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전도사’ 케이팝유나이티드 리처드 주 대표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직접 공연을 유치합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하지영 

에일리의 폭발적인 가창력, 박재범의 현란한 댄스, 산이의 랩이 합쳐지면 어떤 무대가 될까? 이들은 실제로 3월 2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합동공연을 펼친다. 이 공연을 성사시킨 것은 토론토의 케이팝(K-pop) 팬들이다. 이렇게 세계 곳곳의 케이팝 팬들이 스스로 원하는 뮤지션을 선정해 공연을 성사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곳이 있다. 신생기업(start-up)인 케이팝유나이티드다. 케이팝유나이티드(KPOP UNITED)는 최근 국제투자경진대회인 시드스타월드(Seedstars World)에 한국대표로 참가, 4위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케이팝유나이티드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외국에라도 온 듯했다. 사무실 한복판에 탁구대가 놓여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직원들은 영어로 대화하며 일하고 있었다. 미국・캐나다・브라질・이스라엘 등 국적이 다양하다고 한다. 케이팝유나이티드의 대표인 리처드 주 역시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재미교포다.

“부모님이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해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부동산 같은 사업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죠. 열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도왔습니다. 이민 1세대인 아버지보다는 제가 영어를 더 잘했으니까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광고・금융・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고, 소셜미디어 전략에서도 전문가가 됐다. 2006년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위한 커뮤니티 APA를 공동 설립하고 아시아계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공부는 잘하지만 부모가 권장하는 직업이 한정되어 있는 편입니다. 각양각색 롤 모델들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아시아계 친구들과 뜻을 모았죠. 정치인, 배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강연하게 했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의 프로즌 요거트 ‘레드망고’가 미국에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레드망고’의 사업권을 따낸 후 미국시장에 맞게 마케팅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 CBS 방송의 리얼리티쇼 〈서바이버(Survivor)〉에서 우승해 한국에서도 유명한 권율과 함께 노스캘리포니아에서 ‘레드망고’ 사업을 시작했죠. 건강에 좋은 저칼로리 아이스크림에 미국인들이 열광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과 구글, 야후 사옥 등 실리콘밸리 심장에 ‘레드망고’ 가게를 열 수 있었습니다. 미국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실감했죠.”


이때부터 그는 한국과 미국시장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한국기업이나 상품이 어떻게 미국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지 컨설팅을 했고, 우연히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와도 연이 닿아 케이팝의 미국진출도 도왔다. 2011년 11월 미국에서 열린 케이팝 콘서트 〈빌보드 케이팝 마스터즈(Billboard K-pop Masters)〉도 진두지휘했다. 동방신기, 포미닛, 샤이니, 씨스타, 비스트, 브라운아이드걸스, 엠블랙 등 대표적인 케이팝 스타들이 총출동한 무대로, 공연장은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공연했던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Grand Garden Arena)였다.

“관객이 3만 명에 이르는 초대형 공연이었습니다. 이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케이팝 팬 50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등 인종도 문화도 다양했고, 미국의 팝과는 다른 케이팝만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케이팝의 세계화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팬을 위한 그리고 팬에 의한’ 공연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케이팝유나이티드는 3월 2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류스타 (왼쪽부터)박재범, 에일리, 산이의 공연을 성사시킨 시스템을 만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처음 접해보니 진행 방식이 구태의연하고 주먹구구였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막연한 느낌에 의지해 준비하다 보니 도박이 되는 것 같았어요. 금융업에 종사했던 저로서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가 찾은 방법은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이었다.

“누굴 캐스팅할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 없이 공연을 추진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흥행이 보장된다고 최고 스타만을 데려오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섭외도 어렵죠. 그래서 40대인 기획자가 딸이나 조카에게 ‘요즘 누가 인기야?’라고 물어서 후보를 추린 뒤 공연을 추진하는 식이었습니다. 티켓이 잘 팔리지 않으면 적자를 볼 수 있기에 티켓 값을 높이 책정해놓고요.”


각 지역에서 예매율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공연이 성사되는 시스템


그는 그 과정을 뒤집었다. 기획자가 공연을 구상하는 게 아니라 각 도시에 있는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유나이티드(http://kpopunited.org)의 사이트를 통해 ‘우리 도시에서 누가 공연하면 좋은지’ 먼저 투표를 하게 했다. 그리고 팬들의 뜻이 모아진 도시에서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형식으로 티켓 예매를 시작한다. 예매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도시에서는 실제 공연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전액 환불해주는 식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예매하는 팬에게는 할인 등 혜택을 준다. 팬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케이팝 공연이 열리게 하기 위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서로 독려한다.

공연 기획자는 적자를 볼지 모른다는 리스크가 줄고, 팬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싼 티켓으로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케이팝 스타를 만날 수 있다. 팬들 스스로 공연을 유치했다는 자부심도 크다. 설사 공연이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어느 지역에 누구의 팬이 많은지 자료를 확보할 수 있고, 케이팝 팬들끼리의 연대도 커진다. 케이팝이 한때의 열풍으로 사그라지지 않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데 좋은 전략으로 보인다. 6인조 남성그룹 틴 탑(Teen Top)이 2014년 최초로 이렇게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뉴욕・로스앤젤레스・산호세・토론토 등 북미투어 공연을 했다. 이들은 공연 전과 후 팬 미팅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 팬들을 직접 만났다.

“세계의 케이팝 팬들이 주로 인터넷을 통해 뮤직비디오나 동영상으로 케이팝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접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SNS를 적절히 활용한 덕분에 사이트 접속이 급증할 수 있었죠. 미국에 사는 동안 아시아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계 인물만 봐도 알 수 있죠. 이와 함께 아시아 음악, 케이팝에 대한 관심도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케이팝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이고, 케이팝 시장 역시 그렇습니다. 한국 상품, 한국 브랜드가 세계에 진출하는 데도 케이팝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이팝유나이티드는 세계의 케이팝 팬들을 위해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케이팝 공연 보기, 케이팝 스타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레스토랑 찾기, 케이팝 스타들의 에이전시 방문과 케이팝 댄스 배우기 등 팬들을 위해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간단한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 전통음식 시식, 국립박물관과 고궁, 삼청동, 동대문, 가로수길 탐방, 홍대 앞 인디밴드 공연 관람까지 포함시켜 한국문화 전반을 접하게 한다. 벌써 서너 번 계속해서 이 투어에 참여한 팬도 있다고 한다. 리처드 주 대표가 케이팝 전도사가 된 데는 한 케이팝 팬과의 만남도 한몫했다.

“암 환자인 한 미국 소녀가 JYJ 준수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 소녀가 미국에서 열린 JYJ 공연을 관람하고 준수와 따로 만날 수 있도록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후원했죠. 준수를 만난 날이 그 소녀의 열일곱 번째 생일이었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 생일을 맞는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 했습니다. 요즘도 이렇게 절박한 사연을 가진 팬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케이팝 관련 일을 하면서 한국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중국・홍콩・인도 등 해외지사 설립도 서두르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해 케이팝뿐 아니라 아시아 음악을 세계에 소개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신생기업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한다는 그는 “무엇보다 글로벌 비전(Global vision)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실리콘밸리에 비해 서로 담을 쌓고 있는 느낌이에요. 실리콘밸리는 서로 문을 열어놓고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협력하거든요. 그게 실리콘밸리가 가진 경쟁력입니다.”

어릴 적부터 캘리포니아에 살았기에 실리콘밸리 문화에 익숙하다는 그.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의 신생기업들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데도 견인차 역할을 할 것 같다.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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