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의사 조희칙

낮에는 의사, 밤이면 셰프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야스라기’는 정통 일본 오사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적절하게 간이 밴 국물에서 오뎅을 건져 노란 겨자를 찍어 먹는 일본 오뎅, 부드러운 반죽에 돼지고기와 오징어, 양배추를 섞어 부쳐 먹는 오코노미야키, 그리고 일본식 전골 요리인 스키야키까지, 마치 일본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음식점에서 요리를 즐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가게 안에는 일본 그림과 일본의 거리 풍경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 일본 술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야스라기’의 주방장은 재일교포 3세인 조희칙씨다. 그의 직업은 두 개다. 낮에는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진료하는 ‘마쯔야마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였다가, 저녁에는 ‘야스라기’의 주방장으로 변신한다. 일본에서 태어난 조 원장은 한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국에 왔고, 자취하면서 직접 일본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음식을 만들다 보면 3~4인분이 돼요. 혼자 다 먹을 수가 없어 친구들을 불러 함께 먹었지요. 그때부터 막연하지만 ‘음식점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30년 이상 한국에 살았는데, 제대로 된 오사카 요리 전문점이 없는 것 같아 직접 식당을 차리게 됐습니다.”

그가 식당을 운영한 지도 7년째다.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정통 오사카 요리를, 일본의 식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정의학과 병원을 운영한 지는 20년째. 처음엔 신사동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외국인 관광객의 의료를 돕는 단체를 알게 되면서 일본인 관광객을 치료하는 병원을 열었다. 한국으로 여행 온 일본인 관광객이나 수학여행 온 학생이 탈이 나면 서울 시내 곳곳의 호텔로 왕진을 가기도 한다.

“대부분 급성 위장염, 감기 등 비교적 가벼운 질환이 많지만, 개중에는 심각한 질환을 앓는 분도 있어 긴장을 늦출 순 없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관광객이 맹장수술을 하게 됐을 때 수술 동의서에 대신 사인을 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밤새 병원을 지키며 통역을 하는 등 우리나라 의료진을 돕기도 하지만, 새벽이면 장을 보기 위해 시장으로 향한다.

“힘들지만 환자진료도 대부분 예약제고, 식당 역시 예약 손님 위주로 운영해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습니다.”

‘야스라기’에 온 손님들은 오사카를 찾았을 때보다 오히려 이곳에서 더 오사카 요리의 참 맛을 경험했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본 오뎅, 스키야키, 오코노미야키 등 오사카 요리를 내는 이곳에는 보통 일식집과는 다른 규칙이 몇 가지 있다. 오뎅은 간장이 아닌 가라시(노란 겨자)를 찍어 먹고 국물을 마시지 말 것. 지리 또한 국물을 마시지 않는다. 건더기는 유자와 간장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고 남은 국물로는 죽을 만들어서 먹는다. 사시미를 먹을 땐 간장과 고추냉이로만 먹어야 한다. 초고추장을 찾았다간 핀잔만 듣는다. 일본 간사이 정통식을 고집스럽게 표방하는 그는 가게에 손님이 붐비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대접받기 위해 예약한 것이기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족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약도 두세 팀만 받는다. 모든 요리를 그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그는 불쑥 찾아오는 손님이나 이자카야인 줄 알고 온 손님에게는 매몰차게 대한다.

“야스라기는 이자카야가 아닙니다. 오사카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곳입니다. 어떤 곳인지 모르고 오는 손님은 아예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직설적인 말투 탓에 ‘불친절한 식당’이라고 생각했던 손님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냉동 식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그는 타코야키나 오코노미야키를 만드는 자신만의 반죽 비법이 있다. 우리나라 부침개와 비슷한 오코노미야키의 기본 재료는 오징어와 돼지고기, 양배추, 밀가루 반죽이다.

“오코노미야키는 반죽이 맛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여 년 동안 오코노미야키 집을 돌아다니며 고민하고 배합해보았죠.”

반죽엔 가다랑어와 다시마를 우린 물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비밀이라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기본 재료 외에 기호에 따라 신선한 해물을 넣어 오코노미야키를 만든다. 팬에 돼지고기・오징어를 놓고 그 위에 양배추를 올리고 반죽을 붓는다. 다 구워지면 접시에 올리고 소스와 양념가루, 가다랑어를 올리면 완성. 입안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맛에 돼지고기와 오징어가 조화를 이뤄 인기가 많다.


요리를 잘 만드는 기술은 두 번째고 무엇보다 정성이 먼저라는 그는 만드는 이의 정성이 가득한 오마카세 요리를 하고 있다. ‘맡기다’라는 뜻의 ‘오마카세’는 일본 메이지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셰프에게 메뉴를 맡기는 코스 요리라 할 수 있다. 조 원장은 생선회와 조림, 구이,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한다.

“오마카세 요리는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드는 주방장의 특선요리입니다. 단골손님에게는 중복되지 않는 메뉴를 만들어드려야 하기 때문에 메뉴에 없는 걸 만들어 드릴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오마카세를 주문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요리는 잘 만드는 것보다 정성이 먼저라고 재차 강조했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주방장으로 일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그는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하다면서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됐다고 했다.

“병원 일은 제가 치료한 환자가 회복됐을 때, 식당에서는 손님이 맛있다며 다시 찾아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음식으로 일본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는 한 손님의 얘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1년에 한두 번씩 일본을 찾는 그는 60세가 되면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의 맛을 알릴 생각이다.

“한국의 맛 그대로 김치찌개, 된장찌개, 곱창전골 등의 가정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반은 오사카, 반은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할아버지가 되면 양로원에 가서 무료 봉사하면 되지 않을까요? 환자도 치료해주고, 요리도 만들어주고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사진 : 김선아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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