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메이크업 가르치는 임천수

“앞이 보이지 않아도 혼자 화장할 수 있어요”

글 : 오주현 기자  / 사진 : 김선아 

“너희 정안인(정상적으로 시력을 가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착각하지?”
-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중 오영(송혜교)의 대사


지난 2013년 겨울에 방영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송혜교가 시각장애인 역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극 중 오영(송혜교 분)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짚으며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은 ‘눈이 안 보이니까 화장도 안 할 것이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주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천수씨는 7년째 시각장애인을 위해 메이크업 강연을 하고 있다. 극 중 오영처럼 스스로 화장한 얼굴로 거리에 나서는 학생들을 볼 때 뿌듯하다고 했다.

사진제공 : 임천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다

새내기 메이크업 아티스트 시절,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동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임-칼라’라는 클럽을 만들었다.

“점차 클럽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클럽 사진을 정리하는데 술 먹는 사진밖에 없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친해진 회원들이랑 진취적인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 길로 임천수씨는 봉사할 곳을 알아봤다. 마침 그가 살던 신림동 근처에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있었다.

“봉사하고 싶다고 전화를 드리고 찾아가니 복지관에서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이크업 교실을 제안하셨습니다.”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사는 어머니들이었다. 하지만 화장품 하나에 “어머 이게 뭐야”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도 여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각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를 복지관에 데려가고 복지관이 끝날 때까지 근처 카페에 계시다가 수업이 끝나면 데려오세요. 아이가 눈이 안 보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그래서 당신들 모습을 꾸미는 데는 관심 가질 여력이 없으셨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메이크업 수업을 하니 괜히 제가 더 울컥하더라고요.”

임천수씨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경력 10년 차로 패션쇼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을 꾼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딸을 바라셨대요. 저를 딸처럼 키우셨죠.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것,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머니 머리를 제가 빗겨드리기도 했어요.”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피자집, 중국집 등에서 온갖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을 했다.

“등록은 했지만 그것이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젤 아이라이너, 펜슬 아이라이너, 붓펜 아이라이너… 등 아이라이너 하나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막막하더라고요(웃음). 그럴 때마다 더 공부하고 귀찮아하는 선생님을 붙잡고 끈질기게 질문했습니다.”

메이크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뮤지컬 무대화장, 메이크업 학원의 인솔교사를 거쳐 세계적인 메이크업 브랜드인 MAC에 입사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여러 분야 중에서도 패션쇼 메이크업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무대 뒤에서 모델들을 밝혀주는 일이 굉장히 뿌듯하고 재미있어요.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잖아요. 무대 뒤는 무척 어수선하고 정신없는데 동시에 스릴 있어요. 제 성격에 맞나 봐요(웃음).”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개최했던 ‘2013 실로암콘서트’에서 메이크업 봉사를 하고 있다.
성공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시각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을 위한 메이크업 강의가 좋은 반응을 얻자 복지관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상대로 메이크업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해왔다.

“처음에는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복지관에서 처음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체험을 시킵니다. 그때의 경험만 가지고 일단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복지관을 찾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메이크업 강연은 기초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했다. 화장품의 종류, 화장품 직원들에게 상담 받을 수 있는 방법, 화장품의 색상, 질감에 대해 설명했다.

“화장품을 사러 가면 직원에게 ‘오늘 제 피부 상태가 어떤가요?’ ‘제게 이 립스틱 색깔이 잘 어울리나요?’라고 물어보며 말을 걸라고 말씀드려요. 그리고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색깔을 시각장애인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예를 들면 입술은 연한 핑크, 아이라인은 블랙보다는 브라운이나 카키를, 딱딱한 질감의 도구보다는 매끄러운 질감을 추천해드립니다.”


느낌을 기억하는 화장법

시각장애인을 위한 메이크업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임천수씨.
수업은 매달 1회씩 7~10명의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다. 개개인의 생김새와 취향에 맞게 메이크업 방법을 알려주는 맨투맨 방식이다. 임천수씨는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다. 시각장애인들의 메이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 숙달이다.

그의 목표는 ‘시각장애인 수강생이 혼자서 외출할 때도 자연스럽게 메이크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립스틱을 칠할 때는 입술을 먼저 손으로 만져보고 새끼손가락에 립스틱을 묻혀 입술 라인을 따라서 안쪽부터 바르게 한다. 그다음에 약지를 이용해서 남아 있는 립스틱을 펴 바른다. 아이라인은 먼저 왼손으로 본인의 눈매를 확인한다. 속눈썹이 난 라인을 따라서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왼손은 인도자 역할을 한다. 그 후 오른손으로 펜슬을 잡고 눈에 갖다 댄다. 왼손이 가는 대로 오른손이 천천히 따라간다. 색깔이 묻어날 수 있게끔 살짝 힘을 주고 삐뚤빼뚤해도 괜찮으니 그리라고 말한다.

그 후 새끼손가락으로 라인을 문질러서 라인이 뭉친 부분을 펴준다.


“시각장애인분들은 메이크업 하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해요. 그리고 잘 그리면 ‘지금 잘했어요. 지금 이 느낌을 기억하세요’라고 말씀드리죠. 그분들은 느낌을 기억하시거든요. 그리고 숙달되도록 반복하는 거예요. 또 본인이 쓰는 화장품을 가져오라고 해서 ‘위에서 두 번째 칸 색깔이 본인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단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봉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처럼 능력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봉사하기 위해 빼놓는 몇 시간은 기회비용이 크다. 수입에도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봉사활동은 그에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분들에게 메이크업을 알려드리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워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각박해지잖아요. 사소한 거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차가 조금만 빨리 안 가도 빵빵거리죠. 봉사활동을 하면 이런 삭막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복지관에서 만나는 분들은 항상 긍정적으로 사세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저는 끝까지 메이크업 브러시를 놓지 않을 거예요. 이 브러시로 소외된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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