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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대상은 눈앞의 적이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

직업의 세계 / 종합격투기 선수

사진제공 : 박현근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는 복싱·킥복싱·주짓수*·레슬링 등 다양한 무술을 합쳐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지 겨루는 경기다. 공정한 룰 속에서 물어뜯기, 급소 공격, 눈 찌르기 등 생명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공격 기술을 제외하고 타격, 던지기, 꺾기, 조르기 등 모든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격투기는 상대선수의 무술 기술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복싱선수가 주짓수 선수와 겨루려면 주먹 타격은 좋지만 무에타이·태권도·가라데 등 다리를 이용한 킥 기술 없이는 방어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을 섞어 겨루는 것이다. 주로 타격에는 무에타이·복싱 등의 기술을 사용하고, 그래플링(그라운드 바닥에서 메치기, 조르기, 누르기, 관절꺾기 등의 태클을 이용한 기술)은 주짓수·유도·레슬링 등을 사용한다. 누운 상태에서도 선 상태에서도 겨뤄야 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선수들 또한 대결을 위해 매번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 종합격투기로 유명한 단체는 미국 ‘UFC’, 일본 ‘프라이드’, 러시아 ‘M-1’ 등이 있다.

종합격투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1993년 미국의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대회가 시작되면서다. 최소한의 규칙으로 각기 다른 무술의 격투기 선수가 겨루는 경기였다. 종합격투기는 이 대회를 계기로 복싱 경기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 마치 ‘피 끓는 투혼’을 불사르는 듯한 경기를 펼쳐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종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에 열광하는 팬 층이 두터워지면서 여성 격투기 경기도 조금씩 열리게 됐다. 소규모 여성 전용 대회 등장 이후 세계 격투기 메이저 단체인 UFC에도 여성부가 도입됐다. 지난 3월 ‘UFC184’ 여성부 밴텀급 전에서 상대선수를 14초 만에 제압해 챔피언에 오른 미국의 론다 로우지 선수의 경기는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경기는 체급경기로 나뉜다. 신장과 체격 차로 인한 핸디캡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2000년도 초기엔 무제한급으로 시작됐다 점점 체급수를 늘렸다. 현재 UFC에서 남자는 플라이급, 밴텀급, 페더급, 라이트급, 웰터급, 미들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총 8개 체급, 여자는 스트로급, 밴텀급 2개 체급을 운용하고 있다.

현재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선수들은 대부분 종합격투기 팀을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종합격투기 지도를 받고 프로로 데뷔한 경우다. 가라데·유도·레슬링 선수에서 격투기 선수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다. 경북 과학대 외 소수의 대학에 개설된 이종격투기 학과에서도 지도 및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체육관은 복싱·무에타이와 같은 입식 타격부터 유도·레슬링·주짓수 등의 그래플링 훈련을 복합적으로 지도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선수부 활동을 시작으로 아마추어, 세미프로, 프로리그로 올라간다.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 FC’에서 개최하는 루키리그, 세미프로의 단계를 밟는 경우도 있다. 보통 아마추어 2~3년, 세미프로 2~3년을 거친 후 프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격투기 선수를 직업으로 인정하기보다 젊었을 때 잠깐 하는 모험으로 인식하거나 돈이 안 되는 힘든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합에서 우승해야만 수입이 생기던 옛 시절과 달리 종합격투기 시장은 점점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인기 파이터는 부대수입을 포함해 경기당 수억원을 받기도 한다. 선수의 역량과 경기 승패 결과에 따라 각 경기의 승리수당 계약조건, 수입이 결정된다.

* 주짓수 : 관절꺾기나 조르기 등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이다.



5월 ‘UFN65’ 경기 앞둔 종합격투기 남의철 선수

살아있음을 느낀다

종합격투기 남의철 선수는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았다.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노력파 선수로 통한다. 그러나 케이지 안에 서면 타격을 거세게 몰아 부치며 저돌적으로 변해 ‘코리안 불도저’라고도 불린다. 그는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의 2010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후, 세계 격투기 메이저 단체인 ‘UFC’의 러브콜을 받고,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3월 UFC 데뷔전을 우승으로 이끌다 오른 손등 뼈가 부러져 1년 동안 세 번에 걸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현재 남 선수는 재활 훈련을 마치고 5월 필리핀에서 열리는 ‘UFN65’ 경기 준비 연습에 한창이다.


‘스피릿MC’ 대회 초대 챔피언
군 생활 중 유일한 낙은 격투기 대회를 보는 것이었다. 전역 후 격투기를 꼭 배우리라 마음먹었고, 2003년 전역 후 취미 삼아 체육관을 다녔다. 꾸준히 운동하며 아마추어대회에 나가 운 좋게 1등을 했다. 이때만 해도 격투기 선수가 직업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당시 격투기는 이른바 ‘돈이 안 되는’ 운동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극히 평범하던 일상의 무료함을 날려준 건 격투기였다.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질 만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체육관 매트에 누워 있는 게 좋았고 땀 냄새도 좋았다.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몸 여기저기 성한 구석 없이 늘 퉁퉁 부어 있는 얼굴을 보는 부모님은 아들의 선수 생활을 반대했다. 국내 종합격투기 ‘스피릿MC’ 대회 초대 챔피언을 따내며 노력하는 모습에 부모님은 결국 허락해주셨다.


파이터에게 두려움은 숙명
케이지의 문이 철컥 닫히는 순간 절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된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선수 대기실에서 손에 테이핑을 감을 때다. 부상 염려, 승패 걱정과 회피하고 싶은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싸우리라 다짐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주변의 응원과 격려도 큰 도움이 된다. 다쳐서 포기하거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다. 끝까지 가고 싶다. 격투기를 하는 이유는 저 끝에 뭔가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 끝을 확인하기 위한 인생의 여행이기도 하다.

뱉어놓고 지키는 스타일
경기 전 몸무게 계체량 측정 때 상대선수를 처음 만난다. 기세싸움은 눈빛으로 시작된다. 상대선수를 향해 돌진해 이마를 맞대고 벌이는 눈싸움은 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거친 눈싸움을 하면 도망치는 소극적인 경기를 할 수 없다. 즉,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더 화끈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최고 자극제가 되는 순간이다.


정정당당한 승부
2013년 10월 ‘로드FC’ 라이트급 경기에서 만난 일본 쿠메 다카스케 선수와 1라운드 종료를 앞두고 오른손 손등이 덜컥대는 듯했다. 2라운드에서 손등이 부러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부러진 손이 대수랴 오로지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연장 접전 끝에 승리했지만 마음고생이 심했다. 경기 중 무의식적으로 몇 차례 철창을 잡았는데 심판이 이를 제지하지 않아 편파판정으로 논란이 됐다. 팬들은 반칙으로 챔피언이 됐다며 악플을 쏟아냈다. 챔피언이 됐음에도 비난을 받으니 화도 나고 트라우마처럼 마음을 괴롭혔다. 주최 측에서는 곧바로 재대결을 확정지었다. 다음 경기에서 만큼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려 주먹 쥐는 각도, 카메라 각도까지 유의했고 반성도 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정당당한 승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 이를 갈며 준비했다. 6개월 후 쿠메 선수와 뒤엉켜 싸우며 그도 열심히 준비한 게 느껴졌다. 그와 명승부를 펼쳤고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쿠메 선수의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시합 후엔 오히려 상대선수와 더 가까워진다. 승패를 떠나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취미로 시작한 격투기가 업이 되고 나니 고된 훈련, 잦은 부상, 경제적 어려움, 체중 조절 등 극복할 것이 많았다. 대회를 위해 뼈를 깎는 듯한 노력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안와 골절, 손목 부상 등 1~2년을 재활치료에 힘써야 하는 힘든 상황도 있었다.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면 이방인 같은 느낌도 든다. 국내에선 아껴주는 분들이 응원해주지만 해외무대는 모든 게 어색하다. 케이지, 글러브, 환경, 생활 등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지만 힘든 무대인 만큼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라이트급에서 페더급으로
2004년 프로 데뷔 후 약 10년 동안 라이트급에서 활동해 왔다. 지난해 3월 도쿠도메 카즈시 선수와 겨뤘던 UFC 데뷔전에서 상대선수의 팔 길이 때문에 신체적 불리함을 크게 느꼈다. 상대선수의 팔이 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고들어 타격을 하는 전략을 택했다. 상대선수의 압박에 눌려 일어나지 못하는 과정에서는 잡힐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팔이 잡혔다. 상대의 하단 태클이 예상보다 더 깊게 들어오는 느낌도 받았다. 우승은 했지만 라이트급에선 신체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껴 페더급 전향을 결심했다. 페더급은 라이트급에 비해 템포, 공수전환 등 경기 흐름이 빠르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크기 때문에 몸도 가벼워야 한다. 페더급 체중인 66kg를 만들기 위해 11kg를 감량해야 한다. 식단 조절 및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므로 예민해진다. 여유와 재미도 없지만 한편으로 설레기도 한다. 현재 UFC에서 가장 핫한 등급이 페더급인데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물론 세계 챔피언을 목표로 달려볼 생각이다.


끝까지 간다
나는 유능한 선수가 아니었다. 비록 재능은 없었지만 의지와 노력으로 반드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경기 때마다 상대선수의 특징과 경기 패턴을 파악해 여러 기술을 습득하고 대비했다. 경기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무에타이와 레슬링인데, 다른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패턴을 상대선수에게 읽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 기술엔 변화를 주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시합영상을 보며 연구하기도 하고 코치와 상의하며 익히기도 한다. 10년 동안 매일 쓰고 있는 수련일지에는 그날 배운 기술과 컨디션 등을 자세히 기록해둔다. 로드FC 챔피언이 됐을 때 꾸준히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지금은 한국 챔피언이 세계무대에서도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에도 주저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고 싶다. 종합격투기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만들고 싶다. 힘들게 운동하는 격투기 선수들에겐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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