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칼럼니스트 박상현

“규슈 취재여행만 70여 차례, 집 한 채 날렸죠”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어느 날이었다. 친구 녀석 하나가 뻔질나게 일본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일본 열도의 최남단, 규슈만 갔다. 무슨 책 한 권을 샀는데 그 책에 나와 있는 음식을 섭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 녀석 손에 들려 있던 한 권의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따비). ‘음식 문화’를 여행과 맛있게 버무린 책이었다.
2013년 말에 나왔지만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사진제공 : 박상현
“지루할 정도는 아니지만 평범한 인생이었다.” 박상현(45)씨는 자신의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나이 마흔 전까지는 그랬을지 모른다.

마흔 이전의 그는 부산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회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성실하고 사랑 많은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접한 와인의 세계. 와인이라면 마주앙밖에 모르던 시절이었다. 동호회 사람들과 원서를 읽고 직접 외국에서 구해온 와인을 마시며 와인을 팠다.

아내 이유선(44)씨를 만난 것도 와인동호회에서였다. 아내의 직업은 유명 외식업체 직원. 그가 ‘맛’의 길로 방향을 튼 것도 어찌 보면 이런 우연이 겹친 필연이었는지 모르겠다.

2003년부터 ‘취생몽사’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시작했다. 글 쓰는 게 재미있었다. 틈틈이 올린 맛집 후기에 사람들 반응도 좋았다.

‘어?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나?’

상현씨 마음이 붕붕 뜨기 시작했다. 그보다 달필인 블로거도 많았다. 하지만 호응과 인기는 그의 몫이었다. 마침 회사 경영도 어려워졌다. 빚도 생겼다. 한번 떠버린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없었다. 상현씨는 결심했다.

“여보, 나 딱 3년만 놀게.”

아내 유선씨는 그의 말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친구들이나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아내를 형수나 제수씨라고 부르지 않아요. ‘보살님’이라고 부르죠. 저 같은 놈 데리고 살아주니까.”

졸지에 어엿한 업체를 운영하던 사장에서 빚쟁이 백수가 됐다. 친구들과 만남도 끊었다. 가난과 친구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나이 마흔을 목전에 둔 시기였다.


규슈행, 새로운 인생을 쓰다

박상현씨의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는 단순한 맛집 가이드북이 아니다.
음식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다뤄 호평을 받았다.
상현씨의 ‘엄청난 고백’ 뒤에는 그만의 큰 결심이 있었다. 3년 동안 열심히 글을 써서 음식 문화를 다루는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상현씨는 원고 기획안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의 노포와 요리사들을 소개하는 취지의 기획안을 만들어 신문사에 돌렸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부산일보〉에 ‘부산의 노포’를, 〈국제신문〉에 ‘부산의 요리사들’ 연재를 맡았다.

“광고 없이 지면 한 면을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안 하면 안 쓴다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35매 원고를 쓰는데 죽겠더라고요. 글쓰기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고 글을 봐주는 데스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었죠. 월요일 오전 9시가 마감이었는데 주말에 속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어떤 때는 일요일 오후 6시까지 취재조차 안 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쓰게 되더라고요.”

3년 가까이를 그렇게 살았다. 마감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되고 전업작가로서의 글쓰기도 몸에 익혔다.

‘남들은 돈 내고 하는 훈련을 나는 돈 받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기사에 대한 독자 반응도 좋았다. 상현씨가 쓴 글은 열독률 높은 기사로 어김없이 뽑혔다.

“글 쓸 때는 제 글을 처음 보는 사람인 담당 기자와 편집장, 그리고 편집디자이너를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씁니다. 그분들이 재미없으면 기사도 나가지 못할뿐더러 다른 독자들이 읽어도 재미가 없죠.”

상현씨는 부산 취재를 하는 동시에 규슈 취재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본의 음식 문화를 통해 우리 음식 문화의 현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후쿠오카는 자주 갔었어요. 부산에 사니까 비행기나 배를 타고 쉽게 갈 수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오후 2시쯤 후쿠오카 어디서 한잔할까” 약속 잡고 가도 도착하면 6시가 안 됐으니까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취재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죠.”

일본・음식・문화・역사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한일해협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기네스 등재도 가능하다’는 말이 우습게 들리지 않을 정도다.

취재가 한창이던 2012년에는 아예 규슈에 건너가 두 달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쓴 원고를 바탕으로 취재기획안을 내 규슈관광추진기구로부터 후원도 받았다.

“아내가 회사일로 힘들어 했어요.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죠. 아직 약속한 3년이 안 됐는데…. 그런데 어느 날 밤, 파김치가 돼 돌아온 아내 얼굴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잘못하면 마음도 망가지겠더라고요. 회사 관두고 나랑 규슈나 가자고 했죠.”

상현씨 부부는 두 달 동안 규슈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때 들어간 돈만 2000만원. 일본은 어딜 가든 교통비가 많이 든다. 한정된 시간 동안 여러 곳을 다니려면 교통비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음식에 관한 글을 쓴다는데 한 번만 먹어보고 쓸 수도 없는 노릇. 두 번, 세 번 갔다. 의도된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음식을 내는 사람이 무얼 중요시하는지를 봤다.

“맛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요리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요. 하지만 음식을 내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어디에 신경을 쓰고 손님이 어떤 걸 알아주길 바라는지 알 수 있죠.”


부산 ‘삼진어묵’ 등 향토음식 프로듀서

10년간 규슈를 드나들며 배운 것도 많고 부러운 것도 많았다. 창업한 지 100년 넘는 노포가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 존재의 이유는 가게를 잇는다는 신념과 장인정신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답은 간단했다. “돈이 되니까.”

“부산 노포를 취재하면서 예상치 못한 현실과 맞닥뜨렸어요. ‘오래된 가게’라고 하면 맛의 비법 같은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부동산이에요. 가게 건물이 자기 거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죠. 똑같은 시기에 시작해서 사라진 가게 중에 더 맛있는 집도 많았어요. 우리나라 외식산업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오랜 전통과 발전이 함께 가긴 힘들 거예요.”

상현씨가 요즘 관심 갖고 취재 중인 것은 향토 음식과 제철 재료다.

부산의 성공적인 향토음식 사례로 꼽히는 ‘삼진어묵’이 그가 프로듀스한 결과물이다.

“어느 날 삼진어묵 3대라고 밝힌 젊은이한테 e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자기는 뉴욕에 살고 있는데 자꾸 집에서 가업을 이으라고 한다는 거예요. ‘부산의 노포’ 기사에서 삼진어묵에 대해 쓴 것을 봤다며 내가 도와주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어요. 무엇 때문에 너희 집안일을 도와줘야 하냐고 그의 제안을 거절했죠. 그런데 몇 년 후 어느 날 한국에 들어왔다며 만나자는 거였어요.”


삼진어묵의 3대 박용준(33) 실장과 상현씨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삼진어묵의 새 역사를 쓴다. 부산의 첫 번째 어묵공장 자리였던 봉래동 어묵공장은 어묵베이커리와 어묵 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어묵은 조리식품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어묵크로켓 등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부산역 등 지점도 냈다. 매출도 10배 이상 늘었다.

“향토음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음식이 결합된 스토리텔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지역으로 사람이 찾아오는 거죠. 일본 철도의 에키벤(일명 ‘기차역 도시락’으로 해당 역에서만 판매)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삼진어묵도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매장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죠. 사람들이 부산으로 어묵 먹으러 와야죠. 그렇게 해야 ‘물건’에 권위가 생겨요. 모든 걸 서울에서 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지방을 찾을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그 조건은 용준씨와 일을 시작할 때 약속했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상현씨가 프로듀스하는 두 번째 향토음식은 부산의 명란젓이다. 후쿠오카의 명물 멘타이코(明太子)의 원조가 바로 부산의 명란젓이다. 부산 최대의 명란젓 생산업체인 덕화푸드와 손잡고 벌이는 일이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생산된 최고급 명란젓은 일본인의 식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맛볼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물론 삼진어묵처럼 색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상현씨는 요즘 계절마다 달라지는 음식 소재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 겨울에는 통영의 굴과 거제의 대구를 찾아 떠났고, 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다. 음식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여기에 해당 음식이 잉태될 수밖에 없었던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더해진다.

“대한민국 사계절 식재료 취재여행은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계절마다 나오는 제철 재료가 워낙 풍부하니까요. 지금은 어묵을 통해 바라본 한국의 근현대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언젠가는 《남극의 셰프》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학교 급식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주는 음식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그러려면 남극에 꼭 가봐야겠죠?”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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