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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재창조한다

직업의 세계 / 인테리어 디자이너

참고도서 : 《123명의 집 vol 1.5》(위즈덤하우스), 커리어넷
북유럽풍 인테리어, 셀프 인테리어, DIY(Do It Yourself)로 꾸민 집…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아파트처럼 일률적인 공간보다는 사는 사람의 개성이 담긴 소형 주택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설령 아파트에 살더라도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공간을 연출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요즘의 분위기. 쿠션이나 협탁 같은 소품부터 전체적인 구역의 재배치까지 인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주택을 비롯해 상업시설, 공공시설 등의 공간을 기능과 용도에 맞게 설계하고 장식하는 사람을 말한다. 디자인을 의뢰한 건물주나 고객과 함께 사전 협의를 거쳐 작업을 진행한다. 이 협의에는 공간의 구조, 가구나 시설의 배치, 색상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부터 배관과 배수 공사, 배선 공사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아우른다. 셀프 인테리어로 ‘공간 감수성’이 높아진 분위기에 힘입어 인테리어 전문가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분야의 전문성 때문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건축학도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내디자인과, 실내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과 등을 졸업한 이가 반, 타 전공자가 반 정도 된다. 특별히 학벌이나 전공을 따지지 않고 경력과 작업의 성과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 분야의 일은 ‘출퇴근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다. 보통 현장 공사가 오전 7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출근은 새벽 5~6시일 때가 많다. 작업을 마치는 시간을 대략 오후 5시로 잡아도 사무실로 돌아와 작업 일지를 정리하고, 다음 날 작업을 준비하려면 퇴근 시간은 가늠할 수 없다. 주말에도 거의 쉬지 못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소양으로 창의적인 사고와 미적 감각, 색채 감각, 공간지각력,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더불어 ‘초과근무를 대비한 강한 체력’을 꼽은 것도 이런 이유다. 팀을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원활한 소통 능력도 필수다. 예술성과 진취성에 책임감, 꼼꼼함, 신뢰도 등이 더해져야 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웃음건축의 송제권 대표는 “고객과의 언어, 직원과의 언어, 현장 인부와의 언어가 모두 다르다”고 했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고,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사람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다. 더불어 자신의 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도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가진 매력이다.

‘어떤 공간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해준다’, 최근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뜨는 이유는 그들의 여유롭고 감각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증거다. 셀프 인테리어족이 많아질수록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서로의 아이디어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웃음건축 송제권 대표

모두 웃으면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를 아우르는 증산동과 신사동 일대는 ‘사람 사는 동네’의 맛이 남아 있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풍경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살아 있는 곳, 이곳에 터를 잡은 ‘웃음건축’은 ‘사고 싶은 집’보다 ‘살고 싶은 집’을 만드는 공간 공작소다.


사무실 앞에 화단을 만들다
우리 사무실 앞은 아침저녁으로 초·중·고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건물 앞 공간을 ‘모두를 위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화단을 만들었다. 직원들에게는 차 한잔 마시며 ‘멍 때릴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이다. 화단이 생기고 변화가 생겼다. 에어컨 실외기가 있을 때는 접근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화단이 생기자 한 번씩 둘러보고 간다.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입구 전등은 일부러 밝게 만들었다. 골목이 어두워서 자전거를 도난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골목이 밝아지고 나서는 사고가 줄었다.

‘넛지를 아세요?’
‘넛지(Nudge)’라는 말을 좋아한다. 재미있게 읽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공간의 힘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가벼운 권유”라는 뜻인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드러운 개입이다. (암스테르담 공항 소변기에 파리 모양 스티커를 붙여놓는 아이디어만으로 화장실이 훨씬 쾌적해졌다는 게 대표적인 ‘넛지’의 예다.) 개인적으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생각이 번잡하면 집이든 회사든 공간 정리부터 시작한다. 청소와 정리를 마치면 생각도 정돈된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객과 직원을 만날 때도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공간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도 달라진다.

종암동 단독주택 야외 테라스.
피와 살이 된 ‘노가다’의 추억
어릴 적부터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 직접 부딪치는 걸 좋아했다. 경험한 아르바이트만도 수십 가지다. 그중에는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막일도 있었다. 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자재 운반, 공사장 청소 등을 도맡아 했지만 힘들다기보다는 보람 있었다. 무엇보다 일한 당일 일당이 나온다는 게 어린 마음에 신이 났다.

현장에서 땀 흘리는 느낌이 좋아 전공도 건축과를 택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건축회사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인부들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은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는 더운 날 아이스크림 하나 사다주는 사람이 더없이 고맙다. 일보다 사람을 알아주면, 사람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된다.

상암동 벌스뮤직 녹음실 인테리어.
공부하는 CEO
공부의 중요성은 대표가 된 뒤 더욱 절감한다.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설계와 시공만 생각했다. 대표가 되고 나니 디자인을 합리적으로 구현할 방안,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실현 가능한 최적의 성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트렌드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 역시 대표의 역할이다. 지금은 창조혁신 CEO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는다. 전반적인 리더의 역량에 대한 강의다. 아침에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면서 TED 등의 강연도 듣는다. 요즘 고객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아침 방송도 챙겨 본다.

휘경동 커피나무 인테리어.
답은 현장에 있다
건축 인테리어 일은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똑바로’ 하는 게 중요하다. 그 한 번의 작업이 홍보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최근 평창동에서 4명의 자녀를 둔 가족의 집을 공사했다. 딸 3명의 취향이 모두 달라서 접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오프라인 만남에는 한계가 있어 메신저를 이용했다. 단체창을 열어두고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오후에는 무조건 현장에 나간다. 현장에서 가족 구성원이 어떤지, 어떤 생활 습관을 가졌는지를 관찰한다. ‘웃음이 나오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인데, 사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웃음). 내가 웃는 공간이 아니라 고객이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건축의 반은 회의와 조율이다
회사는 2013년 10월 23일에 시작했다. 설계, 디자인, 시공을 혼자 도맡아 했다. 설계하고 도면 수정하고 현장에서 나가고 작업을 나가는 모든 과정이 시간 싸움이었다. 그러면서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한 현장에 발생하는 준비 서류만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단순한 인테리어만큼이나 공간의 재구성도 많다. 방이 화장실이 되기도 하고, 마루가 방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계획이 필수다. 물빠짐이나 방수공사는 미리 준비해야 무리가 없다. 집의 구조, 채광에 따라서 창의 위치나 모양도 달라진다. 도식화해서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 “알아서 예쁘게 해달라”고 하지만 우리 눈에 예뻐도 고객의 맘에 안 드는 경우가 생긴다. 도면이 생기면 그래픽화도 가능하다.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의 최종 이미지도 미리 만들어본다. 정육점 인테리어를 맡은 적이 있다. 우리가 제안한 디자인을 고객이 연달아 거절했다. 고객이 원하는 건 노랑색이었다. 긴가민가 했지만 일단 원하는 대로 해드렸다. 고객은 대만족했다. ‘고객의 눈으로 보는 것’, 인테리어의 철칙이다.

왼쪽부터 김승환 기사, 송종현 기사, 송제권 대표, 서종호 팀장.
여행의 기술
여행을 가도 항상 공간을 주의 깊게 본다. 어떤 점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지를 공부한다. 나라마다 다른 분위기, 공간마다 다른 개성을 보면 새로운 자극이 된다. 세상에는 똑같은 집이 없다. 건축의 3대 원칙은 기능·구조·미(美)다. 주거시설은 더 어렵다. 변수가 많다. 매일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계속 관찰하게 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을 보러 건축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나라를 디자인하고, 도시를 디자인하는 총괄 건축가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의 만족도는 단순히 하나에서 나오지 않는다. 맛집도 그렇다. 분위기, 맛, 친절도, 가격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집도 마찬가지. 게다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다. 요즘의 셀프 인테리어 열풍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도 많다. 모두가 웃으면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이루기가 쉽지 않아서 매번 도전의식이 생기는 것도 즐겁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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