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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 삼대째 책방 가업 잇는 동아서점 김영건 씨

책 밭에 뿌리는 희망의 씨앗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강원도 속초에 있는 동아서점 60년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아서점의 막내아들 김영건(30) 씨다.
그의 할아버지는 동아서점을 열고 20여 년 동안 책방을 운영했다. 현재 동아서점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아버지 김일수(65) 씨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아버지는 40년 동안 책방을 지켜왔다. 그런데 이제 겨우 책방 운영 경력 2년 차인 영건 씨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니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다. 그의 아버지는 동아서점이 100년 가는 책방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책방의 과거가 아닌 미래의 주인에 대한 것이다. 남은 40년의 세월을 쌓아나갈 동아서점의 삼대, 김영건 씨의 이야기다.
집으로…

김영건 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 속초를 떠났다. 신촌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낯설었다. 난생처음으로 돈을 내고 교재며 책을 샀다.

영건 씨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국문학과에 가려 했지만 1학년 성적이 말이 아니었다. 차선으로 선택한 불문학도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불어라는 언어가 좋았다.

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편집자가 되는 길도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LIG문화재단에 들어가 공연 기획을 했다.

“재미있었어요. 문화・예술이라는 측면에서는 문학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하지만 제가 공연 기획을 공부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속초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60년 가까이 운영해온 서점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삼형제 중 유독 책을 좋아했던 막내아들의 의중을 물었다.

“막내 네가 맡아서 해보겠다면 다시 생각해보마.”

영건 씨는 회사와의 재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미련 없이 짐을 싸고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서울에서 지낸 20대의 나날을 뒤돌아보면 마음 둘 곳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 없었다는 게 정말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계속 정처 없이 떠돌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건 씨가 고향으로 돌아와 책방 운영을 맡으면서 동아서점은 매장 규모를 넓혀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오래된 젊은 책방


동아서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에게 들은 이야기.

“속초 사람 중에 동아서점에서 책 안 사본 사람 없을 거예요.”

동아서점의 나이는 올해로 딱 육십. 속초시청 인근에서 58년간 한자리를 지켰고, 작년 초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아버지 김일수 씨는 책 좋아하는 막내아들이 책방 운영을 맡겠다고 하자 믿고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동아서점의 매장 규모는 120여 평. 장서 수는 5만 권 정도이다. 동아서점 옆에는 두 배 규모의 책방이 또 있다.

“지방 소도시의 서점은 참고서 영업으로 먹고살아요. 하지만 우리 책방은 참고서 코너의 규모가 작은 편이에요. 옆집은 참고서 매장만 100평 정도 됩니다.”

지금의 자리로 매장을 이전하고 대도시의 대형 서점 못지않게 서가를 꾸몄다. 지하가 아닌 지상 1층, 햇빛이 쏟아지는 매장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를 알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서점을 하게 됐다고 하니까 이 친구가 인테리어를 해주겠다면서 프랑스에서 날아왔어요.”

김영건 씨의 취향대로 꾸며진 서가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의 대형 서점보다 넓고 쾌적한 서가, 북 카페로 오해받을 정도의 독서 공간, 영건 씨가 바라던 모습으로 책방은 재탄생했다.

책 진열에도 신경을 썼다. 어느 서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베스트셀러 중심의 구성 대신 동아서점의 취향이 드러나게 했다. 손글씨로 책 홍보 문구도 써서 붙였다. 여기에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홍보 팝업을 동네 서점에는 보내주지 않는다는 슬픈 뒷이야기가 있다.

“몇 군데의 출판사에 요청해봤는데 안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내가 쓰지 뭐’라는 생각으로 쓰게 됐어요. 직접 쓴 손글씨 홍보 문구가 효과가 있을 때 뿌듯한 마음도 들어요.”

영건 씨는 매달 판매량을 집계해 동아서점만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든다. 대형 서점과는 다르게 《지적 자본론》 《반농반X의 삶》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등의 책이 많이 팔렸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 책도 있거든요. 우리 서점만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들어보면 어떻게 다를까 싶고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시작했어요.”

영건 씨의 새로운 시도는 동아서점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고, 이를 알아본 젊은 손님이 많다. 요즘엔 특히 관광객 손님이 늘었다. 책방이 속초의 관광 명소가 됐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 손님은 구분이 돼요. 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멀리까지 와서 사는 책이니까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한 번에 20만 원어치나 책을 사 간 분도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서가

동아서점의 2대 대표이자 현재 대표인 아버지 김일수 씨(왼쪽)와 김영건 씨.
문 닫을지도 몰랐던 책방을 이어받아 운영한 지 딱 1년. 매일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쉬는 날도 없다. 버스로 5분 거리의 집과 서점만을 오가는 나날의 연속이다. 요즘 들어 외롭다는 느낌도 든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속초로 내려올 때는 진짜 망설이지 않았거든요. 막상 다시 살아보니까 할 수 있는 게 제한돼요. 단순하게는 공연이나 영화도 보고 싶은데 속초에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없어요.”

작년 한 해 동안 지방 소도시 동네 책방의 팀장으로 일한 소감을 물었다.

“절벽에 서 있는데 누가 계속 웃으라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책방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어요. 지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낙담할 수준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건 씨가 낙담하지 않는 이유, 희망적이라 보는 까닭은 이렇다.

“동아서점이 무언가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아주 작은 시작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문화・예술 인프라가 서울이나 대도시에 집중돼 있고 그 밖의 지방 소도시들은 다 죽어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서점에서 문화가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어요. 제가 서울에 있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내려왔잖아요. 저처럼 젊은 사람이 또 내려올 수 있는 거죠.”

출판계에는 일주일에 수천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새로 나온 책을 주문하고 진열하느라 앉아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책방의 시계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매일 너무 바빠서 개점 60주년인데도 특별하게 기획한 게 없어요. 속초 해변에서 ‘치맥’ 하며 읽기 좋은 책으로 여행자를 위한 코너를 꾸며도 좋을 것 같은데….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건 있어요.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책이 있거든요. 60년 전에 동아서점을 열었을 때부터 팔던 오래된 책들이요. 언젠가는 그 책들로 할아버지의 서가를 만들 거예요. 수십 년 된 책들을 책방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어요.”
  •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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