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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풍, 여유를 선사하는 티소믈리에

직업의 세계 / 티소믈리에

사진 : 셔터스톡
사진제공 : 티매거진
캐나다의 티소믈리에 린다 게일러드는 자신의 책 《TEA book》에서 “차소믈리에는 티백을 머그에 담가 우려 마시는 게 차의 전부라고 여기는 고집스런 이들에게 저 너머에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티백을 버리면, 그 너머에는 차의 마법과 역사, 여행기, 차 산업, 차 문화 그리고 다도(茶道)가 있다고 했다. 단언컨대 모두 기꺼이 뛰어들어 탐험할 가치가 충분한 신세계라고.

이 신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커피와 와인이 우리 삶에 벼락처럼 찾아와 자리를 잡은 것처럼, 차도 우리 삶에 그렇게 뿌리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은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극복할 ‘좋은 일자리 20선’에 티소믈리에를 꼽았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정승호 대표는 “현재 티소믈리에 전문 자격증을 갖춘 인력은 500명 정도”라고 했다. 한국티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내의 차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차 소비 규모는 20.8% 성장했다. 여기에는 웰빙과 힐링에 대한 수요가 한몫했다. 〈Acute Market Reports〉의 보고에 따르면 2012년부터 성장 중인 차 폴리페놀 시장이 2022년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폴리페놀은 녹차, 홍차, 우롱차 등에 다량 함유돼 있는데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 등 신경퇴행성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폴리페놀의 효능에 힘입어 차를 소비한 이들의 규모는 2012년 2540억 정도인데, 2020년까지 평균 7~8% 정도 성장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13년 스타벅스가 유명 차 브랜드인 티바나를 6억2000만 달러(6543억 원)에 인수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티소믈리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를 시음하고, 그 특징과 배경을 공부한 뒤 차를 찾는 이들에게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차를 소개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와인소믈리에처럼 전문 시음 테이스팅 훈련을 거친 뒤 전문가의 자격을 얻게 된다. 이 과정을 ‘관능검사’라고 한다. 관능검사는 사람의 오감을 이용해 차의 품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차의 종류와 원산지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단계가 심화되면 같은 농장의 첫째, 둘째 수확 시기를 구분하고 어떤 방식으로 가공했는지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이런 정식 과정이 생긴 것은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이 생기면서다. 차와 관련된 전문가를 양성해 차 산업 전체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게 연구원의 목표다. 연구원에서는 홍차, 녹차, 우롱차, 보이차, 백차, 허브차, 과일차 등 넓은 범주의 차를 준비해 향미를 감별하는 훈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지나면 강사양성 과정, 강사양성 심화과정 등을 들을 수 있다. 이뿐 아니다. 티소믈리에는 전 세계의 테루아(산지)를 여행하면서 현지의 전문가를 만나 차에 얽힌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배운다. 다원에서 차를 직접 재배하는 과정을 견학하면서 차의 품질과 특징을 감별해볼 수 있다.

차 관련 업종은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교육기관에서도 티소믈리에뿐 아니라 티블렌더, 티코디네이터 등도 양성한다.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전문가라면, 블렌더는 직접 서로 다른 찻잎을 섞어 새로운 향의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다. 티코디네이터는 다른 디저트류와 티의 마리야주(mariage, 궁합)를 맞춰주는 전문가다.

티소믈리에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대학에서 관련된 전공을 이수할 수도 있고, 문화센터나 사설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수강할 수도 있다. 현재 사단법인 티협회와 티소믈리에연구원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정식 등록된 민간자격증 보유자가 된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 등 네 과목으로 이뤄진다. 실기시험은 차의 5대 다류를 감별하는 과목과, 두 개의 차 사이에 차이를 가려내는 삼점 검사, 후각 능력을 시험하는 올 팩토리 시험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나라별, 산지별, 다원별 차를 감별하고 분석, 평가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격증 취득 후에는 개인 카페를 창업하거나 문화센터 강의, 외부 강사 활동 등을 병행할 수 있다.



정승호 티소믈리에연구원 대표

‘차 마시는 삶’으로의 초대

차 애호가들에게 차(茶)는 일상에서 즐기는 소풍이자 마음속 시계를 끄고 근심과 일을 잠시 잊는 시간이다.
일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각성제로 마시는 커피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커피의 삶에서 차의 삶으로 넘어온 정승호 대표는, 차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대한민국 1호 티소믈리에

“저는 경영학을 공부했고 회계법인 일을 했어요. 미국과 캐나다에서 금융과 IT 쪽 회사에도 몸담았었습니다. 커피가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걸 보면서 이 급성장기 이후에는 전환기가 올 텐데 그때는 어떻게 되려나 관심이 많았어요. 커피 바리스타 1호 분들과 교류도 계속 있어 왔고요. 커피가 걸어온 단계를 지금 차도 걷고 있어요.”

바리스타들과의 교류는 자연스레 소믈리에의 길로 이어졌다. 한국은 글로벌 체인 커피 전문점의 강세만큼이나, 토종 커피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는 나라다. 그는 그 비결을 ‘바리스타의 육성’으로 보았다. 커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커피의 문화를 이끌었다면, 차를 감별할 줄 아는 사람이 차의 시대를 이끌 것이었다. 2003년 30대 중반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촌각을 다투는 삶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의 차 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그러나 식후에 마시는 믹스 커피가 테이크 아웃 커피가 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처럼, 한국에도 곧 차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었다. 아직 한국에는 티소믈리에의 개념이 없었다. 먼저 일본 요코하마에서 티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세계적인 호텔리어들과 함께 유럽의 티테이스터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미국 STI 티 스페셜리스트 프로그램도 이수했다. 이후 인도 다즐링 티 산지 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왔고, 스리랑카 티마스터 골드과정도 밟았다. 무엇보다 뜻깊었던 건 세계적인 차의 산지를 직접 방문해 각 차의 기원과 역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티소믈리에연구원을 만들고 강좌를 개설했다.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티소믈리에 정식 등록을 요청했다. 2011년 노동부에서 정식으로 티소믈리에를 직업으로 인정했다. 그렇게 티소믈리에 1호가 탄생했다.


‘커피’ 저물고 ‘차(茶) 문화’ 뜬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회사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 발 앞서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으면 커피의 문화가 차의 문화로 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잠이 덜 깬 출근길, 직장으로 향하는 캐나다인의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아닌 테이크아웃 차(tea)가 들려 있었다. 2011년 캐나다 농업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커피 판매량은 감소해 21%를, 차 판매량은 증가해 16.4%를 기록했다. 트렌드를 읽고 한 발 앞서 대응한다는 점에서, 티소믈리에는 그가 해온 일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가 티 회사 대신 교육원을 연 이유다.

“트렌드의 흐름은 사실 몇 명의 움직임이 만들어요.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죠. 티소믈리에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여든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예요. 앞으로는 건강과 웰빙의 아이콘으로 티가 클릭(click)되리라 생각해요. 이 부분이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전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삶에 여유가 생겼다.


차(茶)로 떠나는 세계 여행

차 산지로 유명한 스리랑카의 차밭.
“얼마 전에도 스리랑카에 유명한 산지가 있어서 여섯 군데를 다녀왔습니다. 테루아(산지)를 방문하는 건 무척 의미가 있어요. 지역의 특징이 와인이나 차의 맛과 향에 반영이 되니까요.”

찻잎이 나는 나무는 한 가지인데, 여기에서 다양한 차가 생산된다. 가공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찻잎을 바로 딴 상태에서 산화를 억제해 최대한 처음 상태에 가깝게 보존하는 게 녹차, 솜털이 많은 어린싹을 건조해서 만드는 게 백차, 차나무의 어린잎을 발효해 만드는 게 홍차다. 마시는 방법도 다르다. 백차는 뜨거운 물에서 장시간 우려야 향긋하지만 홍차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마셔야 항산화성분이 손실되지 않는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다즐링도 지역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수확 시기예요. 3, 4월에 수확하는 첫물차와 초여름에 수확하는 두물차, 우기가 끝나는 10월 이후에 수확하는 세물차는 모두다 맛과 향에 차이가 있습니다.”


차(茶)로 읽는 세계사

현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도 테루아의 장점이다.
다즐링도 다 같은 다즐링이 아니다. 어느 지역의 잎을 쓰느냐, 어느 정도의 온도의 물에 끓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현지에 가면 더 깊은 맛을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다. 산지의 물과 산지의 차는 가장 최선의 궁합을 이뤄낸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차문화가 크게 유행하면서 중국에서 수입되는 차의 수입량이 급증했다. 영국은 중국과 국경이 접해 있는 식민지 인도에 몰래 중국의 차나무를 가져와 재배했는데, 그곳이 다즐링이었다.

“차 한 잔에 문화사가 있어요. 인류가 차를 마신 역사가 5000년입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지 몰라요. 개인적으로도 역사를 바꾸는 차가 있어요. 차를 한 잔 마셨는데, 인생이 바뀌었다는 분들이 많아요. 내 입에 딱 맞는 차를 만났는데, 평생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맛이라면 거기에 매료되어서 이 세계에 빠져들게 되죠.”


티소믈리에 · 티블렌더 · 티코디네이터

차를 시음해보면서 티소믈리에의 소양을 기른다.
티소믈리에는 입문부터 심화까지 총 4개의 교육과정이 있다. 주 1회 수업을 듣는다면 20회에 마칠 수 있다. 소믈리에가 되는 길에는 왕도가 없다. 차의 역사와 문화, 산지에 대해 공부하고 되도록 많은 차를 마셔보는 것. 그렇게 차에 대한 소양을 넓혀가는 것이다. 티소믈리에 과정을 마치면 심화과정이 있다. 대표적인 녹차 생산지인 한·중·일의 녹차와 우롱차, 백차, 황차 등에 대한 수업이 진행된다. 이렇게 다양한 차를 감별할 수 있게 되면 티블렌더 과정으로 들어간다. 다국적 블렌딩 홍차와 가향 홍차, 백차, 청차, 흑차 등을 이해한 뒤 직접 티를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이 통합되면 티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할 수 있다. 차를 넘어 차와 어울리는 음식을 조합해내는 과정이다.

“많은 디저트가 차와 함께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코디네이터는 음식과 차의 마리야주(궁합)를 보는 거예요. 영국에서 ‘일상의 소풍’이라고 불리는 애프터눈티 문화는 그걸 잘 보여주죠.”

심지어 영국에서는 ‘티파티’를 영혼의 온천이라고 부른다. 티에 젖어 일상의 시름을 잊는 시간이다. 각 나라의 차 문화에 대해 깊이 알면, 그 나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캐나다에는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어요. 그걸로 모자이크를 만들어요. 살리면서 융화시키는 거죠. 사실 차를 통해 하고 싶은 게 문화의 통합입니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죠. 한국에서는 아직 차에 대한 인식의 벽이 높습니다. 지금 연구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그걸 깨기 위한 과정이죠.”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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