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 전공한 외국인 박사 니콜라 프라스키니

“한국어 배우기의 어려움, 누구보다 잘 알지요”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니콜라 프라스키니 박사는 이탈리아인이다. 베네치아대 아시아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언어 연수 장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한류’ 바람은 전 세계로 퍼져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국내 한국어 교육기관을 찾는 외국인의 수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니콜라 프라스키니 박사도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의 경우 작년 여름에 가장 많은 학생이 몰려 방학기간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수업을 들어 놀랐다”며, “한국어의 인기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제가 처음 한국어를 접한 게 대학교 2학년 때인 2002년이었어요. 일본어에 관심이 있어 아시아언어학과에 입학했는데 부전공으로 한국어를 선택했죠. 당시 베네치아에는 한국 식당이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도 찾기 힘들 정도로 한국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어요. 아시아언어학과도 사실상 일본어 교육 위주로 되어 있었고요. 부전공이라도 비중이 크지 않아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도 이탈리아인 선생님 한 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교수 둘, 한국인 강사 둘에 객원교수까지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수도 늘었고, 대학원 과정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제가 다닐 때는 학부생 전체를 통틀어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20명도 채 안 됐거든요. 프랑스 몇몇 대학은 이미 한국어 전공 학생이 일본어 전공 학생 수를 추월했다고 해요. 불과 10년 새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재작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 한국학회 학술대회도 유럽 전역에서 모인 한국학자들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100명이 넘는 연구자가 3일간 발표를 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며, “한국어 교육보다 ‘한국사’ ‘한국과 국제 관계’ 등의 연구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연구가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당초 일본어를 전공한 그가 한국어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보낸 두 달간의 언어 연수 때문이었다.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당시 호흡기 관련 전염병인 사스가 중국 전역을 강타해 중국인 학생들의 일본 내 입국이 어려워졌는데, 어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외국인 친구들이 전원 한국인이었던 것. 그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늘었고, 졸업 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언어 연수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 왔다.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운 그는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석사 과정만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한국어에 푹 빠져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 작년 2월 ‘비원어민 교사의 정체성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 자리를 잡았다. 올 2월에는 고려대가 주는 월암학술상도 받았다. 월암학술상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50대의 국문과 졸업생이 재학 시절 스승인 월암 박성의 교수(1917~1979)의 뜻을 기리고 싶다며 1억원을 기부해 제정한 상으로, 국문학이나 한국사·한국철학 등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 학자에게 주어진다. 그는 이 상의 1회 수상자가 되었다.


해외에 한국어와 한국학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


그는 이번 학기에 초급반 학생들을 가르친다. 오전·오후반에는 중국인이 가장 많고, 일본인이 그 뒤를 잇는다. 저녁반인 ‘직장인 정규반’에는 취업 비자나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는 서양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인·일본인 학생들은 한국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경우가 많고, 저녁 수업을 듣는 직장인은 대부분 원어민 영어 강사나 영어 관련 교재 편집자들로 일상생활을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한다.

학생들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는 한편,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놀란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한국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냥 무식하게 해야 한다”고 답한다.

“중국인・일본인들은 초급 단계에서는 비교적 빨리 습득하는 편이에요. 그러나 어족이 완전히 다른 미국, 유럽인들에게 한국어는 생소한 언어죠. 그냥 외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특히 어려워하는 것이 불규칙동사고, 주격 조사 이·가와 목적격 조사 을·를도 무척 헷갈려 해요. 저도 다 겪은 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무엇을 힘들어하고 답답해하는지를 잘 알지요. 너무 어렵다고 좌절하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해보니 좀 오래 걸려서 그렇지 다 된다’고 용기를 줍니다. 저는 그 나라 말을 반드시 원어민에게 배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토플이나 토익 공부할 때 한국인에게 배우는 것처럼요.”

그는 자신이 비원어민 한국어 교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외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비원어민 교사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비원어민 한국어 교사’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종학당 같은 곳에서 한국어 교사를 파견해주고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지금,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인 교사와 비원어민 교사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에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칠 계획이 있는지 묻자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은 전혀 갈 생각이 없다”고.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무척 즐겁다”는 그는 “이제 이탈리어가 서툴러져 한국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2년 전 집에 갔을 때 어머니한테 ‘세탁기 돌렸냐’고 물었는데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세탁기를 ‘돌린다’는 표현이 한국식이라는 걸 잊고, 그걸 그대로 이탈리아어로 옮긴 거죠. 한국 책을 읽고, 논문도 한글로 쓰다 보니 이탈리아어 쓸 일이 거의 없어요. 얼마 전 이탈리아어로 된 한국어 문법 참고서를 하나 탈고했어요. 이탈리아 후배에게 교정을 부탁했는데, 여기저기 표시가 많더라고요(웃음). 아무리 모국어라도 많이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외국어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잘 하게 되는 게 언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모처럼 모교인 베네치아대학을 방문한다. 한국국제교육재단이 한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만든 ‘해외 고등학교 사회·역사 교사를 위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이번에는 베네치아대학이 주관하게 돼 초청받았다. 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에는 한국사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에 한국어와 한국학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 201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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