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업 사회》 저자 구도 게이 소다테아게넷 이사장

‘일할 수 없는 청년’의 현재를 말하다

글 : 임현선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것이 우리 문화에서 바람직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는 점이다.”
(조안 B. 시울라, 《일의 발견》 저자)

사진제공 : 함께 일하는 재단
일본 잠재적 청년 무업자 480만 명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갖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일본의 학계와 언론은 요즘 ‘실업(失業)’보다 ‘무업(無業)’이란 용어에 주목하고 있다. 실업이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면, 무업은 실업뿐 아니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니트* 처럼 취업에 대한 희망조차 없는 상황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본은 2010년부터 무업 사회”라고 정의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에 따르면 “무업 사회는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이다.

2014년 6월 일본에서 ‘청년 무업자’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무업 사회》의 공동 저자 구도 게이(39) 소다테아게넷 이사장이 2월 19일 서울에 왔다. 그는 ‘함께 일하는 재단’이 《무업 사회》(펜타그램) 한국어판 발간을 기념해 주최한 한일청년비교포럼에 책을 공동 집필한 니시다 료스케(33) 박사와 토론자로 참석해 한국 청년들과 대화했다.

“무업 사회란 일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무업이 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직업을 잃으면 다시 직업을 얻기가 어렵죠.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더불어 1993년 버블 경제 붕괴, 90년대 후반 대졸자도 취업하기 힘든 취업 빙하기 시대를 맞으면서 청년 무업자들이 급증했습니다. 최근 청년 세대 비정규 고용률은 30%가 넘었고 청년 실업률은 9~10%에 이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일본인이 청년 무업자를 게으르고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이런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청년 무업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고 있죠.”


‘길러내는 네트워크’란 뜻의 소다테아게넷은 은둔형 외톨이, 니트, 프리터*와 같은 청년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도 게이 이사장이 2001년 설립했다. 비영리 사회단체(NPO, Non Profit Organization)로 모든 청년이 사회적 소득을 얻으며 일하는 것, 지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한다. 학교 및 입시학원・직업전문학교 등에 다니지 않거나 배우자가 없는 미혼자, 평소에 수입이 발생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15~35세 청년이 주요 사업 대상이다. 《무업 사회》에는 구도 이사장과 직원들이 10여 년 동안 현장에서 활동하며 만난 수많은 청년 무업자들의 생생한 사례가 담겨 있다. 도쿄의 유명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무업자가 되어 현재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 대학 졸업 후 입사 불합격 메일 100통에 좌절하고 현재 구직 활동 중인 청년, 어려운 세무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면접에 서툴러 7년 넘게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는 청년, 일할 의욕은 있으나 회사의 도산으로 연속 해고를 당하고 현재 구직 중인 청년, 창업에 실패한 후 재취업에도 거듭 실패해 장기간 실직 상태에 있는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OECD 추계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잠재적 청년 무업자가 480만 명에 달한다. 《무업 사회》에 담긴 일본 ‘청년 무업자’ 실태는 현재 한국 청년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무업자가 사실은 우리의 가족, 친구이자 평범한 이웃임을 깨닫게 한다.

“청년 무업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어요. 무업자들이 서 있는 사회 경제적인 여건과 구조에 대한 무지가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있는 진짜 원인입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청년 무업자의 75.5%가 취업 경험이 있었고, 한 번도 일한 적이 없는 사람은 24.5%에 불과했어요. 마지막 직장에서 3년 이상 일한 사람도 40.5%나 됩니다.”

구도 이사장은 “청년 무업자가 된 사람이 빨리 취직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하며, 무업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기회와 시스템을 사회 안에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성별, 수입, 가정 환경, 학력과 같은 여러 조건을 넘어서 청년 무업자들을 지원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다각화・다양화해야 하며 자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재도전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에서 《무업 사회》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회 활동가와 이론가가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구도 이사장은 수많은 현장 사례와 상담 및 설문 자료를 제공했고 사회학자인 니시다 박사는 사회 경제 구조적인 측면에서 청년 무업자 문제에 접근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다. 책 발간 후 40~50대 이상 부모 세대를 중심으로 청년 무업자들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히키코모리 형, 누나들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도쿄에서 태어난 구도 이사장은 학교 부적응 청소년을 교육하는 사회단체를 운영한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형, 누나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좀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자퇴하거나 비행으로 퇴학당한 청소년들과 늘 함께 있었어요. 왕따 문제 등으로 학교에 못 가는 청소년 수백 명과 공동생활을 했어요. 저는 장남이었지만 부모님은 저와 그들을 차별하지 않았어요. 저도 형, 누나들과 잘 어울렸기에 사회가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전혀 몰랐죠. 가끔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이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한 번 기사가 나가면 3일 정도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였어요(웃음).”

그는 신문기자를 꿈꾸며 세이조 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 학과에 입학했으나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는 열망이 일본을 떠나게 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개인적인 분위기에 놀랐어요. 그동안 공동생활에 익숙했으니까. 영어를 못해서 매일 자습하는 분위기로 강의실 맨 뒷줄에 앉아 있었어요.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도 못 했고, 숙제가 뭔지도 못 알아들었죠. 어느 날 수학 시간에 교수가 낸 문제를 제가 유일하게 맞힌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모두 일어나 저에게 박수를 보냈죠. 이때 어떤 하나의 가치를 갖고 있으면 존중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구도 이사장은 계속 해외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제가 미국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모두 취업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뭔가 훌륭한 사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그들에게 저도 자극을 받았죠.”

2001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창업을 준비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경기 침체로 인한 대량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학교 부적응 형과 누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해야 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구도 이사장은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형, 누나들이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그는 2001년 소다테아게넷을 설립하고 2004년 법인으로 등록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소다테아게넷의 직원은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해 모두 190명이다. 연간 매출은 4억 3000만 엔(약 45억 원)에 이른다.

“매출과 직원은 해마다 늘고 있어요.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300만 엔(약 3100만 원) 정도인데, 대졸 신입 사원 연봉 250만 엔(약 2600만 원)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편이죠. 직원의 연령대는 16세부터 70대까지 다양합니다. 상담, 교육 지원 프로그램 운영, 취업 매칭 등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다

사진 왼쪽은 《무업 사회》의 공동 저자 니시다 료스케 박사. 일본에서 《무업 사회》는 최초의 청년 무업자 실태 보고서란 점 외에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회 활동가와 이론가가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소다테아게넷은 최근 고등학교와 연계해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청년 3000여 명이 취업 상담을 받으러 단체를 방문한다. 교육 기간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까지 이어진다. 사무직에 필요한 IT 교육을 비롯해 자원봉사, 농가 지원, 지역 축제 기획과 지원 업무 등에 청년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월마트 같은 기업과는 협약을 맺어 취업 훈련 수료생을 인턴으로 보내기도 한다. 많은 사업이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소다테아게넷은 취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들로부터 매달 교육비를 받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소셜 비즈니스도 성공하려면 재정 면에서 손익을 맞춰야 합니다. 돈을 벌면서 일을 해야 사업도 성공하고 지속성도 보장되니까요. 단체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직원들도 최선을 다해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고요. 지자체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취지와 다른 것을 요구하면 포기합니다. 타격이 있지만 소신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겨야죠. 그런 점에서 시장에서 치열하게 비즈니스를 경험한 이들이 소셜 비즈니스 영역에 들어오길 바랍니다.”

구도 이사장이 청년 무업자 문제를 일자리로 풀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회투자 효과가 큽니다. 둘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일하지 않고 잘 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사회를 잘 짊어질 수 있는 인재 육성 차원입니다. 일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진 이들이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납세자로서 사회를 지탱하고, 소비자로서 경제를 움직이고, 지역 사회를 짊어진 자립한 청년이 우리 사회에 한 사람 더 늘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원 활동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입니다.”

‘함께 일하는 재단’ 초청으로 2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니시다 료스케(왼쪽에서 둘째) 박사와 구도 게이(셋째) 소다테아게넷 이사장이 한일청년비교포럼에 참석해 한국 청년들과 대화하고 있다.
구도 이사장은 《무업 사회》에서 자신에게 일이란 ‘벌이’와 ‘책무’가 섞여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옛날 일본에는 ‘벌이’와 ‘책무’라는 두 가지 노동 개념이 있었어요. 벌이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일이에요. 책무는 지금은 자원봉사 소방단이나 자치회에 참가하는 것 같이 지역이나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고요. 벌이만을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무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요. 이 두 가지가 잘 합쳐진 상태가 제게는 ‘일한다는 것’입니다.”

네 살, 두 살, 돌이 안 된 쌍둥이 모두 네 자녀를 둔 구도 이사장은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이사장이 육아휴직을 써야 다른 직원들도 눈치 보지 않고 제도를 이용할 거라는 배려도 있었다. 평일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토요일은 오전 근무만 한다. 그 외 시간은 가족과 함께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젊은 시절, 사회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고, 추상적 이론에 취했던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지구의 쓰레기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보자고 말하면서, 정작 제가 걷고 있는 길에서 보이는 쓰레기를 줍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많이 반성했어요. 청년 무업자 한 명을 취업시키기 위해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직원 100명이 한 명의 취업 성공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하나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거예요. 제 대답은 늘 ‘그렇다’입니다.

긴 시간의 어려움을 딛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청년의 표정은 우리의 수고로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게 하거든요.”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말로 교육기관에 재적해 있지 않고, 고용되어 있지도 않으며, 아무런 취업 훈련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

*프리터 :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사회인.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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