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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보석’을 만드는 초콜릿 아티스트

직업의 세계 / 쇼콜라티에

달콤하고 찐득한 초콜릿 강이 흐르고 초콜릿 열매가 열린다.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를 원작으로 한 조니 뎁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윙카의 초콜릿 공장 모습이다. 달콤한 향이 진동할 것 같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초콜릿의 달콤함’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쇼콜라티에(chocolatier)’다. 쇼콜라티에는 초콜릿의 프랑스어인 쇼콜라(chocolat)에서 파생된 용어로 영어로는 초콜릿 아티스트(chocolate Artist)라고 불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초콜릿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하는 작업을 하는 이를 말한다.

유럽에서는 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좋은 초콜릿을 가지고 다양한 재료와 섞어서 초콜릿 봉봉(chocolate bonbon, 초콜릿 과자) 등을 만들며 수제로 리얼 초콜릿을 다룰 줄 아는 기술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쇼콜라티에로는 고영주·김성미·고은수·루이강 등이 있다.

세계적으로 쇼콜라티에만을 양성하는 정규 교육기관은 없다. 국가 공인 자격증도 없다.

벨기에에서는 ‘칼리바트 인스티튜트’라는 초콜릿 제조 판매회사에서 주는 자격증이, 프랑스에는 INBP(프랑스 국립제과제빵학교)에서 수여하는 쇼콜라티에-컨피셔(Chocolatier-Confiseur) 자격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음식문화교류협회가 주는 ‘초콜릿 마스터’, (주)쇼콜라티에코리아가 주는 ‘쇼콜라티에 자격증’이라는 민간 자격증이 있다.

쇼콜라티에 과정을 가르치는 전문학교가 없기 때문에 초콜릿을 다루는 제과기업이나 호텔의 디저트 부문에서 근무하며 배울 수 있다. 제과제빵 학과나 조리학과 같은 대학 학과에 입학하거나 전문 초콜릿 공방에서 수업을 들으며 배울 수도 있다. 외국에서도 유명한 쇼콜라티에 밑에서 도제 수업으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콜릿은 제조한 국가별 특성을 지닌다. 먼저 프랄린 초콜릿(견과류·술·버터 등으로 속을 채운 벨기에식 초콜릿)의 원조인 벨기에는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운 트러플 스타일이 유명하다. 초콜릿 자체의 깊은 맛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재료의 풍부한 맛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프랑스는 똑 떨어지는 정적인 모양과 카카오 함유 비율이 높은 씁쓸한 맛의 스타일이다. 스위스는 낙농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밀크 초콜릿의 고향으로 불린다. 이 중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을 찾아 그에 맞춰 유학을 가거나, 그 스타일을 고수하는 국내 쇼콜라티에를 찾아가 배우는 방법이 있다. 교육을 받은 후에는 초콜릿 회사나 호텔에 취직할 수 있고, 개인 공방을 열거나 디저트 카페를 창업할 수도 있다.

초콜릿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콜릿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3년간 초콜릿 시장 매출 규모는 2009년 1276억원, 2010년 1459억원, 2011년 1720억원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성장하는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의 전망은 어둡지 않다.



쇼콜라티에 고영주

초콜릿으로 행복을 전한다

〈topclass〉는 2003년 서울 서교동 초콜릿 전문가게 ‘카카오봄’을 오픈한 고영주 대표를 2호점인 삼청동에서 만났다. 그는 《초콜릿 수첩》 《초콜릿 학교》 《리얼 초콜릿》 등 초콜릿과 관련한 책을 썼으며, 벨기에 초콜릿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기술을 전파한 쇼콜라티에 1세대다. 그는 “질 좋은 초콜릿과 함께 초콜릿을 즐기는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초콜릿과의 만남
1994년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간 벨기에에서 초콜릿의 매력에 빠졌다. 벨기에는 초콜릿이 유명한 나라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자랑하는 고디바·길리안·노이하우스 모두 벨기에의 초콜릿이다. 그중에서도 벨기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프랄린 초콜릿이다. 달콤한 맛은 물론이고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모양으로 사람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벨기에 초콜릿은 한국에서 먹어본 초콜릿과는 맛 자체가 달랐다. 맛도 흥미로웠지만, 벨기에 사람들이 초콜릿을 즐기고 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들에게는 초콜릿이 일상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한 초콜릿을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초콜릿 장인이 만든 유명하고 비싼 초콜릿을 선물했다. 아이가 태어나도 초콜릿 꾸러미를 나눠주고,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할 때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티타임에도 항상 초콜릿이 있었다. 마치 초콜릿이 그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단순히 초콜릿의 맛에만 매료되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초콜릿을 다루진 못했을 것이다. 초콜릿의 맛과 더불어 초콜릿을 즐기는 벨기에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매료되었기에 그 매개체인 초콜릿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쇼콜라티에’가 되다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벨기에에 도착해서는 한국학교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초콜릿의 매력에 빠진 후 벨기에의 PIVA호텔학교에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콜릿 전문 교육과정이 있는 학교다. 이곳에서 초콜릿 전문 1년 과정을 수료하며 쇼콜라티에로 발돋움했다. 그 후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베이커리에서 초콜릿 전문가로 활동했다. 호텔에서 일하다 보니 특정 사람들을 위해서만 초콜릿을 만드는 게 아쉬웠다. 많은 사람이 초콜릿을 즐기게 하고 싶었고, 내가 배운 기술을 가르쳐서 수제 초콜릿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2003년 ‘카카오봄’을 열었다. 당시에는 쇼콜라티에가 지금보다 덜 알려진 직업이었기에 주변의 반응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본 적 없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뭐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점차 시장이 커지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과학과 감각이 이루는 하모니
초콜릿은 과학적이고 예민한 재료다. 초콜릿을 구성하는 한 요소인 카카오 버터는 온도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는 다형질 분자다. 그 분자를 단단하고 바삭하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구조로 만든 후 작업을 해야 한다. 온도에 예민하므로 세심한 작업을 하면서도 손이 빨라야 한다. 이런 테크닉과 함께 더 좋은 맛으로 창조해낼 수 있는 창의성과 감각까지 필요하다. 한마디로 쇼콜라티에는 과학적이면서 감각적인 상반된 두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쇼콜라티에가 되기 전 나는 철두철미하다기 보다 감각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하고 원리원칙에 맞게 초콜릿을 만든다. 초콜릿이 아닌 다른 일에는 더 덤벙거리게 됐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웃음).


‘실키봄’의 탄생
‘실키봄’은 ‘카카오봄’만의 시그너처 메뉴다. 카카오봄의 모든 제품은 100% 카카오 버터로 만든 진짜 초콜릿을 사용한다. 방부제와 색소 등 인공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벨기에 전통 수제 초콜릿 기술로 매장의 아틀리에에서 모두 수작업을 한다. 그중 ‘실키봄’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의 독창적인 레시피다. 호텔에서 근무할 때 상사가 일본 잡지에 나온 생 초콜릿 사진을 주면서 그대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일본어를 모르니 어떤 재료를 썼는지 알 수 없었다. 모양만 보고 맛을 상상하며 이것저것 블렌딩해서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 초콜릿이 바로 ‘실키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잡지에 나온 사진은 전혀 다른 재료로 만든 생 초콜릿이었다. 겉모습은 일반적인 생 초콜릿과 비슷하지만 입에 넣는 순간 완전히 다른 맛이 느껴진다. 호텔에서 나오면서 블렌딩과 재료를 바꿔 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이제 ‘실키봄’은 ‘카카오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쇼콜라티에의 상상력이 전혀 새로운 맛의 초콜릿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장인정신
‘카카오봄’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내게 자식이나 다름없다. 한 가지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바라만 봐도 세세하게 떠오른다. 핫초코 한 잔을 만들기 위해서도 몇 백 잔을 마시고, 버리고, 주변에 수백 번 물어봐야 탄생한다. 쇼콜라티에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곰처럼 우직하게 초콜릿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든 초콜릿을 손님이 한 조각 베어 물고 “어떻게 이런 맛이 있지”라며 행복해할 때 쇼콜라티에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와 초콜릿 향을 맡고 초콜릿을 보며 씩 웃을 때도 보람을 느낀다. 쇼콜라티에가 만든 결과물은 항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자신에게 선물하거나 사람들은 주로 초콜릿을 선물의 의미로 건넨다. 받는 사람이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하며 초콜릿을 고르니 그 모습 역시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든 초콜릿이 행복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니 쇼콜라티에는 행복을 전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초콜릿 향 가득한 구멍가게
유럽에 한 팬케이크 가게가 있다. 80년도 더 된 가게인데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손녀딸이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서빙을 하고 있다. 보드라운 팬케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가게가 꿈이다. 맨 처음 벨기에에서 초콜릿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할머니가 되어서도 초콜릿을 만드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떠오른 모습은 꿈이 되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어서도 초콜릿을 만들고, 작은 구멍가게에서 내가 만든 초콜릿을 팔고 싶다. 많은 양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상자에 한 알, 두 알 초콜릿을 사가는 손님들이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하는 구멍가게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벨기에 사람들은 유명한 장인의 초콜릿을 두 알 선물 받고는 굉장히 행복해한다. 초콜릿을 장인이 세공해준 ‘달콤한 보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어 오랜 시간 ‘카카오봄’에서 사람들에게 ‘달콤한 보석’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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