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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직업의 세계 / 캐릭터 디자이너

사진제공 : 호조 작가
참고자료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커리어넷, 《캐릭터 디자인 수업》(재승출판)
★ 지난 2011년 11월 29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이모티콘 카카오프렌즈를 처음 선보였다. 무료 채팅 메신저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폭발성만큼이나 이모티콘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2015년 12월 기준 총 3000여 개의 이모티콘이 출시됐다. 지난 4년간 총 1000만 명가량이 이모티콘을 구매했고, 매달 발신되는 이모티콘 메시지의 수는 20억 건, 하루 1000만 명의 메신저 이용자가 문장 대신 이모티콘을 이용해 대화를 나눈다.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가 된 데는 8할이 카카오프렌즈 덕분이라는 말도 나왔다.


★ 캐릭터 이모티콘의 활성화는 캐릭터 디자인 전체의 파이를 키웠다. 게임, 애니메이션, 광고 등 각 분야 안에서만 머물던 캐릭터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어, 연령과 성별의 차이를 넘어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카카오프렌즈의 경우, 문구·완구류는 물론 제과 업계, 화장품 업계, 패스트푸드 업계, 의류 업계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의 활용 영역이 확장됐다. ‘프로도’ 방향제, ‘튜브’ 칫솔꽂이까지 나왔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사업의 특징을 대변해주는 아이콘 역할을 한다.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캐릭터 디자인은 팬시, 애니메이션, 게임, 드라마, 음반, 광고, 공익사업 등에 쓰인다. 식품업체나 공익광고에 쓰이는 캐릭터는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선호한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라면 과감하고 도전적인 캐릭터가 각광받는다. 동화의 경우에는 창의성이 좀 더 요구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캐릭터가 필요해서다. 〈뽀롱뽀롱 뽀로로〉와 〈방귀대장 뿡뿡이〉 〈꼬마버스 타요〉 등은 그 좋은 예다. 기업의 캐릭터는 기업 이미지, 역사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다. 롯데월드가 대표적인데, 1989년 개장 때부터 마스코트가 된 로티와 로리는 한국에서 만큼은 미키마우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 직업 분류에 따르면 캐릭터 디자이너는 예술 분야의 전문직에 속한다. 예술적인 일과 기술적인 일을 두루 진행해야 한다. 먼저 캐릭터화할 대상에 대해 스타일과 주제를 연구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여기까지는 예술의 영역이다. 이후 시장조사를 통해 영업 담당자, 상품 제작자와 상품화할 아이템의 구상회의를 진행한다. 세부적인 디자인에 대한 조율,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협의도 중요한 과정이다. 여기까지가 기술적인 영역이다. 현직 캐릭터 디자이너 이선미씨는 “실제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려면 적게는 수십 차례에서 많게는 수백 차례의 재수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시각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 등 디자인 관련학과를 전공하거나 관련 아카데미를 수료하는 길이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시각디자인기사, 시각디자인산업기사, 컴퓨터그래픽운용기능사 등의 자격증 보유자라면 더 유리하다. 현직 프로 디자이너들은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캐릭터 디자인은 사물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력과 데생 능력 등 기본적인 미적 감각과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 상상력, 창조력 등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기발함과 엔지니어로서의 치밀함이 두루 요구되는 직업이다.



카카오프렌즈의 아버지, 호조 작가 권순호 디자이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캐릭터를 만들어요”


《topclass》는 새해를 맞아 독자초청 인터뷰를 진행했다. 독자가 지면으로 ‘직업의 세계’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인터뷰이와 만나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다. 첫눈이 오던 날 진행된 호조 작가(권순호 디자이너) 인터뷰에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김수민씨, 이채희 인턴기자가 동행했다. 김수민씨는 ‘카카오프렌즈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소식에 김포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캐릭터계에도 톱스타가 있다면 현재 가장 핫한 스타는 ‘카카오프렌즈’다. 단무지이지만 정체를 숨기기 위해 토끼 옷을 입은 무지, 부잣집 도시 개이지만 잡종이라 태생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프로도, 단발머리 가발을 쓰면 자신감이 생기는 고양이 네오, 땅속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사는 외로운 너구리 제이지, 복숭아 나무에서 탈출한 복숭아 어피치와 작은 발을 숨기기 위해 오리발을 착용하는 오리 튜브…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대신해 내 감정과 상태를 표현해주던 이들은 호조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숨기고픈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결국은 그래서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콤플렉스가 캐릭터의 핵심

왼쪽부터 호조 작가, 이채희 인턴기자, 대학생 독자 김수민.
《topclass》_ 캐릭터들이 각자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남들은 모르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이걸 가리기 위한 나름의 장치가 있다는 것도 재밌었고요.

호조 작가_ 콤플렉스의 모양은 다르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획일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고요. 동화를 볼 때도 ‘인어공주는 수영을 매일 하는데 왜 어깨가 넓지 않나’, ‘유리구두가 신데렐라한테만 맞았다면 그녀의 발이 엄청 큰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캐릭터를 그릴 때 그런 성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topclass》_ 어릴 적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호조 작가_ 만화의 빈칸을 채워 넣는 아이였어요. 아이들이랑 돌려 보던 만화책이 보통 ‘본격 학원 폭력물’이었는데, 삭제되거나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이 있었어요. 딱 봐도 뻔한 장면인데 가려져 있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라 생각했어요. 수학이나 과학, 공부에는 뜻이 없어서 고등학교는 실업계로 진학했어요. 전공이 디자인이라 3년 동안 그림을 배웠어요. 기본적인 드로잉이나 데생 연습은 그때 했습니다. 대학에서 뭔가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 않아서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았어요.

김수민_ 캐릭터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호조 작가_ 처음부터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취업하려던 당시 디자인계에서는 웹디자인, 3D 그래픽 등이 각광받았죠. 하지만 제게는 맞지 않았어요. 아마 조금이라도 소질이 있었다면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거예요(일동 웃음). 그런데 저는 공간감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도 더뎠어요. 확실히 아니라는 걸 아니까 포기가 빨랐죠.


《topclass》_ 혹시 좌절이나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나요?

호조 작가_ 열등감은 없었어요. 젊었으니까요. ‘아직 젊은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때?’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라는 생각을 줄곧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중간에 사춘기가 한 번 왔죠. 그런데 지금도 사춘기는 계속 찾아와요. 시작할 때는 또 시작할 때의 고민이 있고, 중간엔 또 중간의 고민이 있죠.

이채희_ 저도 요즘 고민이 많은데 ‘아직 젊은데’라는 말이 엄청 힘이 됩니다(웃음).

호조 작가_ 이 일을 시작한 지 15년 정도 됐어요.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다가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시간도 있었어요.
‘내 스타일을 바꿔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혼란기도 있었고요. 그때 아는 선배가 “네 역사가 있어야 오래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뻔한 소리로 들리지 않고 설득이 됐어요.


《topclass》_ 카카오프렌즈가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거군요.

호조 작가_ 몇 년 전만 해도 제 디자인이 너무 선명하고 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무래도 원색을 많이 쓰니까요. 더구나 예전엔 캐릭터 시장이 좁을 수밖에 없었어요. 소비층이 저연령층이었고, 아이들이 보는 만화를 보지 않으면 공감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카카오톡 메신저는 전 연령대가 다 써요. 그런 플랫폼의 변화가 생기니 캐릭터의 파급력도 커지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김수민_ 각 캐릭터의 탄생 과정도 궁금합니다.

호조 작가_처음엔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대로 그렸어요. 제이지랑 네오가 제일 먼저 나왔죠. 이모티콘을 만들 때는 어피치랑 프로도까지 4개만 가려고 했어요. 조율 과정에서 회사에서 착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어요. 근데 제가 ‘착한’ 캐릭터를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일동 웃음). 마냥 착한 게 아니라 스토리를 얹었어요. 그렇게 튜브가 만들어졌고, 마지막에 무지까지 나왔어요. 깎이고 깎이고 깎이는 과정이 있었죠. 지금은 내가 만들었지만 쓰는 사람이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의미와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같은 그림이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요.

《topclass》_ 깎이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호조 작가_상대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면 캐릭터가 망가져요. 이 일이 어려운 점은 ‘정답이 없다’는 거예요. 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죠. 그런데 역으로 생략하는 데서 힘이 나와요. 의뢰한 회사에서는 불안하니까 계속 뭔가를 더 요구하기 마련이에요. 그러다 보면 처음 구상과 최종 결과물이 느낌이 달라져요. 구상할 때는 엄청나던 캐릭터가 나오고 나면 별로일 때가 있고, 처음엔 미미했는데 만들어보니 대박일 때도 있고요.


캐릭터 창조의 원동력은 자유로운 경험


이채희_ 어떤 캐릭터가 좋은 캐릭터일까요?

호조 작가_ 제 생각에 캐릭터는 퀄리티보다 느낌이 중요해요. 느낌이 좋고, 강렬하게 들어온다면 좋은 캐릭터예요. 라인이나 색감보다 중요한 게 힘입니다. 이 힘을 가지려면 많은 생각, 많은 경험, 많은 관찰이 필요해요.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많아야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죠. 책상에서는 안 나옵니다.

김수민_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말씀인가요?

호조 작가_ 자신을 세계에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자유로운 경험 안에서 자유로운 콘텐츠가 나오니까요. 예를 들면 술 먹다가 전혀 새로운 곳에서 일어나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일동 웃음). 제가 2008년에 친구와 《어찌 됐든 산티아고만 가자》라는 책을 냈어요. 책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걸었어요. 걷다가 맥주 한 캔 하고 약간 취한 상태에서 걷다가 밤에는 왕창 마시고 또 잤죠. 그런 단순한 하루가 계속됐어요. 매일 걷고, 그리고, 걷고, 그리고… 그러면서 ‘영감이 떠올랐다’기보다 그런 경험들이 제 안에 녹아 있는 거죠.

《topclass》_ 무지의 토끼옷이나 네오의 단발머리 가발처럼 본인의 콤플렉스를 가려주는 장치가 있나요?

호조 작가_ 제 캐릭터들이 제 장치인 것 같아요. 제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는 거죠. 원래는 제가 연기과를 가려고 했어요. 서울예대가 100% 실기여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군대 다녀와서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근데 학원에서 연습할 때는 정말 잘했는데, 무대에만 서면 머릿속이 노래지고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그래서 포기했죠. 작가가 된 다음에 특강을 갔는데, 비슷한 느낌이 또 드는 거예요. 떨림의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은연중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망할 거라면 ‘편하게, 솔직하게 다가가자’고 마음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나아지더라고요.

김수민, 이채희 _ 캐릭터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호조 작가_ 캐릭터에는 작가가 녹아들 수밖에 없어요. 가장 많이 관찰하는 대상이니까요. 그 캐릭터로 타인과 소통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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