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허그로 일본 전국 일주, 대학생 이재훈 씨

“우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시향과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이 열린 지난해 성탄절 날, 교토역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가고시마행 신칸센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일본의 땅끝 마을 사타미사키(佐多岬). 일본에서 유학 중인 이재훈(24, 연세대) 씨의 손에는 한・일 양국의 국기 그림과 ‘Free Hug, I Love You’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사진제공 : 이재훈
쉰한 번의 히치하이킹과 200명의 일본인

재훈 씨에게 여행이란 길 위에서 만나고, 길 위에서 배우는 ‘인생학교’였다.

친구들이 학점 관리,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재훈 씨는 군 제대 후 좋아하는 도시인 일본의 고도(古都) 교토에서 살아볼 계획을 짰다.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았고 이듬해 도시샤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자 여느 방학과 다름없이 여행을 떠났다. 일본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가는 일본 일주. 교통은 히치하이킹으로 해결하고, 숙소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본의 최남단 사타미사키(佐多岬)로 가기 위해 가고시마 공항에 내렸을 때는 설렘보다 떨림이 앞섰다. 일본어도 자신 없었다. ‘태워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재훈 씨의 눈에 한 가족이 들어왔다. 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은 손자를 데리러 나온 할머니와 엄마였다.

“할머니에게 히치하이킹으로 일본 일주를 시작했는데 태워줄 수 있냐고 용기를 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흔쾌히 태워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야 비로소 히치하이킹만으로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최남단인 사타미사키(佐多岬)부터 최북단 왓카나이(稚内)까지 가는 데 쉰한 번의 히치하이킹을 했고 200여 명의 일본인을 만났다.

“쉰한 번의 히치하이킹 중 마흔 번 이상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었어요. 조심스럽게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왜 모든 사람이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할까? 생각해 보니까 기본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군마 현에 위치한 ‘시부카와’라는 마을에서는 50대 부부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카우치서핑을 시작한 이래 재훈 씨가 첫 번째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이해줬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김없이 껄끄러운 이야기가 나왔다.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해 아저씨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들뻘인 자신에게 사과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한국과 일본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지금, 안으러 갑니다!”

히치하이킹으로 일본 일주를 무사히 마친 재훈 씨는 친구와 함께 교토대 교정에 한・일 우호를 바라는 메시지가 적힌 프리허그 손팻말을 들고 섰다. 뜻밖에 교토대 학생들은 재훈 씨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우리가 서로를 싫어한다는 건 오해였을지도 몰라.”

재훈 씨는 바로 다음 여행 계획을 세웠다.

“겨울방학 때는 프리허그로 일본 일주를 해보는 거야!”

히치하이킹 여행 기간 내내 들었던 “한국인은 일본 사람 싫어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반대로 “일본인은 한국 사람 싫어하지 않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여행 경비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아보기로 했다. 프로젝트 제목은 〈지금, 안으러 갑니다!-프리허그 일본 일주〉. 펀딩을 시작했을 때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직접 번 돈으로 하는 게 맞지 않니?”

친구 말이 맞지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크라우드 펀딩의 장점이 ‘돈’은 아닌 것 같아요. 펀딩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프로젝트를 홍보할 수 있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15일 동안 일본의 23개 도시를 일주하는 프리허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이 아니었다면 재훈 씨 혼자만의 이벤트가 됐을지 모른다. 펀딩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동참했고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혐한파 넷우익이 보낸 메일

일본 최북단 비 앞에서 프리허그 손팻말을 들고 선 이재훈 씨. 현지에 사는 일본인이 촬영을 도왔다.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두 차례, 한 번에 1시간 30분씩, 23개 도시에서 촬영한 프리허그 영상은 1TB(테라바이트)의 외장하드를 꽉 채웠다. 재훈 씨를 따뜻하게 안아준 일본인은 대략 1000명. 일본에선 크라우드 펀딩 결제가 안 됐다며 프리허그 현장으로 찾아와 돈을 주고 간 사람들도 있었다.

“펀딩 당시에 목표 금액인 200만 원을 채우지 못하고 140만 원 정도를 모았는데 프리허그 현장에서 받은 돈이 7만~8만 엔 정도 돼요. 결국 200만 원을 모은 거죠. 진심으로 손을 내밀면 사람들이 손을 잡아준다는 걸 깨달았어요.”

프리허그 일본 일주의 일정이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 현장 촬영을 도와주던 친구가 감기가 심해져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완전 비상사태였죠. 다음 날부터 촬영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SNS에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고 글을 올렸어요.”

아오모리라는 도시였다. 날씨가 매우 추웠고 열차는 예정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썰렁한 역 앞에서 프리허그 손팻말을 꺼내 들자 교복을 입은 여고생 셋이 다가왔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고 도와주러 나왔대요. 자기들이 사는 동네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이후 하코다테, 삿포로, 최종 목적지인 왓카나이까지 현지에 사는 일본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도왔다.

“프리허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후에 자신을 넷우익이라고 소개하는 사람한테 메일을 받았어요. 제 영상을 보고 자기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내용이었죠.”


세상에서 가장 긴 졸업여행

“우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재훈 씨가 진심으로 손을 내밀자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예전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 돈 많이 버는 게 잘 사는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번의 여행이 저를 바꿔 놓았어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예를 들면 저처럼 힘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거나 관련된 책을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겠죠.”

재훈 씨의 프리허그 영상을 본 한 일본 여성이 자신도 한국에 가서 기모노를 입고 프리허그 이벤트를 하겠다며 메일을 보냈다.

“제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고 영향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게 뿌듯해요.”

지난 2월 말, 재훈 씨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4학년으로 복학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있지만 취업 준비는 안 할 생각이다. 대신 자신만의 졸업여행을 준비할 예정이다.

“내년 3월에 세계 일주를 떠날 거예요.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게 여행 콘셉트인데요, 상모돌리기를 하며 여행할 거예요. 올 한 해 동안 상모돌리기를 배워보려고요.”

세계 일주에 필요한 경비는 펀딩으로 모을 생각이다.

“후원자를 찾아 떠나는 전국 일주를 해보려고요. 천만 원 정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지금 통장에 9만 원 있어요(웃음). 여러분! 저 이재훈은 2017년 3월 2일에 세계 일주를 떠납니다!”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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