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릴레이 ⑮ 김광휘 방송작가

평양을 거쳐 단군릉 부근에 있다는 춘원의 묘소를 참배하고 싶다

다음 버킷리스트는 유수열 MBC 제작국장이 이어갑니다.
지난 추석 다음날이었다.

종로 YMCA에 묵고 계신 이정화 선생을 찾아갔다. 명절이라 거리도 한산했다. 서울대 법대 교수이기도 하고, 인물전기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최종고 교수와 함께 종로 뒷골목에 있는 안동 국숫집에 가서 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이정화 선생은 아주 맛있게 드시며 소녀처럼 웃었다.

이정화 선생은 춘원 이광수 선생의 막내따님이다. 올해가 춘원 탄생 120주년이기 때문에 필라델피아에서 태평양을 건너 날아오셨다. 미국에는 오빠 이영근씨와 언니 이영란씨도 살아 계신다고 한다. 모두 팔순을 헤아리는 나이들이다. 그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춘원은 우리 근대문학을 연 한국문학의 개척자이며 2·8독립선언서를 쓴 애국자다. 이 땅에서 글깨나 쓰고 책장을 넘겼다고 하는 사람은 춘원의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지자체에 작고 문인과 심지어 살아 숨 쉬는 작가들의 문학 기념관이 60개가 넘게 있다고 하는데, 어째서 한국문학의 태두 이광수의 문학 기념관은 반 칸도 없단 말인가.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일제 말엽에 친일을 했다. 창씨개명을 했고, 젊은 학생들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연설했고, 어용단체인 조선문학인 단체의 장 노릇을 했다. 명백한 친일이었다.

그 일로 춘원은 6·25 전쟁이 나자 함경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에게 끌려갔고, 평양 감옥을 거쳐 UN군의 인천상륙작전 후에는 지금은 자강도가 된 강계까지 끌려갔다. 폐결핵으로 콜록거리며 추위에 떨던 그는 도쿄에서 함께 공부했고, 문학 활동을 했으며 소설 《임꺽정》을 썼던 벽초 홍명희가 북한의 부수상이 되어 근처에 와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기별을 보냈다.

“벽초! 나 춘원이오. 너무 춥고 아프오.”

경황 중에도 벽초는 춘원을 거두어 자신의 집에 쉬게 하고, 증세가 심해지자 만포에 있는 인민군 야전병원에 보냈고, 춘원은 거기서 숨졌다고 한다. 지금 춘원은 평양교회의 남한출신 주요 인사들의 묘역에 누워 있다.

“명절이라서 한산한 모양이죠? 종로가 이렇게 한산할 때도 있군요.”

이정화 선생이 지하철 환기통 위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소녀처럼 웃었다. 나는 그때 문득 생각 없이 말했다.

“선생님, 내년에는 정권도 바뀌고 북쪽과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를 하게 될 겁니다. 그때 선생님과 함께 취재해보고 싶습니다. 평양 감옥도 찾아가보고, 기록도 뒤져보고, 강계나 만포도 찾아보고, 단군릉으로 가는 길가 양지 바른 곳에 있다는 춘원 선생님의 묘소도 꼭 참배하고 싶습니다.”

이정화 선생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때가 올까요? 우리 생전에?”

나는 허풍스럽게 떠들었다.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절 믿으세요. 선생님과 제가 이 세상을 뜨기 전에 평양을 거쳐 강계와 만포를 다녀올 기회가 올 것입니다. 함께 기도해보자고요.”

“그래요, 우리 함께 기도해요.”

그림 : 배진성
  •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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