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올리버선박학교 대표

배를 만들겠다는 어릴 적부터의 꿈 이뤘어요

“가지 못하는 곳을 갈 수 있게 해주는 운송수단인 ‘배’는 자유로움의 상징이에요. 배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나무를 깎고 다듬는 작업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만드는 사람’ 최준영씨를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 안창리에 위치한 ‘올리버선박’ 작업실에서 만났다. 하루 종일 배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고 배를 만드는 일이 운명인 것 같다는 최 대표는 원래 디자이너 출신이다. 대기업 디자이너로 휴대전화 등 다양한 전자제품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고, 디자인회사인 이노디자인 그래픽 총괄이사, SADI(삼성 아트&디자인 인스티튜트) 교수로도 일했다. 디자이너로 한창 이름을 높여가던 그는 서른일곱 살이던 2005년, 돌연 보트 빌더(Boat Builder)로 전향했다. ‘마흔이 되기 전, 배 만드는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던 어릴 적부터의 꿈을 실현한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는 온통 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차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결국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배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주니까요. 그래서 배에 특별한 매력을 느꼈어요.”

나이가 좀 들면서는 배를 만드는 소재인 원목의 곡선미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플라스틱이나 고무는 원하는 틀을 만든 후 열을 가해서 인위적으로 형태를 바꿀 수 있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아요. 목재라는 천연 소재는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휘거나 비틀 수 있습니다. 수백 조각의 나무가 질서 있게 조합되어 있는 배를 보면 물에 잠기는 선체 하부나 건져놓은 배의 선저 부위의 곡선미가 무척 아름다웠어요.”


배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혹됐던 기억이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직장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목선(木船) 제작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틈틈이 배를 만들던 그에게 꿈을 펼칠 기회가 찾아왔다. 선박연구 계획으로 2005년 4월 산업자원부가 모집한 ‘차세대 디자인 리더’에 뽑히면서 정부 지원을 받아 미국 워싱턴 주 노스웨스트 우든보트빌딩 스쿨로 유학을 떠나게 된 것이다. 2006년 12월 귀국할 때까지 최 대표는 그곳에서 목선 제작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고 2007년 10월, 서울 대학로 근처에 ‘올리버선박’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선박 제조에 나섰다.

길고 평평한 나무 재료를 일정하게 겹쳐놓아 아름다우면서도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강도를 갖게 만드는 목조 선박의 매력은 다른 재료로 만든 배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플라스틱 선박의 내구성이 8~12년에 불과한 데 반해, 목조 선박은 30년이 지나도 초기 강도가 87%까지 유지된다. 내구성이 뛰어난 점도 최 대표가 목조 선박에 푹 빠진 이유다.

‘올리버선박학교’ 학생들과 함께.
현재 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나무는 전량 수입한다. 좋은 목재를 고르는 기준인 5가지(무게, 강도, 탄성, 가공된 표면의 아름다움, 질긴 정도)를 고려해 수입하며, 보통 배 하나에 쓰이는 나무의 종류는 4~6가지다. 가문비나무는 돗대와 선체의 측면에 사용하고, 백참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강도가 높아 하중이 실리는 뼈대 부분을 만드는 데 쓰인다.

처음 카누나 카약 등 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차원에서였다. 그런데 우연히 작업장을 찾은 사람들이 배를 주문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선박 제작 문의와 주문이 잇따랐다. ‘올리버선박’에서는 카누・카약 등 소형 선박은 물론, 모터가 달린 5t 무게의 6인용 목조 파워보트도 제작한다. 그는 2010년 1월 강원도 원주로 이전하면서 ‘올리버선박학교’를 설립했다.

“고급 목조 선박을 공급해 우리나라 레저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체계적인 목조 선박 건조기술을 전수해 전문 기술을 갖춘 보트빌더도 배출해야겠다고 생각해 선박학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올리버선박학교는 2년 과정이며, 목조 선박의 원리인 이론에서부터 현장에서 요구되는세 가지 배 만드는 공법을 배운다. 이 과정을 마치면 제작 과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규모가 커도 배를 만들 수 있다. 4학기를 모두 마친 졸업생들은 조선업체에 취업해 제 몫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 배든 철선이든 고급 배는 목공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그동안 배운 목조 선박 제조와 관련한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인 우리나라 레저 선박산업 발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배를 갖고 싶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토-일요일 주말 강습반도 운영한다. 현재 주말반에는 금융회사, 언론사, 건설회사, 자영업에 종사하는 각계각층 사람들이 모여 배를 만들고 있다.

“배에 대한 열정과 정성만 있으면 자신이 탈 요트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습니다. 배를 만들면서 1주일간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분이 많아요. 평일에 정신노동으로 혹사당한 사람은 육체노동을 하는 게 휴식이거든요. 40~50대가 특히 많아요.”

카누는 보통 3개월이면 한 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목조 선박을 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우리나라에 레저 선박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박 전용 페인트도 없고 선박의 부재를 접합하기 위한 에폭시도 없고… 하도 답답해서 외국에 에폭시를 주문했는데, 본사에서 그렇게 계속 쓸 거라면 아예 한국 총판을 맡으라고 해서 총판까지 하게 됐죠.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점만 빼면 배 만드는 일은 무척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배는 육체적인 노동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눈과 생각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2007년부터 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하루도 새로운 걸 배우지 않은 날이 없어요. 학생들과 함께 배를 만들거나 주문받은 걸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본이나 매뉴얼에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돼요. ‘새롭다’ ‘신기하다’는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해 배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입문서를 쓰고 있다. 그의 꿈은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카누와 요트 같은 목조 선박을 즐기면서 탈 수 있는 보트클럽을 만드는 것이다.

“자전거 대여점같이 문턱이 높지 않은 보트클럽을 만들어 바닷가를 찾은 가족단위 관광객이 보트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사진 : 김동욱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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