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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정직・추억을 부르는 ‘세 바퀴’

아띠인력거 이인재 대표

처음 올랐을 때 ‘꿀렁’ 하고 움직이는 바퀴의 느낌과 얼굴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 인력거에서 바라보는 골목의 풍경…은 글로는 표현이 안 된다.
2시간의 인터뷰 후 15분 정도 라이딩을 했다. 삼청동에 부는 바람이 달라졌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아띠인력거의 지원서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인재 대표가 3년 전, 서울을 달리는 인력거 ‘아띠’를 창업하게 된 계기도 같은 질문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스티브 잡스가 사업에 성공하고, 윤동주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때였다. 중학교 때 미국유학을 떠나 대학까지 마친 뒤 외국계 금융회사를 다니던 이인재 대표는 매일 서울의 중심으로 출근하며 생각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즐겁게 살아보자(You Only Live Once)’, 하얀 와이셔츠를 벗고 파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YOLO’는 그가 시작하는 사업의 정체성이 됐다. 인력거는 그가 보스톤에 있을 때 몰아본 경험이 있다. 아르바이트 삼아 했던 일인데, 미국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지닌 사람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인력거를 타고 달릴 길이라면 서울도 못지않다. 특히 북촌과 서촌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차로 가기엔 너무 빠르고, 걷기엔 너무 길다.

“처음 인력거를 끌고 나온 게 여름이었어요. 밖이 진짜 더웠거든요. 미국은 사람들이 인력거를 보면 타는 분위기예요. 한국에서는 ‘이걸 어쩌라는 건가’라는 눈으로 보시더라고요. 하루 종일 혼자 타다가 길에서 노을이 지는 걸 보면서 들어왔어요.”

그 시간은 ‘유학까지 다녀와서 왜 몸 쓰는 일을 하느냐’ ‘한국에선 안 통한다’는 고정관념과 싸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3년 아띠인력거가 창조관광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2년이 지나자 체험 고객이 2만5000명, 라이더가 25명으로 늘어났다. 3년이 지난 현재 아띠인력거를 모는 라이더의 수는 40명, 한 달 손님은 1200명에 이른다.

“대상을 받으니까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상하게 손님이 늘기 시작했어요(웃음). 북촌이 인력거 타기에 참 좋아요. 빌딩숲은 매력이 없잖아요.”

인력거가 이인재 대표에게 선물한 건 그뿐 아니다. 자유를 주었다. 그를 비롯해 많은 라이더들은 인력거에 오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일명 근자감)’이 생긴다고 한다. 본래의 자신보다 자유롭고 자신 있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평일에는 회사 근무를 하고 주말에 라이딩을 하러 나오는 라이더도 있다. 라이더 잭슨씨는 “주말에 운동 겸 근무 겸 달리고 나면, 다시 한 주를 살 힘을 얻는다”고 했다.

“인력거를 타고 다니면 타지 않았을 때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어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죠. 걸으면서 사람들한테 아는 척을 하면 이상해 보이잖아요? 인력거를 타고 인사를 건네면 반갑게 받아주세요. 저희 일 자체가 땀을 흘려서 내 힘으로 인력거를 모는 단순하고 정직한 일이니까 사람들도 마음을 열어요.”


나를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만 맞는다면, 나이,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게 라이더 일이다. 다만 초보 라이더는 수습기간을 마칠 때까지 요금을 받지 않는다. 돈을 버는 기쁨 이전에 인력거를 모는 재미를 알았으면 해서다.

“당연히 돈도 벌어야겠지만, 일 자체가 좋아서 하길 바라요. 설령 돈이 안 벌려도 놀러 나오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돈이 벌리거든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일하는 게 편해요.”

골목길로 흩어진 라이더들은 예약 손님 외에도 길에서 손님을 태운다. 무료로 태워주는 경우도 있다. 막상 인력거를 타보라고 하면 ‘무거울 텐데, 힘들면 어쩌지’ 싶어 사양하게 된다. 사실 그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 타라는 거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여성도 할 수 있어요. 오르막길에서도 기어를 맞추는 요령만 있으면 몰 수 있고요. 북악스카이웨이를 자진해서 가는 라이더도 있어요. 생각처럼 힘들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정도는 힘들어요. 사람이 타면 그만큼 힘들지만 힘은 나요. 사람이 안 타면 힘은 덜 들지만 힘이 안 나고요.”

정말인가 싶어 인력거를 몰아봤다. 생각보다 잘 나간다. 자전거보다 쉽다. 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는 균형을 잡지 않으면 넘어지지만, 바퀴가 세 개인 인력거는 페달만 굴리면 된다. 앞으로 나가는 힘과 방향감각만 있으면 나머지는 인력거가 해준다.

“라이더들이 길에서 사람들을 태워주는 이유는 기왕에 갈 거면 같이 가는 게 좋아서예요. 혼자 다닐 거면 아예 작게 만들었겠죠. 느리게 가도 되고, 멈춰도 돼요. 넘어지지 않으니 라이더는 달리기만 하면 돼요.”

달리다 보면 이야깃거리도 생긴다. 이 한옥은 시인 이상이 살던 집, 이 골목길은 서태지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손님과 친구가 된다. 함께 달리면서 느끼는 친밀감 역시, 타봐야 안다.

“여자 친구를 태워주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타보면 알아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요. 라이더가 마냥 고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고요. 저도 일하면서 계속 배워요. 빌딩 안에서 근무할 때는 날씨나 계절을 신경 쓰고 살지 않았거든요. ‘밖에서 일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날씨의 중요성을 실감하죠. 문제는, 예보가 너무 많이 틀린다는 거예요(웃음). 비 온다고 해서 라이더들 다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비는 안 오고 손님은 오시면 그때는…!!!”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


서울을 누비는 아띠인력거는 지난 6월 ‘라바 인력거’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라바 제작사 ‘투바엔’과 업무협약을 맺고 북촌과 서촌 명동 ‘만화의 거리(재미로)’에서 라바 인력거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아띠인력거는 자체적으로도 라이더들과 함께 재미를 도모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다. 소풍을 가기도,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한다.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팀워크예요. 사실 인력거 자체가 단체운동 같은 거거든요. 사람들이 함께 땀을 흘리는 건 힘이 세요.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어요. 제가 처음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운동의 힘이었어요. 언어는 서툴렀지만 함께 운동을 하면서 친밀해졌어요. 생각해보면 창업하기 전에 제가 겪었던 모든 일이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이인재 대표의 인생을 바꾼 인력거는 때로 손님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초기에 스위스에서 온 모녀가 인력거를 탄 적이 있어요. 그들이 3년이 흘러서 2주 전에 또 오셨어요. 처음에는 딸이 고등학교 입학하는 기념으로 왔는데, 이번에는 대학 입학을 기념하러 온 거예요. 그 친구가 대학에 입학할 때 에세이를 썼는데, 그 에세이의 도입이 저희 인력거를 탄 이야기였대요. 속으로 ‘우와’ 했죠. 우리 인력거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구나 싶어서요.”

라이더들도 마찬가지다. 20대 청년들이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라이더 현아씨는 아띠인력거가 “인간 갱생 프로젝트였다”고 말한다. 지금도 PC방에 있을 친구들을 여기에 앉히고 싶다면서. 나무 전문가이기도 한 라이더 김학송씨는 “직장 다닐 때는 야근하고 들어가면 스트레스인데, 여긴 하루가 끝나면 몸은 고되지만 집에 가서 누울 때 뭔가 해냈다는 행복이 있다”고 했다.

라이더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손님도 그렇다.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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