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한국피해자지원협회 회장

범죄 피해로 졸지에 어려움에 빠진 우리 이웃을 아십니까?

성경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피해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의 상처를 싸매고 주막에 데려가 돌보아주면서 돈까지 놓고 간다. 예수는 제사장과 레위인, 사마리아인 중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고 묻는다. 이상욱 한국피해자지원협회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경의 이 비유가 떠올랐다.
시각디자이너들을 위해 만든 공간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한국피해자지원협회는 범죄 피해로 졸지에 큰 혼란과 고통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가 ‘선한 이웃’이 되어준다. 그들의 상처를 싸매고,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범죄사건은 1년에 200만 건 정도. 이 중 형법 범죄는 50만 건, 살인 피해만도 1200여 건에 달한다. 범죄가 발생하면 사건 자체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피해자의 고통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는 ‘피해자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며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상욱 회장은 (주)삼원특수지와 고려신소재산업(주) 대표이사 회장인 기업가. 그는 어떻게 범죄 피해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2004년부터 국가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전국 검찰에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생겼습니다. 저도 2008년부터 이 센터들 중 한 곳에서 이사로 활동했는데, 피해자를 효율적으로 도우려면 좀 더 전문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민간단체가 주도하여 피해자를 돕고,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인데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 몇몇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협회를 만들었지요. 처음에는 우리 지역 피해자부터 돕자고 시작했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며 힘을 보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1000여 분이 참여하고 있고, 전국에서 지부를 만들겠다는 요청이 이어졌지요.”

2008년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일밖에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광진구청의 민간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만난 지인의 요청에 의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삶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출연금과 연회비만 내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요청에 센터에 나가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난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과 피해자들을 가까이에서 돕기 시작했는데, 피해자들을 만나는 동안 감정이입으로 점차 그들의 고통이 제 고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니, 그들이 가장 고통을 당하는 동안에는 곁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사건 발생 후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은 극심한 혼란과 고통에 빠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섭고, 밤에 잠도 못 자지요. ‘내가 정말 이 나라 국민인가’ 분노하고, ‘내가 하필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사건이 검찰에 이송된 후에야 센터가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경찰에서 사건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피해자 상담을 맡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피해자들은 정신적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정신적 피해만 더하게 합니다. ‘좀 지나면 잊을 수 있을 거야. 똥 밟았다고 생각해’같이 쉽게 뱉는 말은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지요. 저 역시 피해자 앞에서 그 참담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습니다. 성폭행당한 여중생을 돕기 위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옷도 사주고 영화를 함께 보기도 했습니다. 부모 이혼 후 고모와 함께 살던 아이는 저희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며 따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고모가 ‘그동안 내가 한 게 뭐냐’고 자책과 갈등에 빠졌지요. 이런 식으로 돕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전문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방법을 찾던 그와 박효순 나루가온 F&C 대표, 그리고 김부식 변호사는 2010년 한국피해자지원협회를 만들었고, 이상욱씨가 회장, 박효순씨가 수석 부회장, 김부식 변호사가 부회장을 맡았다. 협회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게 피해상담사 양성. 심리학・상담학・사회복지학 등 관련 전공을 공부한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전문적으로 돕기 위해 수련하는 과정이다. 이제까지 3기, 350여 명을 양성해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1년에 두 번 포럼을 열어 범죄피해자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국회나 관련기관에 피해자 지원정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피해자 중에서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변호사를 사고 병원에 다니면서 치유를 받을 수 있는데, 저소득층의 경우 앞날이 막막합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던 가장이 피해를 당하면 그다음 달부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데, 그 가족을 돕는 사람이 아무도 없죠. 우리 협회에서 피해상담사가 찾아가면 울기부터 합니다. 피해상담사는 피해영향평가서를 작성해 경찰에 보내고,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긴급 생계비를 지원하고, 검찰이나 법정에 갈 때 동행해드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피가 튄 사건 현장 청소까지 해드리죠.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한 경우 치유상담을 받게 합니다. 트라우마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에 따라 성공적으로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는가가 결정됩니다.

수많은 사건 중 우리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범위가 미약하긴 하지만, 일단 우리가 만난 피해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자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한 성폭행 피해여성의 경우 전세자금을 빌려줘 당장 그곳을 떠나 이사할 수 있도록 도왔지요. 그 후 긴 메일을 받았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다면서 가족처럼 돌봐줘 너무 고마웠고, 더 안정되면 자신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보람을 느끼지요.”


협회는 지난해 12월,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고등학생 봉사단인 하이 코바(Hi KOVA)를 만들었다. 전국의 50여개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아리 형태로, 왕따나 학교폭력 문제로 고통받는 학생들을 학생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아버지가 설립하신 (주)삼원특수지에서 근무를 시작한 게 1990년. 현재는 세계 각국의 40여 개 제작사를 통해 특수지를 개발하고 국내에 들여와 코팅 등 가공 과정을 거쳐 판매하고 있다. 그는 또 고려신소재산업을 설립해 방수-방음-차음 등 건축용 소재를 수입 유통하고, 의료용 멸균포장재 생산도 하고 있다. 2004년 그는 시각디자이너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삼원페이퍼갤러리’를 열었다.

“미술용・건축용・산업용 등 다양한 용도의 종이를 취급하는데, 최근에는 시각디자이너들이 많이 쓰는 그래픽디자인 용지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나라 시각디자인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칠순 때 삼원장학재단을 설립하셨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시각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있지요.

어려운 시절을 보낸 분들이 대개 그렇듯 아버지 역시 검약한 생활이 몸에 배신 분인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실 때는 아낌이 없으세요. 2004년에는 시각디자이너들이 세계의 디자인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페이퍼갤러리를 열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일본 등 각국 종이회사와 거래하면서, 또 각종 박람회나 전시회에서 얻는 정보와 자료가 많은데 우리 서고에서만 잠자고 있는 게 아까웠죠. 돈 들여서 외국에 나가 자료를 수집하기 어려운 디자이너들이 무척 좋아해요. 매년 4만~5만 명이 찾아옵니다. 종이를 가지고 작업하는, 촉망되는 작가나 디자이너들에게는 작품 전시장으로도 내줍니다.”

두 개 회사와 협회, 세 곳을 오가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상욱 회장. 그는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도우면서 얻는 뿌듯한 만족감, 행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보여줄 때 ‘옳은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도 들고요. 그전에는 일밖에 몰랐는데, 봉사를 시작하고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주말에는 낚시를 하거나 청평・충주 같은 곳을 찾아 모터보트를 타면서 활력을 되찾아요. 내가 지치지 않아야 돕는 일도 더 잘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피해자지원협회(http://www.trykova.org, 전화 02-3437-8799)를 통해 피해자를 돕는 방법은 다양하다. 매달 정기적인 후원금을 낼 수도 있고, 비정기 후원, 특정 피해자를 돕는 지정후원, 기업의 후원도 받는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문자 후원. 피해자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쓴 후 #9517로 전송하면 바로 2000원을 후원할 수 있다.

사진 : 김동욱
  • 201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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