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人]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와 함께해온 양태식씨

김연아를 가르친 스승의 스승

거리 전체가 증기탕처럼 푹푹 찌던 여름날, 이분을 만난 곳은 오싹한 한기마저 도는 곳이었다. 광운대 아이스링크에서 만난 ‘김연아 스승의 스승’ 양태식씨(64). 아이스링크에는 김연아의 뒤를 이을 어린 피겨스케이팅 기대주들이 바깥 날씨를 잊은 채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김연아의 점프는 ‘교과서 점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기량을 판가름하는 점프는 피겨스케이팅을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기본 동작이기도 하다. 그 동작을 처음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킨 사람은 한국의 코치들이었다. 그런데도 김연아가 순전히 외국인 코치를 만났기 때문에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처럼 치부하는 것에 대해 한국인 코치들은 가슴 아파한다.

양태식씨는 김연아가 한국에서 배운 여러 코치들을 코치한 ‘코치의 코치’다. 김연아는 “내가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은인 3명이 있다”면서 자신에게 피겨 선수가 돼라고 처음으로 권했던 유종현 코치를 첫 번째 은인으로 꼽은 적이 있다. 김연아가 안양 아이스링크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팅을 배운 유종현 코치는 원래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양태식씨의 지도로 피겨스케이팅을 하게 됐다. 김연아가 2007년 캐나다로 가기 전까지 가르쳤던 김세열 코치 역시 양태식씨의 제자다. 김세열 코치는 양태식씨의 지도로 199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등을 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거쳐 1973년부터 30년 가까이 선수들을 코치하면서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성장사와 함께해온 양태식씨는 2000년부터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내 제자들도 이미 나이가 많아져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심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여자 심판 13명 중 6명이 내 제자인데, 그들은 국제심판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코치 중에도 양태식씨가 가르친 제자가 많다. 그들이 제자를 지도하다 난관에 봉착하면 요즘도 스승인 양태식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회전이에요. 회전을 많이 하려면 점프한 후 공중에 떠 있는 체공시간이 길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개개인마다 다르죠. 코치가 그걸 빨리 판단해 처방해주어야 좋은 선수가 탄생하는 거지요. 코치를 맡고 있는 제자들이 요청하면 아이스링크로 달려가 선수 개개인의 특징에 따라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충고해줍니다. 김연아도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아이스링크에서 봤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김연아는 워낙 체격조건이 좋아 시원한 점프가 돋보였습니다.”

양태식씨는 어떻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을까? 그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스케이팅 역사 자체였다. 그는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실내 스케이트장이 생기기 전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피겨스케이팅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라고 해요. 일본이나 미국 등지에서 서양스포츠를 접한 유학파를 통해서였죠. 이승만 대통령은 전국체육대회 때 피겨스케이팅만큼은 사흘 내내 경기를 관람한 후 상장까지 주고 갈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부 고위관리나 사업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려 했어요. 저도 아버지 권유로 럭비선수 출신이었던 형에 이어 피겨스케이팅을 배웠고요.”

1965년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생기기 전에는 우리나라에 실내스케이트장이 없었다. 창경궁 연못이나 건국대 저수지, 장한평 미나리밭 같은 곳의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햇빛이 얼음을 녹이기 때문에 낮에는 스케이트를 타기 어려웠고, 물을 조금씩 뿌리며 얼음이 꽝꽝 얼기를 기다렸다 밤을 새며 연습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양철통 안에 숯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면서 연습했지요. 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하고요. 밤새 연습을 하고 나면 모두 얼굴이 새까매졌어요.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문을 열었을 때는 스케이트를 타러 오는 사람뿐 아니라 구경 오는 사람도 많아 관람권과 활주권을 따로 팔 정도였어요.”

치열한 승부의식보다 동고동락하는 정이 더 컸다고 그는 그때를 회고한다. 대학을 2학년까지 다니다 군대에 간 그는 1970년 춘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육군 대표로 나가 우승을 했다. 그게 선수생활의 대미(大尾)였다.

“전국체전 사흘 후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떠났어요. 1969년 입대한 후 ‘대한뉴스’에 나오는 베트남전 소식을 볼 때마다 ‘저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에는 이야기도 안 한 채 한 달 정도 따로 교육을 받고 파병됐습니다. 베트남전에 먼저 참전한 친구를 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고등학교 시절,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였어요. ‘우리 집에 가볼래?’라고 해서 함께 그곳으로 갔는데, 아기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생활하며 장미꽃을 잘라 팔고 야채를 키워 먹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 고아원도 나와야 한다고 고민하더니, 베트남에 갔습니다. 그 친구가 말린 야자잎에 ‘오늘은 날씨가 더웠다’ ‘작전을 나갔다 왔다’ ‘십자성이 보인다’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써 보냈죠.”

친구를 베트남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정보병이었던 그는 맹호부대 소총수가 되어 산적처럼 산 속을 누비며 전투를 했다. 1973년 제대했고, 선수에서 코치로 변신했다.

“개인 코치도 많이 했지만, 풍인초등학교와 은석초등학교의 피겨스케이팅 팀 코치도 오래 했습니다. 은석초등학교는 리라초등학교와 피겨스케이팅에서 쌍벽을 이뤘죠. 무슨 운동이든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기본에 충실할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은 선수로 또 코치로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의 선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세계대회 도전도 잦아졌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김연아 선수를 배출했다. 그는 환갑이 넘은 요즘도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지난 한 해 동안에는 부산에 있는 아이스링크에서 교육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부산의 꿈나무들이 서울까지 올라오지 않고 부산에서도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코치진을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제2, 제3의 김연아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게 자신 같은 원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곳저곳 아이스링크를 다니다보면 체격이나 자질이나 모두 뛰어난 친구들을 많이 보게 돼요. 그런 친구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이를 위해 구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제가 평생 몸담아온 분야가 발전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게 제게는 나라사랑의 길입니다.”

사진 : 하지영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국군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유엔군은 큰 조수간만의 차와 시가전이 불가능한 지역적 특성 등의 악조건 속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전세는 급속도로 반전되었고, 9월 28일에는 공산군에게 빼앗긴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났던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의 침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기념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신 국가유공자분들과 해외참전용사들에게 감사드리고,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혈맹으로 이어온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국가보훈처 제공)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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