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에서 맥줏집 주인으로
변신한 영국인 대니얼 튜더

과잉경쟁과 분열, 안타까운 면도 있지만 저는 따뜻한 한국이 좋아요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옥스퍼드대 학사, 맨체스터대 MBA,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누가 봐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가 지난 5월 직장을 그만두고 이태원 경리단길에 수제 맥줏집 ‘더부스(The Booth)’를 차렸다.
지난해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는” 현실을 개탄하다 직접 맥줏집을 차린 것이다.
월요일 오후 5시,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밖은 어두웠고, 아직 퇴근시간도 아닌데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더부스는 예상과 다른 그림이었다. 가게 바로 옆에는 구멍가게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고, 맞은편 생선가게에는 활어가 꿈틀대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린 ‘외국인이 차린 수제 맥줏집’ 그림과는 딴판이었다.

“캐주얼한 분위기죠.”

대니얼 튜더는 가게 분위기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외국에서 온 것’이면 모두 화려하고 번쩍일 줄 알았느냐고 묻는 눈치다.

가게 내부는 넓지 않고 투박했다. 멋스러운 가구 대신 드럼통과 샌드위치 패널이 각각 탁자와 의자 역할을 했고, 벽에는 미키마우스, 스파이더맨, 요다 등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그가 추구하는 문화를 잘 보여주는 인테리어였다.

“경리단길은 한국과 외국의 서민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구멍가게나 생선가게도 제 눈엔 매력적이죠. 아저씨 아주머니와 사이도 좋고.”

영국문화의 중심은 펍(pub)이다. 그저 술집으로 치부하기에는 펍이 지닌 의미는 매우 크다. 계층구분이 뚜렷한 영국사회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펍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추구하는 맥주문화는 그런 것이다. 누구나 들어와서 술 한잔 함께할 수 있는 곳.

“더부스는 누구든 어울릴 수 있는 곳입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월급쟁이부터 강남 스타일, 홍대 멋쟁이, 비주류를 자처하는 사람 등 모두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을 생각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더부스의 주 메뉴는 빌스페일에일(Bill’s Pale Ale)이다.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크게 라거(larger)와 에일로 나뉜다. 청량감을 주는 라거와 달리 에일은 깊은 향과 진한 맛을 낸다. 대부분 라거인 한국맥주에 익숙한 사람은 ‘쓴맛’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처음 온 손님의 50~60%는 쓰다고 싫어해요. 하지만 두세 번 오면 반하게 돼요. 마치 김치처럼요. 중독되는 거죠.”

영국인인 그는 물론 동업을 하는 투자분석가 양성후, 한의사 김희윤도 페일에일을 좋아해서 메뉴로 정했다. 시장분석은 없었다. 그런데 대박이 났다. 1호점을 낸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강남에 2호점을 냈다. 뒤이어 방배, 해운대, 이태원에 3, 4, 5호점이 차례로 들어설 예정이다.

“사실 취미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오픈 날 북적북적 사람이 많아서 와우, 놀랐죠. 매달 매출액이 찍히는데 못 믿겠더라고요. 취미가 이제 비즈니스가 됐죠.”

그는 이미 변화의 조짐을 감지하고 있다. 기사에서 한국맥주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던 게 촉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더부스를 포함한 여러 수제 맥줏집들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고,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에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내년부터 주세법이 완화되면 누구나 손쉽게 수제 맥줏집을 차릴 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집중력이 강하잖아요. 뭐 하나가 나오면 열정적으로 파죠. 그래서 에일도 금방 퍼진 것 같아요.”

하지만 정작 그는 인터뷰 내내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지방간 때문에 3~4개월간 금주해야 한다”며 울상을 짓는다. 하지만 이내 “빨리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굳은 결심을 내비친다. 그의 맥주사랑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글쟁이다. 〈이코노미스트〉를 퇴직한 후에도 꾸준히 칼럼을 쓰며 펜을 놓지 않고 있다. 정치부터 경제・사회・문화까지 칼럼 주제의 스펙트럼도 넓다. 올해 7월 발간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그는 대한민국을 따뜻하지만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기적에 가까운 성장과 그 이면의 아픔. 그는 박원순 시장, 배우 최민식부터 평범한 월급쟁이, 주부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인 못지않게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는 아주 좋은 직업이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요. 대통령부터 상인, 택시기사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한국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고요. 그리고 음… 한국은 분열된 사회잖아요.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 나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남녀, 종교 등 갈등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대부분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제3자니까 편견 없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애정이 큰 만큼 안타까움도 컸던 모양이다. 인터뷰 주제가 한국으로 넘어가자 그는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특유의 경쟁문화를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성공에 대해 굉장히 좁은 이상을 가지고 있어요. SKY 들어가고, 영어 잘하고, 강남 아파트에 살고, ‘사’자 직업을 갖거나 대기업에 다니고. 근데 다 그렇게 살 순 없잖아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보람을 느끼는지가 중요하죠.”

그는 한국사회가 성공이라 부르는 탄탄대로에서 약간 비껴난 길을 걷고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지도, 돈을 많이 벌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지금이 행복하다. 맥줏집을 운영하고 글을 쓰는 지금이 감사하다.

“하지만 저는 한국이 좋아요. 무기한 있을 예정이에요. 영국은 설명하긴 어렵지만 차가워요. 그렇다고 조국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따뜻한 사람들과 살고 싶었어요. 한국은 따뜻한 나라입니다.”

그는 꿈이 많다. 새로운 창업을 시도해보고 싶고,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을 주제로 영문소설도 쓰고 싶다. 자살예방 캠페인이나 연구소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당분간은 맥주문화에 더 신경 쓸 생각이다.

“여기서 파는 맥주는 외국맥주가 아니라 ‘한국맥주’예요. 한국 양조장에서 만들고 한국 가게에서 파는.”

어느새 비가 그치고 어둠이 스며든 경리단길. 더부스가 환하게 골목을 밝히고 있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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