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웹툰 〈닥터 프로스트〉 연재하는 만화가 이종범

제 전공인 심리학, 10여 년간 해온 음악이 작품 토대가 됩니다

지난 2월 봄 개편과 함께 신설된 EBS FM 〈경청〉은 청소년 고민 상담 방송을 표방하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정부터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요일마다 다른 진행자와 뮤지션이 팀을 이루어 청취자와 상담을 하고, 미니 공연으로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콘셉트의 방송으로, 진행자인 ‘경청지기’는 정신과 의사, 임상심리학자, 전직 교사, 가수 등 다양한 이력과 면면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화요일의 ‘경청지기’인 이종범(31)씨는 젊은 층이 즐겨보는 웹툰 작가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언뜻 만화가라는 직업만 놓고 본다면 고민 상담 방송의 진행자와 연결시키기 어렵지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지난 2년여간 포털사이트에 심리학 관련 웹툰을 연재해왔으며, 그 자신이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놓치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온 이 시대의 젊은이라는 사실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청취자와의 전화 상담은 한 사람당 대개 30분에서 길어지면 2시간 방송 내내 이어질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로 이어질 때도 많은데, 저는 그저 상대방이 그동안 하기 어려웠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죠. 과거에는 고민 상담을 할 때, 상대에게 직접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믿었어요.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관용어구인 줄로만 알았고요. 그런데 방송을 통해 10여 명의 청취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말 그대로 잘 들어주는, ‘경청’의 힘이 얼마나 큰지 체감하게 돼요.”

이종범 작가의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감정에 메마른 유능한 심리학자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찾아가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심리학 관련 전문 지식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매회 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그려왔는데, 라디오 진행을 맡고부터는 작품에 녹여낼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때가 많다고 한다.

2년여간 매주 웹툰을 연재하면서 체력이 바닥나 응급실에 실려 간 것도 두 차례. 그는 그러나 “이제껏 내가 걸어온 길이 만화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만화에 애착을 느끼고 있다.

“여덟 살 때 멋모르고 따라 그린 만화로 주변의 칭찬을 받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기를 꿈꿨어요. 중학교 졸업할 때쯤 동네에 사는 만화가 아저씨를 찾아갔는데, ‘좋은 만화가는 그림을 잘 그릴 뿐 아니라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림만 잘 그리면 기술자가 되지만, 공부를 겸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오로지 훌륭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높은 수능점수를 받았는데, 학교에서 추천하는 경영학과나 영문과 대신 심리학과를 선택했다.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게 만화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연세대에 다니던 시절 교내 재즈동아리 ‘소 왓’에서 드럼을 치는 것을 시작해 10여 년간 재즈음악을 했던 것도 음악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욕구에서였다. 그 분야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그린 만화는 그렇지 않은 만화와 디테일이 다르다고 믿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랫동안 만화가를 꿈꿀 때는 그저 내가 좋아서 했지,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시작한 음악은 ‘어라, 내가 재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쉽게 발전했어요. 그래서 대학 때에는 만화보다 음악에 빠져 지냈죠. 생활이 곧 음악이었으니까요. 예컨대 라면집을 갔는데 줄이 길면, 그 기다림을 멤버들과 함께 즉흥연주로 표현하는 식이었죠.”

그는 모든 경험이 언젠가는 만화에 반영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전단지 돌리기, 주방 보조, 커피숍 매니저, 인터넷 댓글 달기 등 아르바이트도 가리지 않고 했다.

“만화가 준비를 하며 제일 오랫동안 한 일은 학원 강사였고, 가장 힘들었던 아르바이트는 막노동판에서 밥 짓는 일이었어요. 유럽 여행을 할 때 경비가 떨어지면 프라하에서는 거리 연주, 뮌헨에서는 캐리커처 그리기로 돈을 벌어 여행을 계속했고요. 그야말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주말에는 결혼식장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음악과 만화 사이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그는 월간 〈재즈피플〉에 음악만화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했다. 음악과 만화가 결합된 길을 찾은 것. 이듬해부터는 네이버에서 웹툰 연재를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수없이 작품을 만들어 보이고 거절당하는 일을 반복한 다음에야 연재할 수 있기에, 그도 예외 없이 심적으로 고단한 시기를 지나왔다. 그는 두 번째 웹툰 〈닥터 프로스트〉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인기 웹툰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어느 심리학자의 이야기’라는 짧은 메모에서 시작해 어느덧 시즌2를 달리고 있는 그의 작품은 〈난타〉로 유명한 PMC 프로덕션에서 판권을 사들여 연극으로 제작될 예정이고, 케이블 TV 채널인 OCN에서는 시즌 드라마로 방영될 준비 중이다.

이쯤 되면 만화가의 길에 제대로 안착한 셈이지만,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고집스레 꿈을 향해 내달려온 그를 부모님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어릴 때, 다른 아이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데 저는 입버릇처럼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도 반신반의하셨어요. 시간이 지나도 제 마음이 변치 않으니 아차, 싶으셨겠죠. 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자유를 얻기 위해 대학을 제 힘으로 다녔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고, 학자금 대출도 받았지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학점관리를 독하게 해 졸업 후 안정된 직장에 취직할 기회도 많았지만, 제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초지일관 꿈을 좇아온 데다 제 앞가림을 하고 있으니 부모님도 만족해하십니다.”

만화가라는 본업 외에 라디오 방송의 진행까지 맡아 〈닥터 프로스트〉의 시즌2가 끝나는 내년 4월까지 휴일도 반납했다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취미생활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음악은 물론이고 사진과 여행, 만화책을 포함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만화를 그리는 데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 〈객주〉는 그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제 작업실 책상에는 마치 비행기 조종석처럼 세 개의 모니터가 놓여 있어요. 몸을 돌리면 바로 건반이 있죠. 작업하다가 쉬고 싶을 때는 연주를 하거나 곡을 만들기도 해요. 만화가들은 대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제 자신을 조련하기 위해서 다른 만화를 많이 봅니다. 대단한 작품을 접하면 투지를 불태우게 되고, 조금 부족하다 싶은 작품을 보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웹툰 연재 중에는 수면 시간 부족으로 체력이 바닥나는 경우가 많아 좋아하는 술자리도 피하고, 먹는 음식 하나조차 자기관리의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닥터 프로스트〉는 이처럼 작가의 철저한 자기관리로 만들어진다. 심리학 논문이나 전문서, 사례집 등을 토대로 시놉시스를 구상하고, 대여섯 명의 심리학 전문가들을 취재해 디테일한 스토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한 달 분량의 자료조사와 취재를 몰아서 한 후 내리 그림 공정에 몰입하는 방식으로 그린다. 본인의 말처럼 열정적으로 이 일을 좋아하면서 즐기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철없는 초등학생 때부터 30대의 청년이 된 이제껏 자신의 목표를 위해 거칠고 고된 여정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최근 작가에게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특강 제안이 많다.

“진로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많은 청소년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돌고 돌아 만화가가 된 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대학 진학과 전공, 음악, 아르바이트 모두 제게는 만화를 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아직은 모르는 게 더 많아요. 10년을 꾸준히 그리다 보면 만화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겠죠.”

무엇이든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서 닥치는 대로 배우고 시도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닥터 프로스트〉의 시즌2가 끝나면 새로운 전문직을 소재로 한 웹툰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다 언젠가 그가 그린 만화의 주인공들을 한 작품에 모아 또 다른 이야기들을 펼치고 싶단다. 소중히 간직해온 꿈의 조각들을 단단히 이어 붙여, 내공 있는 만화가로 성장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사진 : 하지영
  •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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