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흙처럼 아쉬람’ 고제순 박사

흙집 짓고 행복 전파하는 철학자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3리, 백운산 자락에 각양각색의 흙집들이 들어서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작은 움막 같은 집이 있는가 하면, 너와로 지붕을 얹은 집, 2층 집도 있다. 독을 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생명 에너지를 품고 있는 흙으로 직접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흙집학교가 있는 ‘흙처럼 아쉬람’이다.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거처하는 작은 움막을 의미하는 인도말. ‘흙처럼 아쉬람’을 만든 철학박사 고제순씨는 “몸도 마음도 영혼도 지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몸의 평안과 마음의 평화, 영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아쉬람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한다.


2004년부터 흙집학교 운영
올 7월 ‘힐링스테이’ 프로그램 시작



2004년 1주일 과정의 흙집학교를 시작한 이래 이곳을 거친 수료생은 1700명 정도. 그중에는 직접 흙집을 지은 사람도 있지만, “흙집에서 자고, 함께 흙을 만지며 땀 흘리고 삶을 나눈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흙처럼 아쉬람’은 올해 7월부터 ‘힐링 스테이’ 프로그램을 시작해 흙집학교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이곳에서 숙식하며 흙집을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행복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건강에 좋은 흙집을 짓고 산다 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갈등하고 싸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혹은 외부 강의 때 ‘지금 행복하게 사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질문하면 10%가 안 돼요. 주변을 한번 돌아보세요. 정말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는 행복의 키워드로 7가지를 꼽았다. 건강한 삶, 풍요로운 삶, 사랑이 넘치는 삶, 평화로운 삶, 자유로운 삶, 조화로운 삶, 감사하는 삶이다. 모두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만, 진정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힐링 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행복을 전파하는 ‘행복 짓기’ 프로그램을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2000년 이곳으로 귀농하기 전까지는 저 역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5년 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제 나름대로 터득한 길이라고 할까요? 7가지 행복을 누리는 비결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산을 오르는 데 여러 가지 루트가 있듯이 행복에 이르는 데도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중 제가 경험한 한 가지 길을 알려드리는 거지요.”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매진하던 그 길에서 그는 ‘지금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우선 건강이 엉망이었습니다. 만성피로증후군에 천식, 아토피를 달고 살았죠. 정신노동에 종사하면서 머리로만 살아가는 기형적인 삶이었으니까요. 앎과 행위, 이론과 실천, 이상과 현실이 분리된 모순적인, 자기분열적인 삶이었죠.”

그때 일본인이 쓴 《콘크리트 주택에서는 9년 일찍 죽는다》는 책을 접했다.

“대부분 사람들의 결혼 후 목표 1순위가 ‘내 집 마련’ 아닙니까? 이것을 위해 맞벌이를 하고, 가고 싶은 여행도 참고, 외식도 줄이죠. 그것으로도 모자라 은행 대출까지 받아 장만하는 집이 대개 콘크리트 아파트입니다.


저 역시 그랬죠.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그때부터 아토피와 만성피로에 시달렸습니다. 신축 아파트라 콘크리트 독이 더욱더 뿜어져 나왔겠지요. 어렵게 돈을 모아 내 가족의 건강을 병들게 하는 집에 들어와 산다는 것을 알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곳을 탈출하지 않으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건강에 좋은 집을 직접 짓기 위해 통나무학교에서 집짓기를 배우다 한국 전통가옥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책이든 논문이든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가족여행 겸 흙집투어를 하기 시작했다.

“낙안읍성, 안동하회마을, 사찰 등에서 묵으며 전통 흙집의 장점을 체험하고 안목도 넓혔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의기투합해 귀농을 단행했죠.”


‘생명 사랑이 진짜 철학’


그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산골로 들어온 아내의 동의와 협조가 없었다면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내가 결혼을 잘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백운산이 뒤에서 감싸 안고 있는 곳을 집터로 정한 후 그는 일곱 여덟 번 설계를 바꿔가며 집을 지었다. 그가 지은 첫 번째 흙집이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벽난로와 구들 침대. 바깥 아궁이를 실내로 들여 벽난로 형태로 만들고, 벽난로에 장작을 때면 그 열기가 구들 침대를 통과해 굴뚝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제가 만드는 흙집의 백미는 흙으로 된 벽난로입니다.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고, 실내를 훈훈하게 만드는 데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듣기 좋지요. 불을 다 때고 나면 석쇠를 올려 꽁치나 양미리, 삼겹살을 구워 먹는 맛이 기막힙니다. 아이들을 위해 다락방도 만들었죠.”

살림집 옆에는 원형의 흙집을 지어 서재로 썼다. 에너지가 모인다는 팔각천장 아래 원형 방에 앉아 있으면 창을 통해 사방으로 자연 풍경이 들어온다. 이 가족은 두 딸이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때 산으로 들어왔다. 남들은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나갈 때 이들은 시골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들어오려고 더욱 서둘렀다”고 말한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았다. 그는 “사교육비만 안 들이면 시골에서는 돈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지천에 산나물이 널려 있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면 되니까요”라고 말한다. 그가 집 옆 뽕나무에서 오디를 한 주먹 따서 건네는데, 달짝지근한 게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맛이었다.

“이곳에서 산 후 병원이나 약국 신세를 진 적이 없어요. 흙의 좋은 기운을 받으며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먹으며 사니 건강해지는 게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걸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던 차에 2004년 두 딸이 다음카페를 개설해주면서 흙집학교를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죠.”


그가 그동안 이리저리 실험을 거듭하면서 지은 흙집이 20여 동.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하나도 같은 집이 없다고 한다. 흙으로 2층 집도 지었다는 그는 “아파트에도 흙집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흙집학교 학생들에게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작은 황토방이라도 지어보라”고 권한다. 황토방을 지어 찜질을 하면서 유방암이 완치되었다는 수료생도 있다.

2006년에는 흙집 짓기의 노하우를 담은 책 《일주일 만에 흙집 짓기》를 펴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10년간 흙집학교를 운영하면서 그에게는 전국 곳곳에 제자가 생겼다.

“지난 4월에는 선장을 하시는 수료생의 초청으로 가파도를 찾았습니다. 청보리 축제를 보러 오라고 몇 번씩 전화하셔서 3박4일간 방문했죠. 흙집을 지을 터도 보여주셨는데, 풍광이 아주 좋더라고요. 전국 곳곳에 수료생이 있어 가는 곳마다 반겨주니 그것도 행복입니다.”

그는 산골로 들어온 후 비로소 제대로 철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계속 대학에 있었다면 이런 길을 깨닫지도, 이런 삶을 누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론적, 형이상학적, 관념적인 강단철학은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반쪽짜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후설과 칼 포퍼를 연구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게 ‘그들이 생각하는 철학이란 무엇일까’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란 결론을 내렸죠. 그런 점에서 지금의 제가 진짜 철학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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