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네 번째로 2000경기 출장 달성한 나광남 KBO 심판

야구장의 또 다른 주인공 야구심판

지난 7월 24일, 서울의 라이벌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회 말 두산의 공격 상황에서 3루에 있던 주자 최주환이 주루플레이 미스로 LG 포수 김태군에게 견제를 당했다. 순간 멈칫거리던 최주환은 3루로 귀루하기 위해 슬라이딩을 했고, 3루심은 상황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3루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다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타이밍상으로는 아웃에 가까웠지만 3루수 김태완의 글러브는 미묘하게 빗나가 최주환을 태그하지 못한 상황. 이때 넘어져 있던 3루심이 벌떡 일어났고 양쪽으로 팔을 뻗어 정확히 세이프 판정을 해냈다.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3루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최주환은 홈까지 들어왔고, 이날 두산은 LG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야구장의 포청천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준 그날의 3루심은 바로 프로야구 1군 출장 19년(전체 21년) 경력의 나광남 심판이다. 그는 지난 9월 8일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역대 네 번째로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해서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는 19년 동안(로테이션 상 대기심일 때를 제외하고)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출장해 이룬 기록이라 개인적으로 더 영광스럽다고 했다.

심판들이 대개 그렇듯 그도 원래 전도유망한 야구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 다소 늦은 시기에 야구를 시작했지만, 1989년 2차 4순위로 삼성 라이온스에 지명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어깨 부상이 찾아왔다. 재활 치료를 하고 다시 테스트를 받을 수도 없을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때까지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눈앞이 캄캄하고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감사하게도 친구의 아버님이 심판직을 추천해주셔서 심판을 하게 됐습니다.”

처음 2년간은 2군 경기에 투입됐다. 그런데 당시 2군은 경기가 1년에 36번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취소되기 일쑤여서 하릴없이 쉬는 날이 많았다. 젊은 날에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2년 후 수많은 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1군 경기에 투입되면서 ‘이 일은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저는 야구선수였고, 지금도 야구인입니다. 저는 야구를 사랑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야구인으로서 평생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하루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오쯤 느지막이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저녁에 있을 경기를 준비한다. 심판의 하루도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전 11시쯤 일어나고, 오후 3~4시에 경기장에 출근해서 밥을 먹고 출장을 준비한다. 경기가 끝나고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면 자정이 넘고, 새벽 2~3시에 잠자리에 든다. 심판도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구 경기의 구성원으로 경기 내내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는 필수다. 부상 방지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보양식도 챙겨 먹는다. 심판에게 있어 눈은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에 눈 영양제도 꼬박꼬박 먹는다.

19년간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올해의 심판상’도 여러 번 받은 나광남 심판의 롱런 비결은 무엇일까. 틀에 박힌 대답 같지만 모든 분야에서 만고불변의 정답으로 통할 ‘노력’, 바로 그것이었다.

“저는 제가 심판이 된 첫 해부터 15년 정도는 제가 주심으로 출장한 모든 경기를 기록했고, TV중계가 있었던 경기는 모두 녹화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스트라이크 존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판정에서는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전부 파악하고,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이런 노력들이 제 심판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심판생활 21년 동안 셀 수 없는 사건을 겪었지만, 그에게는 절대 잊지 못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배탈사건’이다. 그가 1년차 까마득한 신입 심판일 때,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경기에 출장했다. 분명 경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2회 말이 끝나고 배가 살살 아프더니 신호가 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5회 말이 끝난 클리닝타임까지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휴지를 가지고 다시 가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의 차례가 되자 경기가 재개됐고 선배 심판이 그를 불렀다. 그는 결국 화장실에 가지 못했고,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용케 그 고통을 참아냈다. 그에게는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야말로 1년차의 정신력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그런 상황이 오면 절대로 9회 말까지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웃음)”

21년차 베테랑 심판이지만 아직도 경기 전에는 긴장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특히 주심일 때 긴장감은 배가된다고 한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고, 경기 전반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이기 때문이다. 로테이션상 주심을 맡게 될 경우에는 전날 저녁부터 해당 경기에 나올 선발 투수들을 연구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심판은 ‘욕먹는 직업’이다.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심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훌륭한 판정 때문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실수가 있었거나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다. 그래서 그들은 인터넷을 잘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쏠린 비난의 화살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다음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심판은 경기 도중 선수나 코칭 스태프와 부딪히는 경우도 잦을 수밖에 없다.

“선수나 코칭 스태프, 또 프로야구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저희를 조금은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도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이고, 프로 심판의 직업을 가진 만큼 오심이나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정이 섞인 판정이나 특정 팀에 유불리가 가는 판정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규정상 프로야구와 관련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석에서 만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사적인 감정이 판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야구계에 같이 운동을 했던 동료와 선후배가 많을 텐데,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욕도 많이 먹고, 사람도 마음대로 못 만나고, 여기저기 공에 맞아 부상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이 힘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애착이죠. 심판이라는 직업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말이지 힘든 직업인데, 이 일에 애착이 없다면 한 경기 한 경기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게 되잖아요. 이 직업에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발전을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만이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1년, 이제 심판 일이 틀에 박힌 일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세월이지만, 심판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이제 막 꿈을 이뤄낸 청년처럼 벅찬 표정이 되었다. 심판으로서 그의 최종 목표가 궁금했다.

“심판은 정년이 만 57세입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저는 현역 생활에 욕심이 많기 때문에 3000경기 출장 달성을 꼭 해내고 싶습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죠?(웃음)”

인터뷰를 마치자 오후 5시가 되었다. KIA 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주말 경기가 시작되었다.

“스뜨-라익!”

홈플레이트 뒤에서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