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버지합창단

소외된 이웃을 위해 부르는 ‘아버지’들의 노래

창단 15년을 맞은 서울아버지합창단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봉사단체다. 해마다 몇 차례씩 자선공연 무대를 마련해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는가 하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찾아가는 음악회’도 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에 기여한다는 뿌듯함은, 단원들이 저마다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합창단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다.
단원들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서초구민회관에 모인다. 직장인에서부터 대기업 임원, 대학교수, 병원장과 학원장, 예비역 장성, 공무원, 자영업자, 택시기사 등 직업도 다양하고, 3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도 폭넓다. 서울 전역은 물론 경기, 인천 등지에서 오는 단원도 여럿 있다. 지휘자와 반주자를 제외하면 음악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그저 노래가 좋아 모인 사람들이다.

오후 9시까지 이어지는 연습은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공연 일정이 잡혀 있어 단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음을 맞출 수 있는 이 시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체 단원은 100여 명, 연습에는 보통 60~70명이 참여한다. 각자 생업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연습 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출석률이다.

서울아버지합창단은 현재 서초동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추동천 단장이 만들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검찰공무원이었던 그는 ‘경제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아버지들이 서로 위로하고 힘을 모아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재기의 힘을 불어넣어주자는 취지로’ 합창단을 구상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 공무원, 친구, 군대 동기 등 노래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뜻을 같이하면서 창단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3명으로 시작했어요. 노래도 하면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자선공연이었죠. 창단 연주회 때 보니 단원들이 각자 지인들에게 받은 공연 축하 화환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버려질 것들인데,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 공연부터는 아예 화환 대신 물품으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경기도 이천의 노인복지시설인 ‘평안의 집’을 후원하기 위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건어물, 기저귀, 휴지 등 시설에서 미리 귀띔해준 물품들을 기증받아 공연장 로비에 화환처럼 세웠습니다. 보낸 사람 이름을 쓴 리본도 달아주었죠. 화환보다 훨씬 보람되게 돈을 썼으니 보낸 사람들도 뿌듯해하고, 받는 쪽에서도 좋아했어요. 저희들은 저희들대로 공연 경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을 시설에 기부했고요. 그 이후 다양한 자선공연을 하면서 ‘봉사하는 합창단’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양한 자선 공연을 통해 봉사의 즐거움을 새삼 깨달은 단원들은 큰 무대가 아니라도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7년간 후원했던 ‘평안의 집’은 종종 방문해 어르신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노인복지시설을 찾는 목욕 봉사자가 대부분 여성이라 남자어르신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후 목욕 봉사도 자청했다.

최근엔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영등포 ‘쪽방촌’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복지시설 ‘토마스의 집’을 방문해 무료급식을 돕는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지만 단원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과 설거지를 담당한다. 일부 단원들은 가족들까지 동행해 함께 봉사를 실천하기도 한다. “대학생인 작은아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는 추 단장은 “평소 봉사에 관심이 없던 아이가 토마스의 집에 다녀온 후 느낀 것이 많다고 해 놀랐다”고 한다.

“단원들이 대부분 봉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합창단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이 많다고 합니다. 유료 공연인 저희 음악회에 오는 사람들도 이 수익금이 좋은 데 쓰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표를 사주지요. ‘더 도울 게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많아요. 아버지합창단은 단원들이나 관객 모두에게 봉사의 기쁨을 안겨줍니다. 저희는 노래를 통해, 관객들은 자선 공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누군가를 돕고 있는 것이니까요.”


입단 자격은 60세 이하, 서울·수도권 거주 ‘아버지’


창단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아버지합창단에는 지금도 꾸준히 입단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녀들이 혹은 아내가, 아버지·남편을 위해 직접 입단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원들이 대부분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있어요. 평범해 보이던 아버지, 남편이 말끔한 공연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선 모습은 가족들에게도 감동이거든요. 목을 관리해야 하니 술과 담배를 절로 멀리 하게 되고, 노래 덕분에 단절됐던 가족들과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람도 많아요.”

매주 한 번씩 만나고, 크고 작은 공연을 함께 하다 보니 단원들 간의 친목도 탄탄하다. 단원의 자녀가 결혼을 하면 합창단이 총출동해 축가를 부른다. 한 달에 한 번 산행도 하고, 신입단원이 들어오면 환영회도 잊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입단 문의가 종종 들어옵니다. 오디션을 보지만 노래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테너・바리톤・베이스 등 목소리에 맞는 파트를 찾아주기 위한 절차일 뿐이에요. 그러니 입단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저희 활동이 많이 알려지면서 부산・전주・광주・진주・대구・분당 등 몇 군데 지역에 아버지합창단이 생겼습니다. 조언을 구하길래 가진 자료들을 다 넘겨주면서 적극적으로 창단 작업을 도왔죠. 더 많은 아버지합창단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처음 합창단을 만들 때가 50세였는데 어느새 65세가 되었다”는 추동천 단장. 그는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 뒤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성악을 전공한 적도, 특별히 노래에 재능을 보인 적도 없는 네가 어떻게 합창단을 할 생각을 했느냐’고 놀라워해요. 그리고는 ‘나도 할 수 있느냐’고 묻지요.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음치도 가능해요. 합창의 장점은 묻어갈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웃음) 노래에 대한 애정과 봉사에 대한 마음가짐만 있으면 단원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합니다. 60세 이하, 서울·수도권 거주 ‘아버지’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사진 : 김선아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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