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남부시장 ‘청년몰’ 탐방

전통시장에 젊은 피 수혈하는 청년들

이른 아침, 다른 곳보다 먼저 기지개를 켠 전주남부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옷・식료품 등 진열된 물건들 사이로 사람들의 오가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역 디자이너들이 모여 디자인한 세련된 간판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색적인 간판이 걸린 가게들을 따라 걷다보면 ‘청년몰 오시는 길’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게 된다.

‘청년몰’은 올해 5월 전주남부시장 2층에 조성된 청년들의 가게다. 현재 17명의 젊은 사장들이 1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이음’이 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가 지원한 청년장사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통시장의 빈 점포를 뜻있는 20~30대 청년 사업가에게 1년간 무료로 임대해준다.

그라피티로 장식된 계단을 올라와 맞닥뜨리는 풍경은 생경하다. 칵테일바, 디자인숍, 선글라스 판매점 등 개성 있는 가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은 흡사 대학가의 한 골목을 연상시킨다. 공간이 주는 낯선 느낌에 사로잡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통로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서 남자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년몰에 입주한 사장들이다. 옆 테이블에 앉아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세 분은 어느 가게 사장인가요?

김은홍 : 저는 볶음요리 전문점 ‘플라잉팬’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볶음면, 볶음밥을 주로 만드는데,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이철희 : 저희 가게 이름은 ‘뽕의도리’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뽕잎으로 만든 음식과 제품을 판매하고 있죠.

백승열 : 보드게임카페 ‘같이놀다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보드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면서 아지트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죠. 간간이 맥주도 한 잔씩 곁들이면서요. (웃음)


청년몰은 어떤 계기로 지원하게 되었나요?

김은홍 : 오래전부터 창업의 꿈을 갖고 있었어요. 아내가 인터넷에서 청년장사꾼 모집 공고를 보고는 제게 알려줬죠.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냈어요.

이철희 : 매주 첫째·셋째 주에 전주남부시장 2층에서 열리는 청년야시장에 참여했어요. 그때 인연이 닿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죠. 청년몰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신청했어요.

백승열 : 청년몰 입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시범가게 사장을 모집했어요. 작년에 길에서 모집공고를 보고 신청했다가 탈락했죠. 올해 다시 도전해서 합격해 가게를 차리게 됐고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김은홍 : 직장생활을 했어요. 익산에 있는 육류가공 전문회사에서 식품을 개발하는 일을 했죠. ‘플라잉팬’ 메뉴의 레시피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만들어놓은 거예요.

이철희 : 서울에 있는 동영상 콘텐츠 제작 업체에서 5년 정도 일하다가 고향인 부안으로 돌아와 뽕나무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뽕잎이 육류의 잡냄새 제거에 특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대에 뽕잎을 넣어보니 향긋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뽕잎을 넣은 뽕잎소시지, 뽕잎을 넣은 돼지고기가 들어간 뽕잎버거 등의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죠. 피부미용에 좋은 뽕잎비누도 판매하고 있고요.

백승열 :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하하.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갖가지 일을 했죠. 땀 흘려 일해봐야 그곳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부산에서는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했고, 변산에서는 농사도 지어봤어요. 전주도 여행차 들렀다가 마음에 들어서 눌러앉게 됐어요. ‘여기에서 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전에 서울에서 보드게임카페 점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보드게임카페를 열기로 했죠.


입주소식을 듣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게들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백승열 : 폐허 같았어요.

이철희 : 문이 닫힌 채 방치된 창고였죠.

김은홍 : 청년몰 사장들이 힘을 모아 보름 만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어요. 대청소를 해서 묵은 먼지를 털고, 고물상이나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인테리어 소품을 모아 가게를 꾸몄죠. 목공일을 잘하는 사람은 목공일을, 공예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공예를 하는 식으로 각자 자신 있는 일을 맡아서 했어요. 그러다보니 청년몰 12개 가게 중에서 제 손길이 안 닿은 가게가 하나도 없어요. 다른 가게 사장들도 마찬가지고요.


가게 문을 연 지 두 달 남짓 지났는데요. 힘든 점은 없나요?

백승열 : 무지하게 많죠.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곳에서 시작한 사업이니 가게를 홍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고, 가게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늘 고민이에요. 장마철에는 종종 비도 새고요.

이철희 : 어? 너희 집도 비가 새?

김은홍 : 너희 집도? 다 같이 모여서 보수공사 한번 해야겠네. (웃음)





그렇다면 운영상의 어려움을 싹 씻게 하는 이점은 뭔가요?

백승열 :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점이죠. 모두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잖아요. 영어공부도 하고, 스펙도 쌓고. 그런데 저희는 그런 과정 없이 바로 저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김은홍 : 저도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없어요.

이철희 : 같은 길을 가는 청년몰 식구들이 제일 큰 힘이 돼요. 지금처럼 손님들 발길이 뜸한 시간이면 모여서 수다도 떨고, 식사도 함께 하고, 수요일마다 반상회를 열기도 하죠.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는 남부시장 2층에서 저희 상인들이 기획한 영화제나 파티를 열기도 하고요.



2층 점포 중 ‘순이네보리밥’과 ‘상수식당’은 기존에 있던 가게인데, 처음 입주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김은홍 : 좋아하셨어요.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하시고, 말없이 옆에서 도와주셨죠. 일하고 있을 때 먹을 것도 슬쩍 갖다 주시고. 저희끼리만 친한 게 아니라 어르신들과도 가깝게 지내요.


스스로 평가하기에 사업이 잘되고 있는 것 같나요?

김은홍 : 가능성을 보고 선택한 사업인데,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이철희 : 그래서 인터뷰하는 것도 어색해요. ‘나중에 성공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웃음)



손님은 어느 연령대가 가장 많은가요?

백승열 : 일곱 살 꼬마부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오세요.

김은홍 : ‘플라잉팬’은 젊은 층 입맛에 맞춘 식당인데, 어르신들도 종종 오세요. 원래 밑반찬은 오이피클만 내지만, 어르신이 오시면 드실 만한 밑반찬을 따로 챙겨드리기도 하죠.


이때, 통로 왼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상수식당 사장 정형선씨다. “이제 걸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알겠다”며 웃던 젊은 사장들은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한다. 30년 넘게 한자리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정형선씨는 전주남부시장의 살아 있는 역사다.

“남부시장 2층 가게들은 1970년대 말에 생겼지. 각지에서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처음엔 말 그대로 문정성시를 이뤘어. 청년몰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채소가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자리야. 그런데 근처에 농산물 시장이 들어서고,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하나 둘씩 빈 가게들이 늘어났지.”

기자와 담소를 나누던 정형선씨에게 다가와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디자인 잡화점 ‘미스터리상회’ 황수연 사장이다. ‘만지면 사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미스터리상회의 벽면은 청년몰의 포토 플레이스가 됐다. ‘미스터리상회’와 이웃해 있는 수공예품 판매점 ‘그녀들의 수작’에서는 핸드메이드 강습이 한창이었다.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든 곰인형의 미소가 생긋 웃는 가게 주인의 미소를 꼭 닮아 있었다.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나는나’에서 복고풍 접시를 하나 샀다.

모퉁이를 돌아 백승열씨가 운영하는 ‘같이놀다가게’에 이르렀다. 키 큰 건담이 우뚝 서 있는 가게 안에는 자그마한 좌식 테이블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창문에 그려져 있는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 인상적인 ‘플라잉팬’, 한옥의 문을 형상화해 향토적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한방차 전문점 ‘차와’를 지나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오자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시장풍경이 펼쳐진다. 그제야 이곳이 시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올해 9월, 4개 점포가 청년몰에 추가로 입점할 예정이다. 통기타 강좌와 세미나를 여는 통기타 전문점, 오코노미야키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식 선술집, 고구마 요리 전문점과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분식 전문점이 들어선다.

청년몰 포스터 한가운데 쓰여 있는 문구인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는 청년몰의 슬로건이다. 107년 전통의 전주남부시장은 시대를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2012년, 전주남부시장에는 돈을 버는 일보다 행복을 파는 일이 먼저인 청년들이 또 하나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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