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대만・중국에서 다국적 광고대행사 운영하는 계성국 소울메이트 대표

젊은이여,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라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감탄할 때가 많다. 똑똑하고, 어학 능력 뛰어나고, 이런저런 스펙을 화려하게 갖추고 있고. 그런데도 취업은 바늘 문이란다. 모든 것을 갖추고도 무한경쟁에서 뒤질까봐 초조해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홍콩에 본사를 둔 광고대행사 ‘소울메이트(SOULMATE)’의 계성국 대표는 “왜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소울메이트’는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대만 등 중화권과 한국에 지사를 둔 다국적 광고대행사. 처음 홍콩에 진입했을 때 그에게는 아무 기반도 없었다. 빈민층 아파트에 집을 얻고 싸구려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기회를 모색했다. 큰맘 먹고 비싼 곳에 사무실을 얻어 광고대행사를 차리고도 얼마 동안은 들어오는 일거리가 없어 맘고생이 심했다. 넋 놓고 걷다 유리문에 부딪쳐 머리가 깨지고, 버스를 탄 채 정신없이 종점까지 가기도 했다. 공황상태였다. 1년 후 회사는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중국・대만까지 진출했다. 잠시 한국을 찾은 그에게 “그런 고생을 다시 하라면 하겠느냐?”고 했더니, 서슴없이 “그렇다”고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최신무기로 잔뜩 무장은 해놓고,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홍콩에 가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취업문을 두드립니다. 홍콩에서 먼저 경력을 쌓은 후 유럽으로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친구들도 있고요. 오후 5~7시, 맥주를 싸게 마실수 있는 ‘해피 아워’ 때 맥줏집에 가면 이런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마흔이 넘은 저도 그들 사이에 껴서 미래를 모색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 친구들을 보면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는 정신을 가지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치열하게 싸우느니 밖으로 나가라. 나가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요.”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 필립스 다리미 사진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는 무조건 ‘저런 물건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미대에 진학하려면 미술학원에 다녀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는 수업료 대신 청소와 각종 허드렛일 등 급사 역할을 하면서 그림을 배웠고,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에 들어갔다.

“연탄을 100장, 200장씩 들여놓은 날이면 손이 떨려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고요.”

대학시절, 그는 대우전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방울세탁기가 히트하면서 디자인 인력이 부족해 우리 같은 대학생까지 불러들인 때였죠. 그런데 기획회의에 들어가본 후 디자이너에 대한 환상이 무너졌습니다. 상품기획 담당이 주도하는 회의에서 디자이너는 제 목소리를 못 내더라고요. 논리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죠.”

이 일을 계기로 디자이너의 길을 포기한 그는 소위 ‘말발’로 먹고사는 광고대행사 AE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대 출신이 AE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문데 그는 열심히 공부해 입사시험을 통과했고, 1993년 LG애드의 AE가 됐다.

“1993년, 입사하자마자 대전엑스포 현장으로 파견 나가 대형 이벤트의 운영방식 등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995년에는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는 브랜딩 작업에 참여했고요.”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하면서 열심히 달리던 그는 1999년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외환위기 여파로 저희 회사도 사람을 정리해야 했는데, 사람을 자르는 대신 1년에 한 달씩 돌아가며 무급휴가를 쓰기로 했어요. 한 달 동안 뭐할까, 영어는 다들 하니 좀 특이한 아랍어나 베트남어를 배울까, 중국어를 배울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죠.”

그가 1년 휴직하고 중국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뭐하러 가느냐?’며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중국이 요즘처럼 각광받을지 예측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였다. 중국유학 중 그는 20대 청년들과 함께 기숙사를 쓰면서 변화하는 중국의 실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공산주의의 옛 관습이 남아 있는가 하면, 낮에는 중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저녁에는 학생을 상대로 식당을 할 정도로 발 빠르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공존하던 때였습니다. 중국이 엄청난 변화를 겪겠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요.”


그는 어학연수 후 바로 중국지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에서 6년 반을 생활했고, 중국인과 끈끈한 인맥도 쌓았다.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중국현대사, 중국인물평전 등을 읽으며 유적지까지 찾아다녔죠. 덕분에 중국인들과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중국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1년 정도 일하던 그는 또다시 결심했다. 내 사업을 하겠다고.

“원래 40대가 되면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 내 차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광고대행사를 차리면 알고 지내던 광고주부터 끌어와야 하는데, 그건 같은 시장을 두고 옛 직장과 경쟁하는 모양이잖아요. 그것보다는 밖으로 나가 영토 확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랫동안 생활한 중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시작했을까.

“중국인과 인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가는 100% 망합니다. ‘절친’이라고 무작정 들이대는 것은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중국에서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내가 줄 게 있어야 그쪽에 손을 내밀 수 있는 거지요. 일단 홍콩에서 기반을 쌓고 중국에 진출한다면 저도 줄 게 있어 그전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홍콩은 중국에 비해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라, 이방인도 노력하면 기반을 닦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홍콩에서 출발해 홍콩투자회사로 중국에 진출하면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현지에서 창의력 있는 우수인재를 채용한 후 그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주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참여하는 경쟁PT마다 실패했지만, 차츰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실적도 쌓였다. LG전자, 정관장 등 홍콩에 진출한 한국 상품뿐 아니라 HSBC은행, 벤츠, 하이네켄, 네슬레, 싱가포르 음료회사 요스, 호텔, 여행사 등 다양한 광고주들이 그에게 일을 맡겼다. 그에게 ‘소울메이트’만의 특장점을 물었다.

“저희 회사가 큰 규모는 아니지만, 텔레비전・신문・잡지・라디오・옥외광고・이벤트까지 모든 영역을 망라합니다. 고객의 필요를 이렇게 전방위로 채워주는 이런 규모의 회사가 없지요. 작기 때문에 역량을 그때그때 집중해 신속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안되면 되게 하는’ 한국 스타일이라 다른 회사에서 어려워하는 일을 맡을 때도 많습니다.”

홍콩과 중국・대만・한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그는 팀장에게 권한을 위임해 이메일 결재만으로 웬만한 일은 스스로 집행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매년 재무제표를 전 직원에게 공개하고, 순이익은 직원들과 공유한다. 결과물만 가지고 이야기할 뿐,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도 자유로운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창의적인 인재를 많이 채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인으로서 중국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그는 “같은 중국인이라도 홍콩과 중국 본토, 대만은 다른 점이 많다. 그들 사이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로 쓰는 무기는 ‘솔선수범’. 일이 있어도 휴일은 칼같이 지키던 직원들도 그가 휴일에 꾸준히 출근하는 것을 보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해서 생긴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기에 불만이 크지 않다고 한다. 홍콩・중국・대만・한국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의 단합을 위해 서울에서 워크숍을 가진 후 나이트클럽 전체를 빌려 놀기도 한다.

요즘 세계경제 자체가 침체를 거듭하면서 그의 회사도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그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지난 8월 대만에서 게임 퍼블리시 회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각오를 다시 다지기 위해 태국에 정글탐험을 다녀왔다.

“해병대나 특전사 캠프를 갈까 했는데, 군 생활을 이미 경험했기에 새롭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주일 동안 정글탐험을 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해이해진 정신을 바짝 조였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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