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 개발한 김정은 박사

모국의 신약산업 발전 위해 영구 귀국

지난 2009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새롭게 등장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유일한 치료제로 주목받은 약이 바로 미국 길리어드 사에서 개발한 ‘타미플루’였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 약의 개발자가 한국 국적의 김정은 박사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려졌다. 세계적인 제약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와 길리어드에서 40여 년간 일하며 신약 개발을 주도한 그는 모국의 신약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올해 초, 영구 귀국했다.
김정은 박사를 만난 곳은 아산병원 내 자리 잡은 ‘카이노스메드’라는 제약 벤처기업이었다. 그는 이 회사의 연구개발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지난 2007년 설립된 카이노스메드는 미국에서 20년 이상 글로벌 신약 연구·개발에 참여한 핵심 인력이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는 작지만 탄탄한 기업. 특히 에이즈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등 이미 제품화된 글로벌 신약의 발명자들과 개발부터 시장 출시까지 신약 개발 전반을 총괄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김 박사는 “규모는 작지만 연구에 필수적인 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외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입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시스템을 살펴보면, 한 회사가 전 과정을 맡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핵심 연구원들을 두고 생산, 실험 같은 실무는 아웃소싱하는 것입니다. 길리어드만 해도 5000명이 일하는 큰 회사이지만 실험용 동물이 한 마리도 없어요. 그런가 하면 중국에는 화학 분야 전문 인력만 3000명이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회사 규모가 작아도 신약 개발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지요. 한국에는 아직 이런 모델이 없어 매우 실험적인 방법으로 보이겠지만, 현재 저희는 이러한 분업화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두 곳에 신약개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국내 연구소는 신약 후보물질 개발 및 최적화 단계까지 초기 연구 개발을 담당하고, 미국 연구소는 전임상 및 임상 단계부터 제품 출시에 이르는 사업화 단계를 맡고 있습니다.”

올해 71세인 김정은 박사는 길리어드 사에서 은퇴한 후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카이노스메드를 택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 신약 개발 산업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도쿄대 약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리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항암제로 유명한 브리스톨 마이어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20년을 근무하다 동료가 길리어드를 창업하자 자리를 옮겼다. 당시만 해도 길리어드는 지금의 ‘카이노스메드’ 같은, 직원 수 50여 명의 작은 벤처 제약사였다.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회사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바로 그가 개발한 타미플루 덕분이었다.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항할 수 있는 약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타미플루는 개발되자마자 제약회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자체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할 여력이 없던 길리어드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로슈에 거액의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이전했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던 길리어드는 그 재원을 바탕으로 연구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도 이어졌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연간 매출이 10조원에 이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제약사가 되었다.

“타미플루는 완전히 신약은 아닙니다. 이전에 이미 비슷한 약이 있었는데, 흡입식이라 노인이나 어린아이에게는 매우 불편했지요. 그래서 누구나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같은 성분을 가루로 만들어 캡슐에 넣었어요. 그것이 큰 히트를 친 것이지요. 지금 타미플루는 시장점유율이 90%나 됩니다. 한국도 이런 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특허가 끝난 약을 복제 생산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쉽고 간단한 방법이지만 세계시장에 가지고 나갈 수 없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러니 복제약보다는 기존 약의 효능을 더 좋게 만드는 개량약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합니다. 카이노스메드에서 연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항암제 연구다. 현재 여러 종류의 항암제가 시판되고 있지만 대부분 독성이 강해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까지 망가뜨린다.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약이 가진 독성을 완화하고, 가급적 암세포에만 작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는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은퇴 후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 이루어 행복

한국에서 생활하는 소감을 묻자 그는 “집과 연구소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어 잘 모른다”며 웃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스물두 살 때,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 공부하러 왔지만 6개월 남짓 머무르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도쿄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난 뒤 45년간 줄곧 미국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머문 기간이 거의 없었음에도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유를 물으니 “아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서울대에서 보냈던 그 짧은 체류 기간에 한 여학생을 소개받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일본에서 20여 년, 미국에서 40년을 넘게 살았지만 제 국적은 언제나 ‘한국’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종종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국인’으로 불렸어요. 사실 미국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습니다. 공부도 했고, 작은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놀라운 경험도 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지요. 그래서 은퇴 후에는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었는데 마침 카이노스메드를 설립한 강명철 대표가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흔쾌히 응했습니다. 시기는 다르지만, 강 대표와 저는 박사후 과정 때 하버드대 같은 지도교수(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코리 교수) 아래에서 연구를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인연이지요.”

지금도 여전히 일하는 것이 즐겁고, 연구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정은 박사.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지키고 있는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신약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쌓은 신약 개발 경험이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요긴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모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연구 열정을 드러냈다. 이 세계적인 석학의 귀환에 국내 제약업계의 관심이 쏠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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