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문화해설사로 한일 양국을 잇는 역사가 아라키 준

교토대 사학과 졸업, 한국으로 이주해 ‘일제강점기 경주 사회’ 연구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이 가능하다. 현재 약 60명의 해설사가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아라키 준(49)씨는 유일한 외국인 해설사다. 한국인 못지않은 한국어 실력과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3년째 박물관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촬영협조 : 국립경주박물관
박물관 유물엔 생명력이 없다?

“여러분 신라 역사가 몇 년인지 아세요? 정확하게 1000년에서 8년이 빠지는 역사예요.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천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가 없어요. 게다가 천년 동안 천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죠. 세계사에서 유일한 사례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내에 설치된 반구대암각화 앞에 선 아라키씨. 생활한복을 입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다. 신라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유물인 금관 앞에서 아라키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금관총이 왜 금관총인지 아세요? 금관이 출토된 고분이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똑같이 금관이 출토된 천마총과 달리 누구의 무덤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관이 발견된 과정이 또 재미있어요. 고분 바로 옆에 집이 들어서 있죠? 이곳에서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팠는데 금관이 나온 거예요. 정식 발굴이 아니었기에 주민들과 일본인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어요. 나중에 이뤄진 총독부와 일본 교토대 조사도 졸속으로 이뤄졌고 남겨진 자료가 거의 없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올해 3월 금관총 공식 재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일제의 엉터리 조사 이후 94년 만이다. 우리 문화재와 일제강점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세상에 빛을 보게 된 태생부터 얽혀 있다. 아라키씨의 해설에 일제강점기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무왕의 수중릉 모형 앞에 이르자 그가 어린 관람객을 향해 퀴즈를 낸다.

“문무왕이 어떤 일을 한 왕인지 아나요?”

해설은 어느새 1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초등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삼국통일이요!”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문무왕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해요.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룩했죠. 무엇보다 백성을 생각하는 어진 군주였어요. 수중릉에 대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 되어 왜구의 칩임을 막겠다는 거잖아요. 깊은 뜻은 또 있어요.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죠. 거대한 고분과 화려한 금제 장식들, 이거 다 누가 만든 거겠어요? 백성들의 피땀으로 만든 거잖아요. 문무왕은 죽으면서도 백성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나 죽으면 화장해서 감포 앞바다에 뿌리라고 한 거죠. 문무왕의 이런 통치 철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요.”

아라키씨는 유물을 둘러싼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살아 있는 박물관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유물을 보고 예쁘다, 아름답다고만 느낄 거면 박물관까지 올 것도 없죠. 그런 감상은 집에서 편하게 앉아 책을 보면서 해도 돼요. 박물관에 오면 단지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유물을 둘러싼 그 시대의 모습까지 보는 게 중요하죠. 우리가 왜 역사 공부를 하겠어요? 선인들의 삶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도쿄에서 교토를 거쳐 경주까지


아라키씨는 도쿄 토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쿄를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대학은 일부러 교토로 갔다. 도쿄대와 함께 최고 명문으로 꼽는 교토대 사학과에서 현대사를 전공했다. 졸업 논문은 조선의 미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세계에 알린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해 썼다. 그 자신도 모르게 이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교토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며 그는 일본 고대 도시 나라에 푹 빠졌다. 신라인이 문화를 전파, 아스카문화가 활짝 꽃핀 곳이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도쿄로 돌아왔다. 좋은 회사에 다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이웃나라 한국을 떠올렸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극찬한 미의 나라. 1995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은 활기차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도쿄에 돌아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해가 바뀌기 전에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이번엔 경주다. 신라 천년의 고도, 야나기 무네요시를 사로잡은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밖에 알지 못했을 때다.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경주역에 내렸는데 대기의 냄새가 나라와 똑같은 거예요. 너무 놀랐죠. 두 곳 모두 분지 위에 세워진 도시였는데 도시 구조와 지세, 산세가 비슷했어요. 아! 고대 신라와 나라 사람들이 교류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직감했어요.”

이후 아라키씨는 40번 넘게 경주를 방문했다. 그에게 있어 한국 방문은 곧 경주행이었다. 여행으로는 마지막이 된 경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 나지 않는 어느 고분에 갔을 때였다. 고분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마치 대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사방이 고요했다. 아라키씨는 좀 더 가까이 가서 고분을 보고 싶었다. 고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고분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 다가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환청을 들은 것 같아요. ‘아! 내가 일본 사람이라 그러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멈췄죠. 그리고 그때 결심했어요. 한국에 대해서, 경주에 대한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경주에서 도쿄로 돌아와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운이 좋았는지 마침 도쿄한국문화원에서 직원 채용 공고가 났다. 그렇게 7년을 한국문화원에서 일했다.

한국문화원 직원으로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온 그였지만 경주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한국문화원을 그만뒀다.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사표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어요. 연구 주제는 일제강점기 서경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한 경주의 사회입니다. 한국사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와 마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일제강점기는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시대다. 당시 수많은 상처가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역사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문화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더러운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으로 이 시대를 공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에 자신의 연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박물관 해설사 활동도 이런 차원에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실시한 고적 조사나 근대화 정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는 매주 금요일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에서 많은 청취자들과 만나기도 한다. ‘아라키 준의 경주의 옛 풍경’이라는 코너를 통해 일제강점기 경주 사회와 이에 깊숙이 관여했던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양한 한국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논문을 완성하고 근대 경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생생한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아라키씨가 추천하는 경주 여행 코스


경주 동남산 칠불암과 신선암
일출 때 올라가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운이 좋다면 칠불암 스님들이 친절한 여행 안내자가 되어줄 겁니다.



서남산 삼릉
아침에 찾아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신비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작가 배병우씨의 소나무 숲 사진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입니다. 하지만 이 소나무 숲은 신라시대 때 조성된 게 아니라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겁니다. 여기에는 양반문화, 족보문화가 얽혀 있습니다.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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