안 된다. 수업 내용과 방식은 반드시 아이들이 참여해 결정해야 한다.

“뮤지컬, 음악극, 공예, 만화, 사진, 영화, 인문학, 여행, 발명, 생태환경, 의회, 법, 경제 등 아이들의 관심은 정말 다양해요. 올해 창업학교의 경우 100명 모집에 1400명이 지원할 정도로 열기가 엄청났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열정을 경험하고, 진지하게 미래를 그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그는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면의 역동성이 발휘되어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성적에 도움이 안 된다며 프로젝트 중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포기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대학 입시도 이미 수행평가 중심으로 변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가진 아이와 교재만 공부한 아이의 경쟁력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감의 폭이 더 넓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죠.”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부러워하는 핀란드 교육이 혁신의 목표를 이루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때문에 그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10년 후, 지금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당당히 땅에 뿌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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