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기획사 ‘중앙의전기획’ 이정훈 대표

대한민국 VIP 장례의 모든 것을 관장합니다

글 : 이상범 인턴기자(성균관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날, 죽음이라는 분야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 한 청년 사업가를 만났다.
대한민국 상위 1%의 ‘죽음’을 기획·연출하는 장례기획사 중앙의전기획의 이정훈(38) 대표다.
흔히 장례기획사와 상조회사를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이정훈 대표는 장례기획만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중앙의전기획은 VIP 장례의 모든 것을 관장합니다. 장례식뿐 아니라 영결식, 안장식, 추모 영상 기획 등이 포함되지요. 죽음 이전부터 VIP 인생의 전반을 조사하고 공부합니다. 기간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실제로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기업 총수, 대학 총장 등 정·재계 유명 인사들을 대상으로 장례를 기획했다. 경찰청 순직경찰 영결식과 세월호 정부공식 합동분향소 뒤에는 모두 그가 있었다.

아직도 장례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죽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이정훈 대표는 기업들에 제안서를 보내도 수많은 항의를 받아야 했다. 죽음 이전에 장례를 기획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결례로 비쳤다.

“사실 한국 기업 중에 회사장을 치러본 곳은 많지 않아요. VIP들이 이제야 초고령에 접어들었거든요. 중앙의전기획의 존재를 알려야 했기에 먼저 제안서를 보냈어요. 처음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중앙의전기획을 믿고 맡기셨습니다.”

이정훈 대표는 자신의 20대를 “좌충우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수억원에 달하는 부모님의 빚을 떠맡아야 했다. 스물두 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저에게는 목표가 없었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몇 끼 굶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이틀을 굶고 식당에 들어가 남이 먹다 버린 햄버거를 먹은 적도 있어요. 입에 대기 전엔 비참하고 부끄러웠지만, 막상 한입 베어 먹으니 허기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때였어요. 자신감, 자존감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꼈던 게.”

장례기획사를 운영하면서도 고난은 많았지만 20대의 경험은 그 고난을 견뎌내게 하는 밑거름이 돼주었다.

이정훈 대표가 장례업에 뛰어든 건 아버지의 제안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정도 연락이 두절됐던 아버지는 장의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인력이 부족한 아버지를 위해 일을 몇 번 도와드리게 됐고, 마침내 기획사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10년 전 장례 시장은 이미 거대자본의 상조회사들이 선점하고 있었어요. 자본, 인력이 없던 저로서는 도저히 경쟁할 여력이 없었죠. 전문적인 분야를 찾기 시작했어요. 신문을 보다 우연히 부고란을 보게 됐고 기업의 회사장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사업이 순항을 시작하자 그는 최근 새로운 배에 돛을 달았다. ‘작가’ 이정훈호의 출발이다. 지난해 2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가족은 상처를 허락한다》를 공저한 데 이어 얼마 전 단독으로 자기계발서를 발간했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느낌이 있는 책). 책 제목에서 그가 지나온 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패는 가장 확실한 배움의 기회


20대를 혼자 보내야 했던 이정훈 대표에게 책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배고프던 일본 유학시절, 동네 앞 헌책방은 그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글재주가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고(故) 구본형씨의 책을 보는데 ‘매일 두 시간씩 책을 쓴다’고 적혀 있었어요. 자극을 받았습니다. 책 자체가 인생을 정리해줄 계기가 될 것 같았거든요. 출판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인생에서 나만의 책 한 권은 남으니 그 자체로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그는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꿨다. 동이 트기 전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자신의 청춘을 글로 풀기 시작한 것이다. 원고는 석 달 만에 완성됐고, 1년 뒤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차별화’하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 차별화에 대해 다시 고려해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를 모르고서 차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단순한 욕구 차원의 목표와 인생관이 반영된 목표는 달라요.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야 삶의 기준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훈 대표는 유명해지고 싶다고 했다. 이름이 알려지면 자신의 ‘죽음관’을 사회와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웰다잉 교육센터를 설립해 죽음을 테마로 강연하고 있다. 교육센터는 장례문화 체험, 유언장 작성, 자살 예방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죽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시간을 무한한 재화로 여기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니 시간은 모래시계가 되더라고요. 내가 만나는 사람, 관계, 공간이 모두 다르게 보였어요.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문득 이정훈 대표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글을 쓰며 두려움을 극복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제게도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입니다. 늘 이 문제를 고민했고 이제는 책을 읽으며 여백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공감하고 나누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바로 적으며 유서 아닌 유서를 남기는 거예요. 주인공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고요. 그들이 후에 책을 보며 저를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의 책을 찾는 독자들은 대부분 20대의 ‘이정훈’이다. 모두 다른 출발선에 섰고 막 불공평한 레이스를 시작했다. 달리는 도중엔 수십 번의 장애물을 건너야 하고 수백 번 넘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각자의 레이스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숨이 차서 걷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힘. 이정훈 대표는 이를 “재능”이라고 정의했다.

책 속에서 그는 “실패는 시도의 결과일 뿐 성패와는 무관하다”고 언급한다. 천번을 넘어져야 걸음걸이를 배우듯이 우리에게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가장 확실한 배움인 것이다.

불우했던 20대의 레이스를 완주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는 꿈을 찾는 청춘들을 격려했다. 그의 눈이 또 한 번 반짝인다.

“인생은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니라 물음표입니다.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제시해야 해요.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그 물음에 답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길 바랍니다.”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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