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병’ 딸에게 주는 편지 쓴 시인 서효인

괜찮아 사랑이야, 그러니까 잘 왔어 우리 딸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시청률이 절대반지인 예능계에서 요즘 대세인 프로그램은 <슈퍼맨이 돌아왔다>(KBS)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만난 아빠가 파이터(추성훈)이기도 하고, 개그맨(이휘재)이기도 하고, 가수(타블로)이기도 하다. 유명한 아빠건 무명한(?) 아빠건 이들의 공통점은 비록 서툴지언정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는 것이다. 그 당연한 진실이 퍽 감동적이라 많은 이들이 TV 앞으로 모여든다.
만약 태어났는데 아빠가 시인이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그 아이는 글을 읽기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절절한 러브레터를 받게 될 것이다. 서효인 시인의 딸 은재처럼.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은 첫딸 은재가 뱃속에 콩만 하게 자리 잡았을 때부터 아빠가 기록한 사랑의 말들이다.

사진제공 : 서효인
염색체가 하나 더 많아 더 예쁜 아이, 은재

1981년생 서효인 시인은 지금까지 시집 두 권과 산문집 두 권을 냈다. 두 해에 걸쳐 시집 《소년 파르티잔의 행동 지침》(2010),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2011)을 냈고, 뒤이어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2011), 《잘 왔어 우리 딸》(2014)을 펴냈다. 시집과 산문집을 공평하게 낸 셈인데, 두 글을 읽어보면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서효인 시인은 “아마 시를 쓸 때의 나와 산문을 쓸 때의 자신이 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시를 쓸 때는 좀 날이 서 있어요. 산문의 경우에는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쓰게 되는데 시는 그렇지 않아요. 책상에 앉아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고, 완결 짓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산문은 제가 말을 거는 느낌이고, 더 많은 사람이 들어줬으면 싶어요. 시는 저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에요. 읽는 분들이 그 메시지를 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럼에도 시와 산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시선이 있다. 메이저리그에 포함되지 못한 마이너에 대한 응시. 실제로 그가 시집 제목으로 쓴 ‘파르티잔’은 유격전에서 각개전투를 펴는 비정규군을 뜻한다. 학교로 보자면 우등생이 아닌 아이들, 야구로 치자면 1군이 아닌 선수들, 직업의 세계에서 보자면 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글에서는 주인공이다.

“야구에 대한 글이라고 해도 시인이 글을 쓴다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쓰려는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건데 물론 저도 평소에는 스타에게 관심이 가죠. 하지만 글을 쓰는 저는 마땅히 달라야 하니까. 그런 시선으로 보려고 하죠. 시집에선 더 두드러지는데 개개인이 파르티잔처럼 삶과 사회에서 각개전투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거의 다 져요. 두 권의 시집은 어떻게 하면 멋지게 질 수 있을까를 연구한 셈이죠.”


다운증후군의 다른 이름은 ‘천사병’이래요

이번 책 《잘 왔어 우리 딸》에 이르면 그가 시인인가 산문가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한 남자가 어떻게 아빠가 되어가는가’만 남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난 아이, 이 아이가 세상에 찾아온 뒤 아빠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시인은 매일매일 기록했다고 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로 오려고”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던 시인은 나지막히 말을 건다. “무섭지 않았니?”

그는 “생활인으로서의 나와 글을 쓰는 나 속에는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삶의 일관성 안에 제가 쓰는 작품도 있으니까요. 시인이기 때문에 생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적인 결과물을 위해서 삶을 포기하기보다 지속적인 삶 속에서 작품도 탄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잘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밤에 아이가 잠든 뒤 10~11시부터 두어 시간 동안 글을 썼다. 마감을 정해두고 약속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둘째를 낳고서는 마감을 지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 은유를 키워보니, 첫째 은재가 정말로 순했다는 걸 새삼 알았다. 그래서 다운증후군을 다른 말로 ‘천사병’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은재는 잘 울지 않았고, 대신 잘 웃었다.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많아, 은재와 장난을 치며 보내는 시간을 퍽 즐거워했다.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하다’는 거예요. 모두 특별하기 때문에 전부 평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평범함과 특별함의 경계가 아이러니하잖아요. 사람들이 만들어낸 평범한 삶, 전형적인 삶을 장난스럽게 꼬집고 드러내고 다시 보고 하는 작업을 글로 해보고 싶어요. 영화나 드라마가 하지 못하는 일을 글을 통해 한번 해보고 싶었죠.”

《잘 왔어 우리 딸》을 읽다 보면 은재가 자라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큰 수술을 이겨내고 집으로 퇴원하는 은재, 처음으로 제 힘으로 엄마 젖을 빨게 된 은재, 집에 놀러 온 고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은재….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에요. 특히 어떤 장면을 잘 기억해요. 암기과목도 굉장히 잘했어요(웃음). 어렸을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대부분 기억하는 편이에요. 저는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일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대책없이 낙천적인 편인가 싶긴 하지만요.”


아이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수퍼맨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낙천적인 시인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아픈 아이의 자세와 걸음마, 언어와 인지를 도와주는 병원은 서울에 하나밖에 없지만 멀쩡한 어른의 다이어트, 오뚝한 코, 눈 밑 애굣살을 위한 병원은 많다”는 현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아이는 결국 다 해내는데, 단지 생김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내리꽂히는 시선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늘 순하게 웃는 은재는 아빠로 하여금 자꾸만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게 해준다. 골수 야구팬답게 언젠가 은재가 자라면 ‘시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두 딸과 나란히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서 기아 타이거즈 경기도 관람하고 싶다.


“둘째의 이름은 ‘사랑 은’ ‘넉넉할 유’, 은유예요. 부모로선 최대한 안 그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가 자라면서 (언니에게) 좀 나눠주며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려면 넉넉해야지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두 아이가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둘째를 낳고 육아가 두 배는 힘들어졌다는 아빠 서효인은 조그만 종이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딸아이들에게 선물할 티셔츠였는데, 하나에는 기린이, 또 하나에는 다람쥐가 그려져 있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수퍼맨이다. 오늘 만난 은재와 은유 아빠는 조금 더 아름다운 수퍼맨이었다.
  • 2014년 10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