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아침’ 만든 조수리 청년회

조용한 시골 마을을 깨운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뒤 생기는 농촌 마을의 고령화・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 대부분이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도 여느 농촌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시내로 집을 옮겼고, 중고교 시절부터 외지에 나가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청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들은 해가 뜨면 이른 아침을 먹고 들로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잠들었다. 변변한 문화시설도, 즐길거리도 없는 시골마을은 저녁이면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마을이 최근 몇 년 새 크게 달라졌다. 주민들은 자주 게이트볼 장에 모여 친목과 건강을 다진다.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연주하는 미니콘서트가 열리는 날엔 온 마을이 음악 소리에 젖는다. 주민들은 농사 이외에 다른 취미를 갖게 되었고, 이들이 만드는 웃음소리와 함성 덕분에 마을에도 활기가 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마을 청년회다. 40대가 주축이 된 청년회원들은 마을을 바꾸기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농수산대 1기 졸업생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10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김승룡 청년회장은 “몇몇 청년들이 ‘농사일 외에는 아무런 문화도, 여가 생활도 없는 이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우리가 한번 새로운 농촌문화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한동네에서 함께 자라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청년회원들은 마을을 위한 일에 모두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마을에 게이트볼 장을 조성하고, 걷기 모임을 만드는 등 체육 동호회를 활성화시켰다. 문화와는 거리가 먼 주민들을 위해 음악회를 기획해 청년회원들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주민들에게 농산물을 기증받아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사업도 벌였다. ‘천원의 행복’이라고 이름 붙인 무인 가판점 두 곳을 만들어 크기가 작거나 흠집이 있는 귤·한라봉 등을 판매했다.


한 봉에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아침에 물건을 갖다 놓으면 오후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조수리 인근 올레 13코스가 끝나는 사거리에 마련한 무인 카페 ‘행복 쉼팡’에서는 따뜻한 차와 함께 주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이들이 무인 직거래 장터에서 얻은 수익금은 429만원, 약속대로 전액을 마을 내 소년·소녀가장과 소외계층을 돕는 데 사용했다.

자신감을 얻은 회원들은 최근 ‘농부의 아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좀 더 확장된 형태의 농산물 직거래 판매장을 열었다.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향토자료전시관’도 마련했다. 마을 부지에 자리를 마련해 땅을 고르는 작업에서부터 판매대 제작까지 모두 회원들의 손을 거쳤다. 그날그날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들여와 제품을 소분해 매대에 진열하는 것도 회원들의 몫이다.


“저희 청년회는 마을을 위한 마음 하나로 뭉친 자발적인 봉사단체입니다. 보수가 없고, 또 각자 생업이 있는데도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힘을 보태죠. 외부에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순전히 저희들의 힘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재능기부 형태예요. ‘농부의 아침’을 만들 때도 포클레인을 가지고 있는 회원이 자기 장비를 가져와 땅을 다지고, 저희 마을로 귀농해 청년회에 가입한 회원 중에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있어서 디자인 작업을 맡아주었어요. 향토자료전시관은 제주 전통 초가를 재현한 것인데, 그때는 마을 어르신들의 손을 빌렸죠. 육지에서는 짚으로 새끼를 꼬아 지붕을 올리지만 여기서는 억새로 만듭니다. 그런 노하우를 젊은 사람들은 잘 몰라요.

향토자료전시관 같은 경우는 신·구 세대가 자연스럽게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어르신들은 자신이 쓰던 옛 물건들을 흔쾌히 내놓으셨죠. 지금 여기 있는 물품들은 전량 조수리 주민들의 기증품입니다.”


농부의 아침이 만들어진 지 이제 두 달째, 김 회장은 “수입을 정산해보지는 않았지만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무인 판매다. 모두 가격표가 붙어 있어 물건을 고르고 우편함처럼 생긴 현금함에 돈을 넣으면 된다. 진열된 농산물은 회원들이 직접 재배하고 갓 수확한 것들이라 한결같이 싱싱했다. 절반 이상이 무농약 제품이고, 가격도 대부분 1000~2000원이라 매력적이다. 김 회장은 “채소가 떨어졌을 때 밑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면 얼른 뽑아다 채워놓기 때문에 신선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요즘은 관광객들도 들러 과일을 사 간다고 한다. 청년회는 앞으로 농부의 아침을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로컬 푸드 전문 판매장’으로 키울 계획이다.

“무인 판매에 대한 고민은 없었는지” 묻자 김 회장은 “당연히 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양심을 믿어보자는 의견이 많았다”며 “무인 판매대의 경우 판매 수량과 금액이 맞지 않을 때도 종종 있지만 반대로 금액이 더 많이 들어 있는 날도 있어 희망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마을의 변화가 알려지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들도 늘었다. 초창기만 해도 15명 정도이던 회원은 지금 35명에 이른다. 그중 3분의 1은 외지에서 온 귀농자다. 청년회에서는 귀농자들이 이주 전 제주 농촌 생활을 충분히 경험해보고 결정할 수 있도록 ‘조수리의 아침’이라는 장기 민박도 운영하고 있다.

청년회 부인들은 별도로 조직한 ‘비타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남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청년회와 비타민은 조수리를 살리고, 활기를 불어넣는 두 축이다. 조수리 주민들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올라 마을이 변질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문화가 있고,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풍요로운 삶은 돈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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