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5000m 신기록 보유자 염고은

마라톤 샛별로 떠오른 ‘육상 천재’

글 : 이상범 인턴기자(성균관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염고은(21)은 육상 천재다. 열여섯 살에 2010년 제39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5000m 한국 신기록(15분 38초 60)을 세우며 육상계에 충격을 줬다.
그리고 몇 년간의 공백. ‘깜짝 스타’로 잊힐 것 같던 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최근 두 차례의 국제마라톤에서 국내 여자부 1위를 따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마라톤 샛별 염고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진제공 : 삼성전자 육상단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삼성전자 육상단. 한국 마라톤계를 이끄는 육상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이다. 운동복 차림으로 인사를 건넨 그는 인터뷰 내내 수줍어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폐활량이 뛰어났냐”는 질문에 염고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움직이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매일 무릎이 까지고 넘어졌죠. 얌전히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저 언니 따라 친구 따라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가족의 영향도 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렸을 적 잠깐이지만 육상경기를 준비했었다. 언니 또한 초등학교 시절 육상부에서 높이뛰기 선수로 활약했다.

“두 살 위 언니를 매일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상을 접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이 저를 유심히 보신 거죠. 선생님의 제안으로 3학년 때 육상부에 들어갔어요.”

어렴풋이 달리기를 알아가던 초등학교 6학년, 기회가 찾아왔다. 단거리 선수 출신 오영은 코치가 시대회에 참가했던 염고은의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다. 오 코치와 염고은은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신기록 달성 후 쏟아진 부담감

시간이 흘러 2010년, 열여섯 살 소녀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2005년 이은정(삼성전자)이 세운 한국 신기록(15분 41초 67)을 3초 이상 앞질렀기 때문이다. 염고은의 시합은 대회 첫날이었고 관계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신기록 달성은 뜻밖의 일이었어요. 5000m는 처음 뛰는 종목이었고,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전했거든요. 뛰고 나서도 어안이 벙벙했어요.”

‘육상계의 김연아’ ‘제2의 임춘애(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부 3관왕)’ 같은 ‘무거운 꼬리표’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

“많이 어렸잖아요. 경기 직후에는 이게 큰일인지도 몰랐어요. 내가 기록을 깼구나, 이 생각뿐이었죠. 시키는 대로 인터뷰도 하고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니 실감이 났어요. 그제야 비로소 관심들이 무서워졌어요. 부담으로 느껴지니 심리적으로도 힘들어졌고요.”

빠르게 정상에 오른 만큼 부진의 시간도 길었다. 그는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방황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함께했던 오영은 코치님이 대회 후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셨어요. 그 후 며칠간은 혼자서 달렸어요.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았죠. 쉬는 게 좋았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부상도 잦았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까지 오면서 운동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합숙 훈련 후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께 그만둘 거라고 말하며 얼마나 울었는데요.”


마라톤 전향 후 새 출발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고3 시절 염고은은 육상을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건 오영은 코치다. 소식을 들은 오 코치는 그가 꿈을 버리지 않도록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얼마 후인 2012년 12월, 그는 지금도 함께하는 김용복 코치를 만나 삼성전자 육상단에 입단했다.

현재 육상단의 감독을 맡고 있는 황규훈 감독은 염고은을 두고 “스피드와 특유의 낮은 주법이 돋보이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체력을 키워 지구력만 갖춘다면 마라톤 선수로서는 최적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장거리 달리기의 매력에도 흠뻑 빠져 있었다.

“완주 자체가 힘든 종목이다 보니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아요.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변수가 생기고요. 뛰다가 발목을 접질릴 수도 있고 배탈이 날 수도 있어요. 쉽지 않은 종목이죠. 지난해 열렸던 춘천국제마라톤은 처음 뛰어본 경기였어요. 훈련도 안 된 상태다 보니 35km 지점부터는 그냥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도 42.195km를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원동력이에요.”

마라톤 선수로 전향한 이후 염고은은 공식적으로 두 번의 경기를 치렀다. 조선일보춘천국제마라톤(2014년 10월)에서는 2시간 43분 33초를, 대구국제마라톤 (2015년 4월)에서는 2시간 34분 41초를 찍었다. 반년 만에 9분을 단축했고 두 경기 모두 국내 1위다. 여자부 한국 신기록은 1997년 권은주 선수가 달성한 2시간 26분 12초다. 전망이 밝다.


브라질 리우올림픽 선발이 목표


그는 5000m 한국 신기록을 세울 당시의 기억이 희미하다고 했다.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주위 시선도 잊으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생각 안 하려고 해요. 그냥 앞 선수만 보고 뛰는 거죠. 딴생각을 하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 몸이 더 힘들거든요. 그런데도 결승선을 지날 땐 몸 조절이 안 돼 창피했어요. 거의 끌려오듯이 통과했고 그냥 앞으로 쓰러졌죠(웃음). 대구마라톤 때는 부모님이 결승선 근처에 계셨다고 들었는데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요.”

트랙 밖의 그는 또래와 다를 바 없는 스물한 살이었다. 훈련 시간이 아닐 땐 하고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다.

“일요일은 새벽 훈련을 제외하고는 자유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활용해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손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조립, 퍼즐, 그림 그리기를 즐겨 하고, 최근에는 통기타도 배우고 있어요. 밖에 나가서 놀면 좋긴 한데 힘들어요. 평소 항상 달리다 보니 걷거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더라고요. 놀이공원에서도 대기 줄이 짧은 데만 찾아다녀요(웃음).”

현재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들의 기량은 30대에도 절정을 이룬다. 마라톤의 핵심은 지구력이기 때문이다. 염고은은 젊다. 앞으로 그에겐 수많은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내년 열리는 브라질 리우(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선발이 목표죠. 국제대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3년 안에는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고 싶어요.”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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