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사상 첫 출전 준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한수진

‘평창의 기적’ 우리가 만들 겁니다

글 : 이채희 인턴기자(연세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아이스하키는 우리나라에선 불모지에 가까운 종목이다. 특히 여자 아이스하키는 국가대표팀 외에 별도의 팀이 없다. 1년 전 국제아이스하키 연맹은 대한민국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팀에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최국 출전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평창의 기적’을 꿈꾸며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6시간씩 맹훈련하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한수진 선수를 만났다.
피아니스트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려면 보통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운동을 시작해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수진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를 거쳐 연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는데 1년 정도 하다가 중학교 입시 준비 때문에 그만뒀어요. 어릴 때 했던 운동이라 그 이후로는 쭉 잊고 살았죠. 스무 살 때 입시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목동 링크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게 됐어요. 그때 다시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2007년 대학에 합격한 후 바로 ‘타이탄스’라는 교내 아이스하키 동아리에 들어갔다. 팀의 유일한 여자선수로 활동하다가 그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동아리의 연습 시합에서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과 코치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수진의 포지션은 공격수다. 세 명의 공격수 중, 중앙에서 팀의 공격을 지휘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수비에서도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한수진은 공수를 빠르게 넘나들 수 있는 스피드와 강인한 체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후 4시 반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공식 훈련을 시작하는데, 저는 보통 훈련 스케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와서 훈련을 시작합니다. 오후 6시 반 정도에 웨이트를 마치고 8시부터 10시까지는 아이스링크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아요. 이런 훈련 과정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이니까요. 훈련을 통해 링크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스피드가 생겨난다고 믿어요. 스스로 향상되었다고 느껴질 때 보람을 얻습니다.”

한수진은 대표팀의 고참급 선수다. 2013년 9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주장도 맡았다. 지금은 어린 선수들의 귀감이 될 만큼 선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7년 전,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짜릿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나갔을 때 크로아티아전 승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승부를 가리지 못해서 슛아웃(승부치기)까지 갔는데 감독님의 지시를 받아 제가 슈터로 나서게 됐어요. 실패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라 무척 긴장됐죠. 주위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운이 좋게 골을 넣었는데 그때 뭔가 마음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이니까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는 공식 팀이 없다. 아이스하키는 몸싸움이 거칠고 격렬한 스포츠로 유명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들지만 한수진은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이 더 커 보였다.

“다른 종목보다 더 힘든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른 종목들은 팀이 있다는 게 부럽기는 하죠. 팀이 있으면 소속팀에서 훈련을 받고 대표팀에서 수정을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지만 우리는 대표팀밖에 없으니까요.”

선수생활 수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따른다.

“저를 포함해 성인 선수들은 주말 동안 아이들에게 하키 레슨을 하는 아르바이트도 해요. 취미 삼아 운동하는 학생들이죠. 운동만 해서는 생활이 쉽지 않아요.”

그가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하키스틱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스하키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창 아이스하키에 빠져 있을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키 영상을 보는 게 취미였어요. 영상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강력한 슛을 날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어려서부터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정해진 일정에 맞춰서 살다가 처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예요. 생활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또 아이스하키가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스하키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오로지 아이스하키를 위해 떠난 유학이었어요. 여자들끼리 운동을 할 수 있는 팀에서 뛰어보고 싶기도 했고, 일본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싶기도 했어요. ‘삿포로 바카즈’라는 클럽 팀에서 운동을 했는데, 그때는 엔화 환율이 높아서 팀 운동이 없을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게다가 일본어 학원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죠. 운동할 때가 제일 편했어요.”

그의 부모도 딸의 아이스하키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아이스하키라는 운동만으로는 먹고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죠. 하지만 저는 피아노보다 아이스하키가 더 좋았어요. 진짜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하는 말에 흔들려서도 안 되고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부모님께서는 누구보다 저를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십니다.”


한국팀의 최대 강점은 조직력


지난 8월 여자 국가대표팀은 세계 랭킹 18위인 카자흐스탄(한국 23위)과 네 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3월에 열린 세계 선수권에서는 카자흐스탄에 졌는데 이번에는 2승 2패를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펼치지 못해 아쉬움도 많이 남아요.”

그러나 한수진은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멤버나 스태프 구성 등 대표팀이 조금 더 팀다운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고 전지훈련도 운영하는 등 과거에 비해 한결 체계적으로 팀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키 선진국은 팀도 많고 선수도 많아요. 그들은 대표팀 멤버가 매번 바뀌지만 우리는 365일 같은 선수들이 함께 훈련을 받기 때문에 조직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팀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제가 올림픽에 나간다면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겁니다. 개인 기록에는 관심 없어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 한 선수가 생각하는 아이스하키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이스하키는 지루함이 전혀 없는 운동입니다. 스피드가 넘치기 때문에 박진감 있는 경기를 즐길 수 있어요.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도 장점이겠죠(웃음).”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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