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다이닝 ‘집밥’ 박인 대표

마음을 채워주는 밥, 같이 드실래요?

혼자 살면서 바쁜 일상을 소화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족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식사시간은 꿈처럼 여겨진다. 아침식사는 집을 나서며 우유 한 컵, 점심식사는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저녁에는 집에서 TV를 보며 때우는 이들에게 식사는 빈속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집밥’은 잊고 지내던 식사시간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소셜 다이닝 기업이다. 소셜 다이닝이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이르는 그리스의 ‘심포지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 또는 레스토랑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집밥’은 미국과 유럽에서 성행하고 있는 소셜 다이닝 문화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기업이다. 외롭게 혼자 밥을 먹던 사람들은 ‘집밥’ 모임을 통해 고민이나 관심사를 공유할 사람들을 만나 함께 식사한다. 모임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임을 주선하고자 하는 사람이 이름과 이메일 주소, 원하는 모임 주제와 장소를 쓴 신청서를 웹사이트에 내면 사이트 게시판에 모임에 관한 글이 업데이트된다. 모임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사이트에 게시된 모임 중 마음에 드는 모임을 골라 참가신청을 하면 된다.


‘집밥’을 만든 박인 대표도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 그리웠다. 사업가인 부모님을 따라 유년시절을 인도에서 보낸 그는 고등학생이 되던 해 홀로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때부터 자취생활이 시작됐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아졌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먹는 밥에 대한 향수가 극에 달한 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올해 2월이었다. 혼자 밥을 먹던 그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외롭게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리를 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아 SNS로 함께 식사할 사람을 모집했죠.”

예상외로 금방 반응이 왔다. 첫 모임은 한 회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박 대표가 가지고 온 카레를 8명의 직원들과 나눠 먹었다. 그 후 SNS를 통해 정기적으로 모임공지를 띄웠고, 그때마다 꾸준히 5~6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올해 5월부터는 사이트를 열어 시범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이트 개설 후 올해 8월까지 약 3개월 동안 80회 남짓 모임이 이뤄졌으며, 700명 이상이 집밥을 통해 새로운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재참여율도 높다. 모임에 한 번 참여한 사람 5명 중 1명은 다른 모임에 다시 참여하거나 호스트가 되어 직접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지역, 연령대, 관심사와 같은 공통분모로 그들만의 ‘식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같은 지역에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모임, 30대 싱글 남녀의 모임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모임, 록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모임의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공통된 화젯거리가 있기에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이들은 허물없이 친해진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온 참여자가 “원래 아시던 분들이세요?” 하고 물을 정도다. 참여자의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가장 어린 참여자는 열일곱 살 여고생이었어요.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우울감이 심해지는데, 조언을 얻고 싶다며 모임의 주선자를 자청했죠. 50대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며 참가신청을 하셨어요. 직장에서 만나는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공손하게 대하거나 멘토로 생각할 뿐, 친구처럼 대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밖에 외국에서 온 유학생, 낯선 도시로 이사 온 주부에 이르기까지 참여자들의 공통점은 소통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집밥 모임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힐링’ 코드와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터놓고, 다른 사람의 진심을 듣는 소통을 원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피상적인 경우가 많아요. 모임에 나가도 명함만 주고받거나 서로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기 바쁘죠. 저희 모임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지 않기 때문에 나이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요.”

초창기에는 매회 모임에 일일 셰프를 초청해 집에서 먹는 밥의 맛을 살리는 데 역점을 뒀다. 그러나 모임을 이끌어가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음식보다 소통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는 전체 모임의 5% 정도만 일일 셰프가 진행하고, 대부분의 모임이 음식점에서 이뤄진다. 지역별로 음식점을 지정해 모임 주선자가 장소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모임 장소를 추천한다. 이때 음식점에서 받는 수수료가 이 기업의 수익원이 된다. ‘집밥’ 모임의 매력은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대화의 장이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낯선 사람을 믿는 게 쉽지 않잖아요.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내면의 고독은 깊어지죠. 저희 모임 참여자들은 인간 간의 유대감을 회복하고 가시는 것 같아요. 모임에서 처음 본 사람과 소통하면서 ‘세상에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분이 많아요.”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 이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박 대표도 몰랐다. ‘소셜 다이닝’이라는 용어도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박 대표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정식으로 창업한 것도 아닌데 저희 회사를 ‘사회적 기업’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계시고, 저를 ‘밥상운동을 하는 운동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세요.”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정작 박 대표는 요즘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다. 올해 9월 정식 창업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이트 자동화 작업을 통해 보다 많은 모임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에요. 올해 12월에는 스마트폰 앱도 제작할 계획이고요. 지금도 지방에서 모임요청이 종종 들어오는데,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면 모임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싶어요.”

이제 막 기업가로서의 출발점에 선 그가 꿈꾸는 회사는 “작지만 행복한 회사”다. “무엇보다 밥을 제때 주는 회사를 만들어야겠죠.(웃음) 사무실 한쪽에 공동주방을 마련해 함께 요리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회사의 모습을 상상하는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매번 모임마다 박 대표가 실시하는 설문조사가 있다. 참여자들은 모임이 끝나면 “집밥은 이다”라는 문장의 빈칸을 채워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쉼표, 맛있는 일탈, 두통약, 설렘과 같이 빈칸을 채운 단어들은 집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 대표에게 밥은 어떤 의미일까. “글쎄요” 하며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대답한다. “밥은 마음의 채움이라고 생각해요. 밥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고픈 배뿐 아니라 허한 마음까지 채우는 게 진짜 식사죠. 바쁘지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소중한 사람과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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