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지하철 마이스터 윤귀섭 기관사

서울시민의 안전을 싣고 달립니다

“띠리리리리~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노란선 바깥으로 물러나주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했다. 윤귀섭 기관사는 습관처럼 구호를 외쳤다.
“(도어등) 소등! PSD(스크린도어) 열림 확인! 승하차 확인!”
고객들의 승하차가 끝났다.
“PSD 닫힘 확인! 점등! ATO(열차자동운전장치) 양호! 출발! ”

열차가 다음 역인 신당역으로 출발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으로 열차가 빨려 들어갔다. 기자는 지금 한 평 남짓한 기관사실 안에 있다. 지하철 마이스터로 선정된 윤귀섭 기관사가 30년째 근무하는 공간이다. 보는 사람도, 함께 근무하는 사람도 없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최대 5000명의 안전이 기관사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윤귀섭 기관사는 서울메트로에서 선정한 ‘2012 마이스터’ 승무분야에 선정됐다. 지난해 11월 80만km 무사고 운행기록을 달성했고, 최우수 기관사에 선정됐는가 하면, 동아리 리더와 스터디 그룹의 멘토를 맡아 후배 양성에도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서울메트로 정달우 소장은 “승무분야 지하철 마이스터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무사고와 경력이 중요하지만 주위의 평판도 굉장히 중요하다. 윤귀섭 기관사는 후배들로부터 본받을 만한 선배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윤 기관사에게 마이스터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교육과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습니다”라며 겸손해했다. 윤귀섭 기관사는 30년째 2호선 열차만 운행하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경우 서울메트로에서 운행하는 1~4호선 중 다른 노선을 운행할 수도 있고, 차량 맨 뒤 칸에서 출입문, 방송 등을 담당하는 차장을 할 수도 있지만 윤 기관사는 입사 이래 2호선만 죽 운행해왔다. 그는 “2호선만 고집해왔어요. 2호선 승객이 가장 많거든요. 힘들어도 사람 많은 전철을 운전하는 게 좋죠. 보람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시기는 1980년 10월, 1호선이 개통되고 9년이 지나서였다. 2호선의 역사가 33년 됐으니 윤 기관사는 2호선의 발전사를 몸으로 느껴온 셈이다. 그는 30년 전 첫 운행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지금은 2호선이 10량이지만 그때는 4량이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발전했죠. 기계 고장도 많이 줄고, 인명사고도 많이 줄었어요. 그때는 승객과 많이 싸웠어요. 기관사실에 어떻게 들어오느냐고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술 취한 승객이 기관사실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들어와요. 문이 닫히는 순간 급하게 뛰어들다가 문에 닿고는 ‘왜 나를 위험에 빠뜨리냐?’며 난동을 부리죠.”


현재 2호선 전철의 40% 정도는 자동화 시스템이다. 출발도, 도착도 버튼 하나로 되고, 전철이 알아서 승객의 승하차 지점에 정확하게 정차한다. 스크린도어에서 60cm 오차 범위를 벗어나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수동 시스템의 경우 기관사의 운전 미숙으로 승하차 지점에서 한참 벗어나면 어쩔 수 없이 후진해야 할 때도 있다. 기관실 안에는 “되돌이 운전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2호선의 평균 시속은 90km인데, 정거장 간 2분 간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구간별 속도는 제각각이다. 2호선의 역은 모두 44개, 총 48.8km로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27분 걸린다. 윤 기관사는 보통 하루에 네 바퀴를 도는데, 두 바퀴를 연달아 운전한 후 군자에 있는 기지에 가서 쉬거나 잠을 잔다. 1주일에 3일 정도는 기지국에서 잠을 청한다. 아무리 지하철이 ‘안전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크고 작은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피치 못할 인명사고가 나기도 하고, 예측 못한 사태로 인한 고장이 나기도 한다. 윤 기관사는 어떻게 30년 무사고 운전 기록을 세웠을까. 그에게 비결을 묻자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평범한 비결이지만 망각하기 쉽죠. 기본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지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신호 진로를 지키고, 제한속도를 지키고, 비상사태 시 매뉴얼대로 하고, 출발과 도착 시 ‘지적(단독 지적 환호)’을 꼬박꼬박 하는 것이 기본이죠. 제가 아까 ‘지적’하는 것 보셨죠?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지만 늘 매뉴얼대로 지적을 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본을 지키는 것, 그 이상의 비결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2006년, 사당역에서 출발한 직후 한 70대 할머니가 전철 머리 앞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한 것. ‘전방주시’ 기본을 되뇌던 그는 할머니를 바로 발견하고 즉시 급정거했다. 열차는 15m 전진하다 할머니가 뛰어내린 곳 직전에서 멈춰 섰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또 한 번은 술 취한 사람이 선로에 떨어져 잠이 들었다. 이번에도 ‘전방주시’를 지켜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그는 “정거장에 설 때마다, 정거장에서 출발할 때마다 사람이 뛰어내릴까 봐 굉장히 신경 쓰인다. 엄청난 스트레스다”고 했다.

1~4호선은 기관사와 차장이 2인 1조가 되어 한 대의 전철을 운전한다. 맨 앞 칸에 타는 기관사는 운전과 사고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조치와 최종 책임을 지고, 맨 뒤 칸에 타는 차장은 냉방과 방송, 출입문을 담당한다. 도시철도공사에서 운영하는 5호선부터는 기관사가 차장의 일까지 다 한다. 기관사와 차장이 운행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지급되는 필수품이 있다. 바로 껌이다. 심심풀이용으로, 졸음방지용으로 지급되는 껌은 기관사들의 왼쪽 가슴 주머니에 상비돼 있다. 기관사는 짧게 보면 제동하랴, 신호기 보랴, 관제실과 연락 주고받으랴 잠시도 긴장을 늦출 틈이 없지만, 길게 보면 비슷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래서 기관사가 되려면 사명감이 필수다.

“내가 서울시민의 발이 되어주고,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죠. 운전만 잘 한다고 승객을 잘 모시는 게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운전을 해야 안전운전이 됩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려면 마음에 병이 없어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합니다. 계속 몸과 마음을 닦다 보니 이 일에 점점 더 자부심이 생깁니다.”

전철 한 칸에는 최대 500명의 승객이 탈 수 있다. 모두 열 칸으로 되어 있으니 한 대의 전철에는 최대 5000명의 승객이 탄다. 대형버스나 기차・비행기보다 많은 인원을 싣고 달린다. 하루 평균 전철 이용객은 628만 명이다. 시민의 발이자 휴식공간이기도 한 전철의 안전운행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기관사의 사명감이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